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아쉬움 주는 이건희미술관 유치전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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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24   |  발행일 2021-05-24 제27면   |  수정 2021-05-2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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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논설위원

대구시가 추진하는 '국립이건희미술관' 유치사업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아니다. 수도권 일극주의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지역에 큰 규모의 문화시설을 가져와 지역경제에 활력을 주겠다는 의지로 읽혀 내심 반갑다.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문화도 수도권 블랙홀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많은 문화시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예술창작물의 수도권 생산과 비수도권 소비 구조가 고착화됐다. 이런 가운데 2만여 점의 미술품과 유물을 확보할 수 있는 이건희미술관 유치는 지역경제를 살릴 실현성 높은 사업이다. 스페인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처럼 쇠락하던 도시를 한해 100만 명 이상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바꿀 수 있는 게 수준 높은 미술관의 위력이다.

이미 이건희컬렉션의 가치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게 판명 났다. 작품의 수준과 가치를 매매가로만 측정할 순 없지만, 매매가가 이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는 된다.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못'이 7천40만달러(한화 약 800억원)에 낙찰됐다. 지난 4월 말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컬렉션 중 하나인 모네 작품과 같은 주제·크기, 유사한 화풍이라는 점에서 이건희컬렉션의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다. 이 회장이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한 컬렉션에는 고갱, 피카소, 샤갈 등의 해외 거장은 물론 이중섭, 박수근 등 한국 근대미술을 개척한 거장의 작품도 다수 포함됐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이건희컬렉션을 위한 별도의 전시공간 마련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발단돼 전국에 이건희미술관 유치 붐이 일었다. 미술관 유치전의 포문은 부산시장이 열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문화의 서울 집중도가 극심하다"라며 미술관의 남부권 건립을 주장했다. 이어 광역·기초지자체 가릴 것 없이 앞다퉈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고향이다' '사업장 있다' 등 미술관 유치 명분은 다양하다. 물론 대한민국 근대미술의 발상지이자 메카였던 대구도 나섰다. 경북도까지 이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고 있는 미술관 유치 붐에 대한 차가운 시선도 있다. 과연 유족 뜻은 어떠한지, 정부의 계획은 무엇인지 알아봤느냐는 것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려 한다는 개탄도 나온다. 미술관 유치는 지역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긍정적이다. 하지만 전국 지자체들이 우선 질러놓고 보자는 식으로 유치전을 벌이면서 관광산업을 위한 미술관 유치 경쟁으로 변질했다. 관광산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역민의 문화 향유권이다. 똑같은 세금을 내고도 비수도권에 살기 때문에 문화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더는 방치돼선 안 된다. 경제적 측면을 떠나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수준 높은 작품을 지역민이 관람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등한시해온 문화예술에 관심을 두는 계기로도 삼아야 한다. 그동안 지자체와 단체장에게 문화는 정치·경제에 밀려 늘 뒷순위였다. 대구시도 마찬가지다. 새 미술관 건립에 앞서 지역에 있는 미술관부터 발전시킬 연구를 해야 한다. 개관 10주년을 맞은 대구미술관의 미술 작품 구매비 부족과 이에 따른 소장품의 수나 수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미술관만 그럴듯하게 지어놓으면 무엇 하는가. 정작 속은 텅 빈 강정인 것을. 미술관 유치를 통해 문화예술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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