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태 동부지역본부 차장
경북 포항이 또다시 위기 앞에 섰다. 산업화의 상징이자 대한민국 제조업의 심장이라 불리던 포항 철강산업이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의 불똥을 정통으로 맞으며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동의 군사 충돌, 글로벌 경제 침체가 겹치면서 수출길은 좁아지고 투자 심리도 급속히 얼어붙었다. 산업의 양 축인 철강과 2차전지마저 동반 부진에 빠지며, 포항은 지금 산업 생태계의 붕괴를 막기 위한 마지막 줄타기 중이다.
최근 현대제철 포항2공장의 무기한 휴업은 그 상징적 신호탄이다. 2022년 337만t이던 포항공장 생산량은 지난해 246만t으로 급감했고, 철근·형강 등 주요 제품은 건설경기 침체와 가격 경쟁력 상실로 내수·수출 모두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포항제철소와 동국제강의 설비 가동률도 60~70%대까지 떨어졌다. 일시적 조정이 아니라 구조적 위기의 단면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철강을 대체할 새 성장동력으로 주목받던 2차전지 소재산업마저 중국산 저가 공세,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로 수출이 40% 이상 급감하며 주저앉았다. 에코프로, 포스코퓨처엠의 대규모 투자계획도 차례로 보류되거나 축소되고 있다.
산업위기는 곧 지역 경제의 위기로 이어졌다. 포항 중앙상가는 공실률 40%를 넘기며 평일 한낮에도 인적이 드물다. 하루 매출 4만원을 채우지 못하는 상인이 늘고, 권리금 없는 점포조차 외면받는 현실이 포항의 경제 생태계가 얼마나 취약해졌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고용도 예외는 아니다. 포항철강산업단지의 고용은 10년 새 16% 감소했고, 추가 감원은 불가피하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포항 산업계와 지역사회는 정부에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 지정을 호소하고 있다. 지금 포항에는 맞춤형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 고용유지 지원금, 재기자금, 경영 컨설팅 등 단기적 조치뿐 아니라 산업 체질을 개선할 중장기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핵심은 전기요금과 세제다. 철강과 2차전지는 고전력 제조공정에 의존한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2022년 이후 40% 이상 오르며 생산원가를 갉아먹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경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공장 가동을 줄이는 악순환에 빠졌다. 산업용 전기요금의 한시적 인하와 탄력 요금제 도입, 친환경 설비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가 절실하다. 법인세 감면과 지방세 면제, R&D 세제 지원도 시급하다. 산업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지금 포항에 필요한 건 단순한 재정 지원이나 미봉책이 아니다. 철강과 2차전지라는 양대 산업의 체질 개선과 생태계 재편이 절박하다. 철강은 수소환원제철, 전기로 등 탄소중립 기술을 기반으로 '친환경 고부가 철강'으로 재도약해야 한다. 2차전지 산업은 원료 채굴, 소재 생산, 리사이클링을 아우르는 완결형 산업으로 체질을 바꾸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뒷받침할 법적·제도적 기반 마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철강·2차전지 특별법'이 단지 법률이 아닌, 대한민국 제조업의 새로운 비전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포항의 위기는 이제 지역 문제를 넘어 국가 제조업의 지속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 제조업의 위기이며, 국가 경쟁력의 시험대다. 정부와 기업, 지역사회가 한목소리로 구조적 전환에 나서지 않으면 철강 도시의 심장은 멈출지도 모른다. 선택과 집중,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의 위기가 산업 대전환의 계기가 되도록 국가적 대응과 지역의 각성이 절실하다.
김기태 동부지역본부 차장
김기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