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광장] 비순이를 아시나요

  • 곽동협 운경의료재단 곽병원 원장
  • |
  • 입력 2021-07-02   |  발행일 2021-07-02 제23면   |  수정 2021-07-02 07:10

[금요광장] 비순이를 아시나요
곽동협 운경의료재단 곽병원 원장

얼마 전 어느 한가로운 일요일 아침, TV에서나 봄 직한 놀라운 광경을 곽병원 주차장에서 목격했다. 주차장 사장님 손 위에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서 앉더니 먹이를 쪼아 먹는 게 아닌가. 사연인 즉 1년 전 비 오는 날 왜소한 체격의 비둘기 한 마리가 주차장에서 비실비실 걸어가고 있기에 불쌍해 보여 가지고 있던 떡을 나누어 주니 받아먹은 다음 날부터는 거의 매일 찾아와 먹을 것을 얻어먹고 놀다갔다고 한다. '비순이'라 이름 붙여진 이 비둘기는 이내 사장님의 손바닥 위에 날아와 앉을 정도로 친해졌는데, 어떤 날은 친구를 데려오기도 하고 배가 고플 때는 기계실 안쪽까지 들어와 애교를 부리기도 한단다.

주차장 사장님은 고대소설에 나오는 흥부처럼 평소 미담이 끊이지 않는 분으로, 외주 직원이지만 3년 전 곽병원 직원 친절모범사례발표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봄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했을 때 마스크 없이 차에서 내리는 내원객에게 무료로 마스크를 드리는 것을 보고 우리 병원 입구에서도 그대로 따라 한 적도 있다. 흔히들 '새×가리'라 하며 새는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비순이는 사람을 알아보는 영리한 지능을 가진 것 같다.

비둘기에 대한 첫 기억은 필자가 아주 어렸을 때 비둘기 사냥을 다니는 가족의 새총에 맞은 비둘기 한 마리가 우리 집 마당에 추락하여 그들이 잡으러 온 것이다. 1990년대에 해외여행을 나가보니 관광지에서 먹이를 얻어먹으러 무리지어 모여 드는 비둘기들은 우리나라 비둘기와는 달리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필자의 무릎에 올라앉아 천연덕스럽게 과자를 얻어먹는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수년 전에는 출근길에 교육청 광장에서 중년여성이 모이를 대량으로 뿌려 비둘기들이 떼거리로 모여드는 특이한 장면을 보고 동영상으로 촬영하다가 그 여성으로부터 "당신, 공무원이냐" 며 공격을 당한 적도 있다. 그 여성은 필자를 단속반원으로 착각한 것 같았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으로 1960년대부터 올림픽 등 각종 행사에 동원되었으나 개체수가 늘어나 배설물을 감당하기 힘들어지자 2009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어 먹이를 주는 행위가 금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비둘기 집을 설치하고 먹이를 주어 이곳에 머물게 하여 다른 곳의 피해를 줄이고, 대신 알을 낳으면 플라스틱 인공 알로 교체해 개체 수를 줄인다고 한다.

인간에게 동물은 식재료일 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자식같이 애지중지 키우는 반려견도 주기만 하지 받을 것은 없다. 하지만 마음을 활짝 열고 생각해보면 동물에 대한 사랑은 약자에 대한 배려이고 이를 통해 사람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반려동물과 스킨십을 하거나 산책 등을 함께 할 때 우리 몸에서는 사랑호르몬이라는 옥시토신과 행복호르몬이라는 세로토닌의 분비가 활성화하고 스트레스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가 억제된다고 한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 자폐증, 우울증, 심장병 등의 환자에게 동물매개치료가 활용되기도 한다.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닌 다양한 종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동물이 생존하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인간의 미래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동물과 함께 사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인간과 동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비순이와 주차장 사장과의 동화 같은 아름다운 인연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곽동협 <운경의료재단 곽병원 원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