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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 낙동강·금호강 합수지점에 있는 디아크. |
강바람이 불었다. 초봄임에도 강바람은 겨울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스산한 강둑에 하얀 머리를 부품하게 파마한 갈대군락을 비파소리로 흔드는 강바람은 아직 겨울 손이었다. 디아크로 가는 금호강변길은 무지 아름다웠다. 낙동강과 합수하여 근육을 불리고 흘러가는 그 아래 대구 달성보로 인하여, 강물은 가뭄을 잊고 풍만하게 출렁거렸다. 그리나 저 강도 나도 알고 있다.
4대강 보를 만들기 전 어느 해였던가, 나는 이 길을 걸은 적이 있다. 그때 겨울 가뭄이 심해 강물은 마치 거랑 물처럼 흘렀다. 솔직히 강이라고 말하기에 피골이 상접한 그 몸집은 무슨 미라 같았다. 희미하게 악취도 있었고, 강둑까지 홍수에 밀려온 쓰레기들이 너절하게 흩어져 있었다. 자연 눈에 쌍심지가 돋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양편 둑방의 경계까지 찰랑거리는 거대한 물은 옅은 잉크색으로, 내 마음에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을 주었다. 저 물을 펜에 찍어 편지를 쓰면 남십자성까지 가는 사랑을 적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강·물 모티브 기하학적 형상의 디아크
건물 전망대 와룡산·비슬산 조망 환상
상곡리서 만난 1.5m 높이의 미륵불
마을에선 미륵부처라 부르며 신성시
조선 학자 이윤 살았던 사랑채 장육당
어머니가 성종 아들 이성군 5세손 딸
일반 사가서 볼 수 없는 부연 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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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보에서 바라 본 넉넉한 낙동강. |
◆낙동강 디아크
이제 디아크(The ARC)가 눈을 가득 채운다. 디아크는 지구와 하늘, 문화에 대한 우아하고 기하학적인 접근과 강 문화의 모든 것을 담은 건축물로 예술품으로서 가치도 높다. 건축 콘셉트는 강 표면을 가로지르는 물수제비,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물고기 모양과 한국 도자기의 완숙함을 함께 표현했다. 강과 물, 자연을 모티브로 완성된 디아크는 현 콜럼비아 대학 건축학 겸임 교수인 하니 라시드(Hani Rashid)의 작품이다. 지하 입구로 들어간다. 안내 데스크 옆에 있는 전시공간이 나에게 윙크한다. 강과 사람, 강과 음악에 대해서는 테이블 위 지도에서 음악과 자막을 볼 수 있다. 강과 문학, 강과 미술 코너도 감성에 큰 울림을 준다.
1~2층에 있는 서클영상인 '생명의 순환'은 생명의 근원인 물, 문명의 젖줄인 강의 위대함을 심벌로 만든 영상이다. 즉 '생명의 탄생' '문명의 비상' '강의 교향곡' 세 작품으로 구성, 자연의 경외감과 생명의 순환, 그리고 물과 소통하는 초현실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강에 대한 서클 영상에서 우리 생명의 유전자를 점지하고, 자기 안에 있는 우주의 강으로 떠나는 시원(始原)의 체험을 할 수 있다.
3층으로 간다. 커피숍 지나 전망대로 나간다. 정말 끔찍한 뷰 포인트다. 대구 서부 와룡산 줄기부터 도시중앙, 남부 앞산 비슬산맥, 눈앞에는 등골이 서늘하도록 아름다운 낙동강이 꿈과 미래로 흘러가고 있다. 달성습지 화원동산에 시야가 멈추기도 한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고령 다산 성지산과 달성 다사 죽곡산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이곳이 정녕 기회와 약속의 땅, 그리고 생명의 강, 우리가 찾아 헤매는 가나안이 아닐까.
디아크를 나와 낙동강 본류 둑을 걸어 강정마을로 간다. 강정(江亭)은 신라 시대 정자인 부강정(浮江亭)에서 유래되었다. 이곳은 신라왕이 유람하였던 유서 깊은 곳이다. 좌로 꺾어 강정고령보로 들어간다. 탄주대 전망 데크에서 사방을 조망한다. 탄주대는 가야토기와 가야금 12현을 형상화한 기둥과 케이블로 연결한 전망 데크다. 넘실거리는 강물을 보면 정수리에서 생땀이 난다. 다리 아래 만든 낙락섬은 즐거움이 떨어진다는 뜻의 인공섬인데, 지금은 통행금지다. 물막이 보에는 물고기가 다니도록 계단으로 되어 있다. 여기로 강물이 흐르면 풍금 소리가 난다고 한다. 그 풍금 소리는 어쩌면 동요 '오빠 생각' 일 거라고 생각해 본다.
보가 끝나는 곳에 '고령은 행복한 삶이 샘솟는 도시입니다'라는 안내판이 있다. 조금 걸어 나가니 다산과 성주간 도로가 나오고 나는 우측으로 돌아 곽촌리로 간다. 곽촌리 마을 표석에서 좌측으로 튼다. 이 마을은 한약재인 곽(藿)이 많이 생산되어 곽촌리가 되었다 한다. 직진하다가 길이 막히면 좌측으로 튼다. 바로 성지산 안내도가 있어 훑어보고, 산으로 오른다. 달성서씨 묘가 나온다.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묘는 흙으로 돌아간 사람이 영원히 잠자는 집이다.
트레킹 로드가 좋아진다. 구절초 군락지를 지나고 주을지 삼거리도 지난다. 이제 저 숲에 나를 숨길 나이도 되었다. 솔잎이 소리 없이 떨어지고, 그 솔잎을 밟으면 걷는다. 쉼터 벤치가 나와 잠시 쉰다. '고령 행복누리길'이란 이정목도 서 있다. 다시 걷는다. 두 번째 고압선을 만나고 윙윙거리는 소리가 조금은 거슬린다. 작은 봉들을 오르고 내리고 파도타기를 한다. 우측 봉을 좌측으로 돌아가면 다시 만나는 에움길 안부, 윷판 같은 트레킹 로드다. 소나무가 멋진 통나무 계단을 오른다. 얼마나 훌훌하고 홀가분한지. 몸이 올라갈수록 마음은 내려가고 한 뼘 더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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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다산에 있는 장육당. |
◆고령 다산 성지산
이어 미륵령이 나오면서 갈림길이다. 성지산 정상 길로 간다. 미륵불은 정상에 갔다 되돌아 와야 한다. 자박자박 걸어도 곧 정상에 닿는다. 정상은 넓은 공터이며, 동쪽에 낙동강 전망 데크, 서쪽에 성주 방향 전망 데크가 있다. 양쪽 전망대를 오가며 먼 풍광까지 망막에 심는다. 여기도 환희의 뷰 포인트다. 미륵불로 가기 위해 길을 돌아서 간다. 잠깐 사이 미륵불이 나타난다. 거긴 미륵정도, 운동기구도, 해먹도 있다. 사람 왕래가 잦다는 직감이 든다.
옛 정취 절절한 돌담 안에 미륵불이 있다. 입구에 빗자루가 있고 주변 청소가 정갈하다. 이곳은 다산 상곡리다. 마을 사람들은 이 불상을 미륵부처라 부르며 신성시한다. 이전에 조그마한 암자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며, 그것을 뒷받침하듯 고려조선 시대의 기와, 청자, 백자편이 흩어져 있다. 미륵불은 1.5m 정도 통바위를 조각하였는데, 얼굴과 몸체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마모되어 있다. 미륵불을 찾는 사람들은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빌고, 고을의 안녕과 풍요를 애면글면 빌기도 한다. 그러나 미륵은 미래불이다. 장차 미륵불이 오면 단 한 번의 설법으로 수억만의 중생을 구한다고 한다. 불교는 각(覺), 즉 깨달음의 종교다. 팔만대장경의 진리로도 중생을 깨우치기 어려운데, 단 한 번의 설법으로 우리 중생을 부처로 만든다. 얼마나 통쾌하고 빵 터지는 가설인가. 부처의 몸을 한번 가지면 무량(無量)한 목숨을 받고, 천상의 복락(福樂)을 누린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에 환희심이 질퍽하게 흐른다. 정말이지 이렇게 볼품없는 석미륵이 뿜어 대는 무언의 힘에 나도 모르게 정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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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산 정상의 돌탑과 전망대. |
이제 내리막길이다. 돌탑 사이로 햇살 내리고, 숲에는 콩새가 사박사박 날아다닌다. 산자락에 있는 장육당에 들른다. 장육당은 다산 상곡 입향조 이지화의 아들인 이윤이 1671년에 건립, 거처한 사랑채다. 다른 고건축에서 잘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부연이 있어 궁금하다. 연유는 이 건물 창건 당시 이윤의 어머니가 조선 9대 왕 성종의 9째 아들 이성군의 5세손인 이구의 딸이었기에 일반 사가(私家)에서 달 수 없는 부연을 달았다. 말하자면 왕실로 장가 간 후광으로 부연을 달았던 것이다. 이윤은 당시 외가가 왕실이므로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고 여기서 후학을 기르면서 은둔하였다 한다.
상곡리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650번을 타고 화원이나 대곡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면 무사 귀가가 될 것이다. 잠깐 성지산을 본다. 미륵님, 미래완료의 시간 속에 계시는지요. 당신의 자비는 저 허공처럼 없는 곳이 없다지요. 그럼 우리는 왜 고통스러워야 합니까. 욕망으로 사니까 그렇다고 했지요. 깨달으면 고통이 없어진다고 해요. 빨리 오셔서 설법해 주세요. 미륵세계에서 고통 없이 함께 살면 좀 좋아요. 오늘 트레킹 로드는 도심에서 쉽게 갈 수 있고, 사랑하면 할수록 광채가 나는 보석 오팔 같은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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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문의: 디아크 수상레저 체험장 (010-2626-1386)
☞내비주소 :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806번지(디아크 주소)
☞트레킹 코스 : 지하철 2호선 대실역-디아크-강정고령보-성지산-미륵불- 장육당
☞인근 볼거리 : 육신사, 문양역 먹거리촌, 죽곡산, 반룡사, 대가야 궁성지, 미숭산성, 양전리 암각화, 관음사, 대평리 석조여래좌상, 고령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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