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김지혜의 2021년] 생명의 고귀함·작곡가에 대한 존경, 음악으로 풀어내며 더 성장한 한 해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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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06 07:48  |  수정 2022-01-06 07:51  |  발행일 2022-01-06 제17면

김지혜프로필사진

코로나19 팬데믹은 예술가들에게도 큰 고난의 벽이 되고 있다. 하지만 팬데믹 상황을 오히려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삼아 예술가로서의 지평을 넓혀가며 그 벽을 돌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 예술가 중 한 사람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지혜의 지난해 활동과 생각을 함께 공유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김지혜가 정리한 내용을 소개한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세월호 추모 프로젝트
유가족詩 가사로 노래 만들어
국내외서 영상으로 연주 동참
사람의 소중함 배운 값진 경험

앙상블 에마농 전곡연주
모차르트·하이든 우정에 매력
12곡 한 해 동안 네 번 나눠 공연
예술가로서 의미 있었던 도전

2021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두 개의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연주자로 살면서 '나는 무엇 때문에 연주를 하는 걸까'라는 고민을 종종 한다. 연주자라는 직업에 거창하게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지만, 정신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 보면 이상한 회의감이 들 때가 있어서다. 2020년 이맘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문득 40대 중반에 들어서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마음속 숙제처럼 남아 있던 일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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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예모(세월호를 기억하는 예술인들의 모임)의 공연 및 작품전 포스터.

◆세월호 추모 작업

가장 먼저 생각났던 것이 세월호였다.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면 언제나 정체 모를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 원인을 명확히 알 수는 없다. 몇 년간 막연하게 '예술가들은 세월호를 어떤 식으로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는데, 그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2020년 겨울에 작곡가 서영완 선생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로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유가족 중 한 분의 동명 시 '의자'를 가사로 한 세월호 추모곡 '의자'가 완성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함께 모여 연주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서 연주자들이 각자 자신의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고 그 영상들을 모아 하나의 동영상으로 편집하는 방법을 택했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8명의 연주자가 동참하고,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활동하는 네오 콰르텟의 연주자 4명과 또 다른 20대 폴란드 연주자 4명이 합류했다. 마을 기업 '빛글'에서 영상 편집을 하고, 나의 지인들이 시민협력단을 구성해 후원을 해주었다.

이렇게 완성된 동영상을 2021년 1월16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하며 동시에 SNS 릴레이 공유 챌린지를 시작했다. 동영상을 SNS에 공유하자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연주 단체 '소리께떼'에서 함께하고 싶다고 어떤 방식으로 하면 좋겠냐며 연락이 왔다. 작곡가와 상의해 '의자'의 악보를 모두에게 공유하기로 하고 누구든 새롭게 편곡하고 연주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대구의 인디밴드인 '가을 정원', 소프라노 추영경, 뉴욕에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최은향 등 음악가들이 동참해 세월호 추모곡 '의자' 다시 부르기 프로젝트로 연결되고, 그들의 동영상을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유했다.

이런 활동을 지켜보던 지인이 416재단에서 세월호를 추모하는 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고 알려줘 세월호 가족 꽃누르미 동아리 '꽃마중'의 작품 전시회와 전시 오픈 공연을 기획했다. 미술 작가인 백장미 작가의 도움으로 꽃마중 어머님들의 작품 전시를 준비했다. 전시 오픈 공연은 추모곡 '의자'의 라이브 연주, 무용수 안지혜 선생님의 공연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공연 역시 빛글이 촬영과 편집에 참여, 유튜브 채널을 통해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었다.

에마농_전곡연주시리즈
'러시안 콰르텟' '하이든 콰르텟' 전곡 연주 시리즈 포스터.

◆'러시안 콰르텟' '하이든 콰르텟' 전곡 연주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하이든의 '러시안 콰르텟'과 모차르트의 '하이든 콰르텟' 전곡 연주 시리즈다. 이 시리즈 연주 역시 오랫동안 망설이다 시작한 것이다. 2019년부터 영남일보에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는 기고문을 쓰면서 언젠가는 모차르트에 대해 연재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조금씩 자료를 찾아보고 있었다. 2020년 3월경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를 하면서 이 두 작품에 대해 알게 되었다. 1781년 크리스마스 날 하이든의 현악 4중주 '러시안 콰르텟' 6곡이 처음으로 연주되었는데, 이 작품은 당시 러시아의 파벨 대공에게 헌정되었기 때문에 '러시안 콰르텟'이라고 불린다. 각 6개의 곡에는 'How do you do?' '농담' '새'와 같은 부제가 붙어있기도 한데, 그만큼 하나하나가 다 개성 있는 작품들이란 의미다.

모차르트가 하이든의 작품에 감동받아 자신도 6개의 현악 사중주 곡을 작곡하기로 결심, 약 3년간 곡을 만들어 하이든에게 헌정한 작품이 '하이든 콰르텟'이다. 모차르트와 하이든 모두 당시 최고의 작곡가였고 서로를 존경하며 좋은 우정을 쌓았다. 이들의 인간적·음악적 교류가 미친 영향은 결국 명곡의 탄생으로 연결되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나'라는 사람도 결정된다. 사람 관계는 그만큼 소중한 것인데 이 작품들의 스토리는 소중한 관계가 미치는 영향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작품 12곡을 집중해서 들었다. 너무나 훌륭한 음악이었고 '이 작품 전체를 다 연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 생각을 실천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2020년 겨울이 되었다. 바쁜 연주 일정을 마치고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이런 때는 좋은 휴식이 필요하고 좋은 휴식에 모차르트 음악만 한 것은 없다. 모차르트의 '하이든 콰르텟' 6곡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이 작품들을 연주하고 싶어졌다. 2021년은 모차르트 서거 230주년이기도 하고, 하이든의 '러시안 콰르텟'의 초연 240주년이기도 했다. 의미 있는 도전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정말 가능할까? 바이올리니스트 김소정 선생님에게 의향을 물었더니 공부가 많이 될 것 같다며 승낙해줬고, 공간 울림에서 공동 기획으로 진행하기로 결정되면서 전곡 연주 시리즈는 시작됐다. 12곡을 한 해에 네 번으로 나누어서 연주했는데 쉽지 않았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 연습해야 했고, 그렇게 연주를 하나 마치고 나면 바로 다음을 준비해야 해서 심적인 부담감이 컸다. 하지만 마지막 네 번째 시리즈 연주를 할 때는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좋은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하면서 더 깊이 이해하고 느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훨씬 컸다. 네 명의 연주자가 1년간 함께 연습하며 점점 서로의 음악적 취향을 이해하게 되고 호흡이 맞아가는 것을 느끼며 뭔지 모를 뿌듯함도 있었다. 연주자 네 명 모두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매력에 빠져있었고, 그 성취감은 정말 컸다.

2021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사람'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상상하고 기획하는 건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이것을 실현하는 일은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내 생각과 상상을 실제로 구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자유를 누리는 삶이다. 이 사실들을 넘치게 경험했던 2021년을 마감하며 2022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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