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심사평..."깨진 시간들이 만들어내는 엇갈린 황홀경의 체험"

  • 신용목 시인·이혜원 평론가·장옥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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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03 08:21  |  수정 2022-01-03 13:36  |  발행일 2022-01-03 제25면

장옥관
신용목 시인·이혜원 평론가·장옥관 시인.(사진 왼쪽부터)

유계영의 시는 신비로운 만화경 속에 빠진 듯한 체험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 신비는 먼 나라 색색의 놀이공원에서 빌려온 것이 아니다. 세계의 깨진 시간들이 서로를 비추며 만들어내는 엇갈린 황홀경이다. 우리를 아프게 찌르는 것이 밤하늘의 별빛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일상의 순간들이 통점처럼 떠 있는 행성일 수 있다는 것을, 시간의 편린들로 보여주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때, 시간은 무심히 지나가는 듯하지만, 어느 한자리에 묶인 것처럼 목줄에 당겨져 앞발을 치켜들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 목을 조이는 그 찰나는 현재의 것이지만 또한 과거와 미래가 한꺼번에 체감되는 몸의 시간이기도 해서, 달려온 시간과 달려갈 시간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속도계처럼 흔들린다. 말하자면 유계영의 시는 그 속도계의 바늘을 보여주기 위해, 저 개와 모자와 여름과 빌딩을 향한 언어를 때로는 구부러뜨리고 때로는 구부러진 그것을 탕탕 펴낸다.

때문에 그의 시 앞에서 우리는 '나'라는 존재가 내가 보았던 것들의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낯선 느낌을 갖게 된다. 저 찬물과 두부와 적별돌의 마음을, 저 저수지와 썩지 않는 빵의 마음을, 시인은 인간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더는 '나'가 아니라 "돼지 공장에서 생산되는 돼지들"('예감')이 되고, "밥이 된 나와 기계가 된 나와 바위가 된 내가/ 시장 좌판에 나와"('미래에 관한 네 가지 입장') 있다. 그래서 그의 시를 통과할 때, 우리는 마치 "두 사람의 심장박동이 동시에"('두고 왔다는 생각') 울리는 것처럼 하나로 연결되고 만다. 물론 그 풍경이 "플래시가 터질 때 울음을 멈추고 활짝 웃어버린 여자 아이"('눈딱부리 새의 관점')처럼 슬픔을 동반하는 것은 그 연대의 필요성이 환기하는 세계의 모순 때문일 것이다. 유계영 시가 가진 결정적인 위의는 여기에 있다고 해야 한다. 세계의 표면과 시선의 이면을 꾸준히 파고들며 낯선 문법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내면서도 그에 함몰되지 않고 세계를 향한 엇갈린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것 말이다.

덧붙이자면, 심사자들은 예심에서 올라온 황성희·임승유·김현·민구 등 9명이 모두 수상자가 되어도 손색이 없다는 데 동의하고 각각의 장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의 개성을 지키면서도 모종의 예감을 실어나르는 시들이 가진 경의로움에 대한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다만 유계영 시인의 장점이 더 오래 이야기되었고 그의 시가 구상 시인의 시력에 뒤따르는 영예를 받아안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데 쉽게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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