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라인강의 감시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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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20 06:00  |  발행일 2025-06-19
정만진 소설가

정만진 소설가

1905년 6월20일 미국 극작가 릴리언 헬먼이 출생했다. 1941년 발표작 '라인강의 감시'는 그녀에게 '투쟁하는 극작가'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작중 독일 남자 뮐러와 그의 미국인 아내 사라는 지금 유럽을 벗어나 세 자녀와 함께 미국 여행 중이다.


워싱턴DC에 있는 패니의 집이 연극 무대이다. 이 집 투숙객 가운데 루마니아인 테크가 뮐러의 방을 뒤져 총 한 자루와 2만3천 달러를 찾아낸다. 뮐러는 독일에서 반파시스트 활동을 했었는데, 그 일에 쓰려고 무기와 돈은 숨겨왔었다.


테크가 뮐러에게 1만 달러를 내놓지 않으면 나치에 알리겠다며 협박한다. 결국 뮐러가 테크를 죽인다. 패니와 그녀의 아들 데이비드가 뮐러의 피신을 진심으로 도와준다. 뮐러, 사라, 아이들이 다시 만나게 되기를 기원하며 흩어지는 것으로 연극은 끝난다.


1952년 헬먼은 반미(Un-American) 활동 조사위원회에 호출된다. 위원회는 헬먼의 연인 해미트가 공산당원이라면서, 이름을 아는 공산주의자들을 실토하라고 요구한다. 그녀는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알고 지내온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는 행위는 비인간적이고 부도덕하며 명예스럽지 못한 일"이라며 거부한다. 그날 이후 헬먼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미국 주류 사회의 '감시'를 받으며 계속 배척당하게 된다.


헬먼이 겪은 사회를 어윈 윙클러가 1992년 영화 'Guilty by Suspicion(의심되면 처벌할 수 있다)'로 고발했다. 영화의 주인공이 '라인강의 감시'에 나오는 데이비드이다. 영화에서 데이비드는 헬먼처럼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불려간다. 동료들 가운데 공산주의자를 고발하면 사는 데 불편이 없도록 해주겠다는 회유를 받는다. 데이비드가 거부하자 권력은 20년 동안 그를 직장도 가지지 못하게 탄압한다.


기원전 450년쯤 로마는 유죄 판결 전에는 모두 무죄이며, 유죄 증명 책임은 기소자에게 있다는 시민법을 발효했다. 그로부터 3천년이 흘렀다. 그런데 아직도 '의심되면 처벌할 수 있다'고 공언한다. 나이 먹은 표시가 없는 사람 앞에서 흔히 "세월을 거꾸로 먹었나!"라고 경탄한다. 역사도 가끔은 세월을 거꾸로 먹는 것인가?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나 그것을 기록하면 역사가 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촌철살인이 진정 진리란 말인가?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를 배신할 수는 없다." 헬먼의 말이다. 인류 역사에 다시는 그런 명언을 남기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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