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파이브 피트' (저스틴 밸도니 감독·2019·미국)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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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26   |  발행일 2020-06-26 제39면   |  수정 2020-06-26
바이러스에도 지지 않는 사랑과 희망

파이브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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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시인·심리상담사)

쓰레기를 버리려고 나가다 종종 발걸음을 돌린다. 마스크를 깜빡했기 때문이다. 다시 마스크를 쓴다. 날씨가 더워지니 전보다 더 괴롭다. 하지만 이제 마스크와 거리 두기는 생활이다. 어쩔 도리가 없다. 예전에 보려다 만 로맨스 영화를 다시 챙겨봤다. 마스크를 쓴 채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뭔가 시사점이 있을 것 같아서다. 낭포성 섬유증(CF)을 앓는 스텔라는 투병 생활에도 불구하고 밝고 씩씩한 10대 소녀다. 유쾌한 모습으로 하루하루의 병원 생활을 SNS에 올리곤 한다. 윌 역시 같은 병을 앓는 소년으로 좌절에 빠져 반항하며 투약을 거부한다. 전혀 다른 성격이지만, 같은 아픔을 겪는 그들은 조금씩 마음을 주며 가까워진다. 하지만 그들이 앓는 병은 서로 6피트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바이러스를 옮기게 되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키스는커녕, 가까이 가지도, 안아보지도 못하는 이들의 사랑은 가능한 것일까? 그들이 지켜야 하는 거리는 6피트인데, 제목은 '파이브 피트'다. 병에게 인생을 빼앗기고 살았는데, 이제 병에게서 1피트만 빼앗아 오겠다고 말하는 스텔라. 둘은 5피트의 막대기(당구채)를 사이에 두고 데이트를 즐긴다. 하지만 단짝 친구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진 이들은 병원을 벗어나게 되고, 스텔라는 위험에 빠진다. 스텔라를 살리려면 인공호흡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윌은 목숨을 건 선택을 한다.

영화를 보며 가장 좋았던 건 밝고 씩씩한 스텔라다. 병에게 빼앗기기만 했는데, 1피트만이라도 빼앗아 오겠다는 당찬 모습이 너무나 예뻤다. 그렇게 그녀의 건강한 에너지는 좌절에 빠진 윌을 바꿔 놓는다. 스텔라의 실제 모델은 오랜 투병 생활에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던 유튜버, 클레어다. 엔딩 자막에 'For Claire'를 볼 수 있다. 스텔라 역의 헤일리 루 리차드슨과 윌 역의 콜 스프로즈는 할리우드에서 주목받는 신예다. 서로를 아끼며 눈빛만으로 사랑을 주고받는 모습을 절절하게 연기했다. 이들의 연기, 특히 슬픔을 감춘 채 긍정의 화신처럼 웃음을 잃지 않는 헤일리 루 리차드슨이 영화를 더욱 반짝이게 한다.

기대 이상이었던 이 영화가 고만고만한 청춘 로맨스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이들의 사랑은 투병이라는 고통 속에서 쌓아가는 사랑이다. 영화의 마지막, 윌은 스텔라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스텔라는 윌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것을 본다. 영화를 보다 보면 나이 어린 소년, 소녀의 사랑이 아니라 성숙한 어른의 것임을 깨닫게 된다.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는 것이 진정 고귀한 사랑임을 알게 된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하며 지내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지금 우리와 같은 것이어서 묘한 느낌이 든다. 낭포성 섬유증에 인생을 빼앗겼다는 이들의 말처럼 우리도 감염병 때문에 많은 것을 빼앗겼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 통째로 빼앗기기만 했을까? 스텔라가 병에게서 1피트를 빼앗아오듯, 우리가 바이러스에게 지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스텔라는 스킨십의 소중함을 말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라고 한다. 언택트 시대, 사랑하는 사람과의 접촉은 더욱 소중하다. '거리는 멀어져도 마음은 가까이'라는 방역수칙은 지키기 쉽지 않다. 대개 거리와 마음은 비례하기 때문이다. 넓이보다 깊이를 추구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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