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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이 (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장) |
일반적으로 약을 먹을 경우 '식후 30분'을 가장 많이 떠올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약국에서 약을 짓거나 구매하는 경우 식사와 무관하게 복용해도 되는 약이라고 하거나 식사 전에 복용하면 된다고 복약지도 할 경우 정말 그래도 되는지 꼭 되물어보시곤 한다. 그만큼 약을 먹을 경우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약을 식후에 먹으라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속 쓰림, 소화 장애 등 위장 장애가 발생할 수 있는 약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약에는 아스피린이나 이부프로펜, 나프록센 등의 소염진통제 종류가 있다. 그런데 사실 위장장애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약을 잊어버리지 말고 규칙적으로 잘 복용해 약효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의약품이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복용 후 체내에서 일정한 농도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 농도를 유효혈중농도라고 한다. 이 농도보다 낮으면 약을 복용 하더라도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반대로 과도하게 많은 양이 체내로 흡수된다면 치료가 아닌 독성이 나타날 수 있다. 치료를 위한 유효혈중농도에 도달하는 시간 및 지속시간은 의약품마다 다른 만큼 이를 지표로 해서 의약품의 복용량, 복용 횟수를 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하루 3번 복용하는 약일 경우 이상적인 방법은 8시간마다 복용하는 것이지만 이 시간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자다가 일어나서 약을 먹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활동하는 시간을 3등분해 5~6시간 간격으로 복용하면 되는데 이때 빠뜨리지 않고 가장 잘 복용하는 방법이 식사 후 복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식후 30분은 왜 이야기가 나왔을까. 약으로 인한 위장장애도 피하면서 흡수가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식사 후 30분 정도의 시간을 두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약은 '식후 30분' 복용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연구 결과 식사 직후와 식후 30분은 약효 발현에 큰 차이가 없고, 30분의 간격을 두고 약을 먹으려고 할 경우 잊어버리고 지나치는 일이 많아 오히려 치료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따라서 식후 복용하도록 하는 약은 시간을 둘 필요 없이 바로 복용하면 된다.
또 원래 용법이 식사 직후에 복용하도록 하는 약들이 있는데 무좀약 중 '이트라코나졸' 성분의 약이나 혈중 중성지방의 농도를 낮추는 '페노피브레이트' 성분 등이 있다. 이는 약이 독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식사 직후가 약의 흡수율이 높기 때문이다. 식전에 복용하는 약도 많이 있는데 당뇨병약 중 일부를 비롯해 위장약, 결핵약, 갑상선약, 골다공증약 등은 음식물이 약의 흡수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식전에 복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식전에 복용하는 약을 잊어버리고 음식물을 먹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약 복용을 거르는 것보다는 식사 후 1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서 복용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한 번에 여러 종류의 약을 먹어야 하고 각 약의 복용법이 달라 복잡할 경우다. 이 경우 약을 제대로 다 먹지 못하고 남기는 사례들이 꽤 많은데 특정 복용 시점을 너무 지키려다 보니 오히려 그 시간을 놓치고 약 복용마저 거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규칙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약의 종류가 많고 그 복용법이 여러 가지일 경우 빠뜨리지 않고 잘 복용할 수 있도록 복용법을 좀 더 간단하게 정리해줄 것을 약사에게 요청하는 것도 좋다. 위 몇 가지 예로 본 것과 같이 약마다 최적의 복용 시점이 있는 만큼 그에 맞게 복용하되 너무 그 용법을 지키려다 복용을 거르는 것보다는 유효한 혈중농도를 유지하도록 규칙적으로 복용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질병 치료에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향이 (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장)

이향이 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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