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비엔나가 더 fancy(고급스러운)한 것 같아"라고 그녀는 말했다. 독일에서 휴가왔다는 젊은 커플에게 독일에도 성(Schloss)이 많은데 왜 비엔나에 오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독일은 2차 대전 중에 파괴된 건물도 많고 '시골'에 나가야 볼 수 있는데 비엔나는 도시 안에 모든 것이 모여 있다고. 20대의 호텔 직원들은 공원과 다뉴브강변 산책이 비엔나 살며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 했고, Viennese café(비엔나 커피하우스) 문화를 꼭 경험해보라고 했다. 관광객 인증샷 문화와 달리 사람들이 혼자 신문도 보고 책도 읽고 옆사람과 이야기도 하는 그런 공간이라고. 오스만(Ottoman) 제국과의 전쟁 때 전해졌다는 커피는 그야말로 비엔나스럽게 재창조되어 '여유와 사교'의 상징이 되었으니 전쟁과 평화는 삶과 죽음처럼 동전의 양면인건가.
빈 소년합창단이 노래하는 왕궁 성당의 미사는 웅장하고 아름다웠고 빈국립음악협회 콘서트는 공연의 질도 뛰어났지만 음악 자체에 집중하는 관객들의 수준도 인상적이었다. 스트라우스 탄생 200주년이라 울려퍼지던 왈츠 음악, 클림트의 키스 원작은 그림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내 눈에도 어떤 아우라가 느껴져 30분간 그 그림 앞에만 앉아있다 왔다. 거기서 만난 영국 신혼부부는 아내가 어릴 때 엄마와 찍은 사진의 배경에서 똑같은 포즈를 취해 엄마에게 보내겠다고 했다. 음악, 그림, 건축, 자연, 커피와 빵 등 할 것도 볼 것도 많고 그야말로 전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오는데 밤 10시가 넘어 지하철을 타도 안전하고 만난 모든 사람들이 친절했던 도시. 비엔나는 우아한데 캐릭터 확실하고 매력적이었고, 출장길 이틀 말고 몇 달쯤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다.
출장지였던 그라츠(Graz)도 아름다운 자연과 건축, 호박씨 오일 등 지역특유의 농산물로 만든 음식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택시기사나 식당 주인 그리고 업무로 만난 모든 사람들의 친절이 인상적이었다. 잘츠부르크(Salzburg)는 15만명 인구에 1천만명 가까운 연간 관광객이 오고 그 중 1/3은 아직도 1965년에 나온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관광을 오는 사람들이란다. 호텔에서 만난 영국의 두 은퇴한 친구도 그래서 왔다고, 영화를 다시 보고 왔다고 했다. 사망한 지 200년도 훨씬 넘은 모짜르트와 더불어, 한 편의 문화예술작품이 전세계 사람들에게 미치는 마음의 감동은 이런 거대한 물질현상으로 나타나는구나 싶다. 나라 전역에서 가장 상업화된 곳이 할슈타트(Hallstatt), 그 다음이 잘츠부르크라며 일정이 짧으면 할슈타트는 가지 말라고 했다.
인구 1천만명이 채 안되고 그들 스스로 작은 나라라고 말하는 오스트리아. 아직도 현금 사용이 흔하고 병따개와 함께 놓여있는 유리 물병처럼, 남아있는 아날로그 문화의 아련함이 더해져 더 좋았던 나라. 그리고 이런 곳에서는 대부분 시민들이 정치얘기를 하지 않는다. 정치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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