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수상작 - 유계영 시집 '지금부터는 나의 입장'

  • 유계영 시인
  • |
  • 입력 2022-01-03 08:22  |  수정 2022-01-03 13:36  |  발행일 2022-01-03 제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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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훈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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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

빈집 있으면 꼭 무언가 들어왔다 벌렁 드러눕고 껌 쩍쩍 씹고 주인 행세 했다

밤의 양조주 부어라 마셔라 부드러웠다 천국 가까웠다


「사람들 나를 찾아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비탄에 잠겨 있는지 떠들어대는 꼴 더는 볼 수 없어 사람들 나를 찾아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비탄에 잠겨 있는지 꼼꼼히 설명할 때마다 나는……」이것은 빈집의 말이다

지금부터는 나의 입장


버거에 관한 범성애적 구두 연습 기억합니다

납작한 것과 납작한 것 사이 납작하게 엎드린 사물들

부드러운 것과 부드러운 것 사이 무너지는 층계참

우리를 기어코 벌리는 것들

오늘만 다섯 개째 당신은 버거 타령 하고 있으므로

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슬픔 두툼 입술 슬쩍 핥는 것입니다

버거와 버거 사이 빈집 쌓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교수법입니다

토할 것 같아요 풀 죽은 내가 검은 봉지 속에 얼굴 파묻자 아버지 말씀하셨지요

「네가 얼마나 어지러운지 울렁거리는지 칭얼대는 소리 더는 들어줄 수 없구나 네가 나의 딸이라면 그네 위에서 흔들리는 사람 아니라 그네를 흔드는 사람이 되어라 사람 탄식 듣는 사람 아니라 사람 탄식하게 하는 사람 되어라……」 아버지 나를 찾아와 버거와 버거 사이 쌓고 계십니다

그런 것 반복하고 있습니다


쓰러질 듯 휘청이는 버거 아름다운 장면이다

나는 버거 들고 조심조심 걷는다 찾기 위함이다 빈집에서

벌렁 드러누워 껌 쩍쩍 씹고 주인 행세 하기 위함이다 나에게 천국 어째서 멀고 멀어

아버지 소파에 벌렁 드러누워 껌 쩍쩍 씹고 바지춤에 손 넣고

쌓고 있다 무한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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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계영 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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