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 人사이드] '37년 실무활동가' 마무리 앞둔 대구YWCA 박선 사무총장 "대구 여성 진취적이고 열정적…YWCA 전국 교류땐 군중 휘어잡아"

  • 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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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25   |  발행일 2021-08-25 제13면   |  수정 2021-08-2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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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대구 남구 대구YWCA 회관에서 박선 사무총장이 재임 기간 동안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실무활동가가 정년퇴임을 한다는 건 정말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긴 마라톤의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느낌이에요. 완주하고 아름답게 떠날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합니다." 올해를 끝으로 정년퇴임을 앞둔 박선 대구YWCA 제12대 사무총장의 소회다. 박 사무총장은 37년 세월 지역사회 여성의 인권 신장과 소외된 여성의 고충 해결을 위한 일에 앞장서 온 대구YWCA의 실무활동가다. 1984년 대구YWCA의 간사로 입사한 그는 일하는여성의집(현 여성인력개발센터) 부장, 달서구 청소년쉼터 부장, 달서자활후견기관(현 달서지역자활센터) 부장, 대구여성인력개발센터 관장, 대구YWCA 사무국장 등을 거치면서 실무를 익힌 베테랑이다. 지난 6월에는 '제18회 대구시 여성대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만큼 지역의 '여성 리더'이기도 하다. 박 사무총장은 인터뷰 내내 YWCA와 거기에서 진행한 활동에 대한 자부심을 넘치도록 드러냈다.

기독교정신 기반 대구YWCA
'인권·나눔 가치' 실현하려 해

직업안내소 만들어 기술훈련
現 여성인력개발센터 이어져

女 비율 미충족 公기관 위원회
적임자 없는게 아닌 못찾은 것
인재 DB 구축 YWCA 활용을


▶독자를 위해 대구YWCA의 가치관과 역할에 대해 설명해달라.

"1923년 신명학교에서 출발한 대구YWCA는 기독교 신앙을 뿌리에 두고 지역사회 주민과 함께 정의·평화·생명 운동을 펼쳐나간다. YWCA가 이야기하는 '정의'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즉 살리는 운동이다. 이는 기독교 생명 운동, 환경운동, 사람을 키우는 청소년·청년 운동으로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시민사회 활동, 종교 영역, 여성 영역과 전체적인 맥락을 같이하게 된다. 한마디로 사람 운동체다. 지금도 YWCA의 볼런티어(자원봉사자)는 줄어들지 않는다. 실무 인력만으로는 일을 다할 수 없는데 참 감사한 일이다. 예전 선배들이 24시간, 1년 365일 정성을 쏟아붓는 형태로 봉사를 하셨다면, 요즘 세대는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자원활동가의 역할을 하려고 굉장히 노력하고 있고,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려 한다. 이는 세월이 지나도 이런 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고, 그 기반에 기독교 정신이 크다고 생각한다."

▶37년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도 많을 것 같은데.

"1984년부터 이곳에서 일했다. 당시 '와이틴' 중·고교 클럽활동 지도 간사로서 역할을 했다. 1980년대 교복 자율화 바람이 불었는데 아이들이 자신이 교복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에 '옷을 만들어서 너희들이 입고 패션쇼를 하면 어떻겠나'라고 제안했다. '우리들이 만드는 우리들의 교복'이 콘셉트였다. 이에 중·고교생들이 직접 고른 기성복, 어머니가 직접 만든 옷, 기성복 업계에서 내놓은 옷들을 학생들이 직접 착용해 선보이는 형태로 '맵시 자랑' 행사가 열렸다. 그 아이 중 일부는 그때 인연으로 현재 지도자 등을 하면서 지도력을 뽐내는 걸 보면 감회가 남다르다. 1991년도 기억에 남는다. YWCA가 훌륭하다고 보는 것이 그 시대에 여성 스스로 여성의 문제 해결법을 찾아가는 것을 참 잘했다. 당시 달서구 성서산단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자 성서산단 입구에 시범 탁아소를 만들었다. 여성 상대 무료직업안내소를 운영했던 기억도 난다. 그때도 구인·구직 미스매칭은 있었는데, 당시 한창 섬유산업이 잘될 때라서 '숙련공'을 보내 달라는 요청이 많아지자 기술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이는 현재 여성인력개발센터로 연결됐다. 여성의 경제력에 의한 자립이 여성의 인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미리 간파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렇듯 YWCA의 역사는 여성의 문제를 하나씩 하나씩 엮어나가면서 이어져 왔다."

▶37년 전과 비교해 대구의 여성이 변화된 것을 느끼는가.

"사실 근본이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다. 대구 여성들을 보면 보수적으로 보여도 진취적이고 열정도 있다. 정(情)과 정의로움, '뒷심'도 있다. YWCA는 전국 무대로 활동·교류하는데, 다른 지역 와이틴 10대 아이들은 초기에 아주 적극적인 데 비해 우리 대구 아이들은 처음엔 먼저 얘기를 안 건넨다. 그런데 2박3일 뒤에 보면 군중을 휘어잡는 아이들은 대부분 우리지역 아이들이다. 알고 보면 친화력도 있고 유머도 있는데, 그걸 '탁' 건드려주면 결국 리더가 되더라. 이 부분은 과거 대구 여성과 현재 대구 여성이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이런 저력으로 대구가 과거 2·28민주운동, 국채보상운동 등을 주도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여성 인권과 사회참여율 등은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다. 공공기관 위원회 등에선 권고되는 여성 구성원 비율이 있는데 채워지지 않을 때도 있다. 사람을 뽑는 측에선 '적합한 여성이 없다'고 말하지만, 제가 볼 땐 없는 게 아니라 못 찾는 것 같다. 대구 여성이 정말로 많은 잠재력이 있지만 '나에 대한 표현'을 못하는 탓도 있는 것 같다. 대구YWCA는 언제나 '우리는 많은 여성 DB를 가지고 있으니 적합한 여성을 찾기 어려우면 연락 달라'고 말하고 있다."

▶청소년 운동도 적극적으로 하는 것으로 안다.

"건강한 가정에서 자라는 청소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다. 어린 마음에 욱해서 가출했다가 건강히 돌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나와서 하룻밤, 이튿날 밤, 일주일 잘못 보내는 바람에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한다. 그게 우리가 청소년 쉼터를 운영하게 된 배경이다. 최근엔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꿈드림'을 운영하고 있다. 또 만 18세에 적은 돈만 가지고 보육시설에서 퇴소해야 하는 보호아동청소년이 자립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자립통합지원센터도 운영 중이다. 잘 마련된 시스템 아래서 청소년들이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게끔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청소년을 위한 재미있는 행사도 많았다. 오래전 '달맞이 축제'가 생각난다. 하루만큼은 남녀 청소년이 만나 보내는 축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재밌는 문화와 낭만이 많이 사라진 느낌이다. 과거 각종 청소년 행사들에서 설레하던 아이들 눈빛이 아직 생생한데, 특히나 청소년 문화에서 부딪히며 하는 놀이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청소년에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머리만 쓰지 말고 심장의 떨림이 있는 순간들을 가능하면 많이 가져달라'고 꼭 당부하고 싶다."

▶올해 대구시 여성대상을 수상한 소감은.

"너무나 영광스럽고 감사하지만 죄송하기도 하다. 나는 YWCA 역사에 있어 '점'일 뿐인데, 수상이 자칫 나의 영광으로 받아들여질까 봐 함께하는 많은 분께 미안한 마음이 크다. 또 내 수상이 'YWCA의 영광'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분도 계셔서 감격스럽기도 하다."

▶조만간 임기를 마무리한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주어진 소명 앞에 충실히 살아왔고, 그 끝에 주시는 축복이 정말로 감사하고 영광스럽다. 결승점에 다 도착해 가는데 행복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활동가로서는 원도 한도 없이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했고, 나의 역량도 많이 자랐다. 이 많은 누림을 후배들에게도 나눠야 하지, 내가 계속 가지고 가면 안 되기 때문에 미련은 전혀 없다. 신입 실무자들 오리엔테이션을 하면 항상 '이곳을 직장이라 생각하면 단 하루도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내가 발견한 가치를 그대들이 발견한다면 평생이 즐겁다'라고 말하곤 한다. 이곳의 가치를 나누고 싶다. 실무활동자로선 은퇴하지만 '자원활동가'로서, 평생 YWCA의 사람으로서 살아갈 생각이다. 실무활동가들을 지지해주고 YWCA의 운동이 지역에서 녹아날 수 있도록 어떤 역할이든 '조용하게' 하고 싶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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