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젖줄·넓은 평야 …고대부터 농경 발달 명실상부 농업수도로

  • 김일우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박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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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29   |  발행일 2022-06-29 제22면   |  수정 2022-07-18 07:22
[상주, 삼백의 고장에서 스마트팜 도시로 .2] 천혜의 조건 갖춘 상주농업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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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경북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낙동강 옆으로 농토가 펼쳐져 있다. 낙동강을 품은 상주는 비옥한 땅을 바탕으로 고대부터 농업이 발달했다.

강은 생명의 젖줄이다. 태고부터 수많은 생명체가 강을 따라 삶을 유지하고 번성해 왔다. 인류도 마찬가지다. 강은 인류에게 풍부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농사를 지을 비옥한 땅까지 내줬다. 낙동강을 품은 경북 상주도 일찌감치 농업이 발달했다. 조선시대에는 '삼백(三白)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찬란한 농경 문화를 꽃피웠다. 지금도 상주는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농업 도시로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상주, 삼백의 고장에서 스마트팜 도시로' 2편에서는 낙동강과 함께 한 상주 농업의 역사를 소개한다.

일교차 큰 분지지형 자연재해 적어
반달돌칼·탄화미 등 관련 유물 출토
일찍부터 수리시설 발달 벼농사 번성
조선시대 '삼백의 고장' 명성 얻어
17세기 농사법 기록한 책도 전해져

◆생명의 젖줄 낙동강을 품은 고장

28일 찾은 상주박물관 농경문화관은 상주 농업의 오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쟁기, 무자위, 지게와 똥장군 등 옛 농기구부터 농업과 관련한 서적 등 각종 유물이 가득했다. 유물들 사이로 유독 한쪽 벽면에 걸린 큼지막한 글귀가 눈길을 끌었다. '상주농업의 젖줄, 낙동강'. 상주 농업의 역사를 관통하는 문구다.

낙동강은 영남 전역을 유역권으로 하는 거대한 물줄기다.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해발 1천573m)에서 발원해 경북 주요 지역과 대구를 거쳐 남해로 흘러 들어간다. 낙동강은 상주의 옛 이름인 낙양(洛陽)에서 비롯됐다. 조선시대 학자 이긍익(李肯翊·1736~1806)이 지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지리전고(地理典故) 편에도 이렇게 적혀있다. "낙동(洛東)은 상주의 동쪽을 말함이다".

상주 동쪽은 비옥한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낙동강은 상주의 들녘을 기름진 옥토로 만들었다. 상주 남쪽과 서쪽에서 발원한 병성천, 이안천, 장천은 동쪽으로 흘러들어 낙동강과 합쳐진다. 지류(支流)가 낙동강으로 흘러들며 형성된 넓은 충적평야는 일찍부터 농경 발달의 토대가 됐다.

상주의 북서쪽은 백두대간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전체적으로 높은 산에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다 보니 일교차가 크고 자연재해가 적었다. 농업이 발달하기에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췄던 것이다.

일찍이 상주에 터를 잡은 이들은 낙동강과 그 지류 주변을 중심으로 모여들어 벼농사 등을 지었다. 낙동강 물을 끌어다가 본격적인 농업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낙동강 본류에서 서쪽으로 9㎞ 떨어져 있는 최소 1천400년 역사의 고대 농경용 저수지인 공검지(恭儉池)는 상주 농업의 유구한 역사를 상징한다. 삼한시대 3대 저수지였던 공검지는 당시 둑 길이 430m, 못 둘레 8.5~8.9㎞, 못 깊이 2~3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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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시 사벌국면에 있는 상주박물관 농경문화관 외부(위쪽)와 내부 모습.

◆고대부터 시작된 상주 농업

상주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왔다. 상주의 구석기시대 유적은 신상리 유적과 청리 유적 등에서 이미 확인됐다. 특히 신상리 유적은 경북에서 처음으로 발굴·조사된 구석기 시대 유적이다. 신상리 유적은 장천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해발 120m 구릉에서 발견됐다. 긁개, 찍개, 몸돌, 망칫돌 등 다양한 석기가 출토됐다. 영남지역에서 확인된 구석기 유적 가운데 가장 이른 전기 구석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반도에서 농경은 신석기 시대에 시작됐다. 구석기 시대에는 인류가 불을 이용하고 돌을 깨뜨려 만든 뗀석기를 사용했고, 먹을 것은 사냥과 채집으로 충당했다. 신석기 시대부터 인류는 정착 생활을 하며 농경과 목축을 시작했다. 상주 농경도 신석기 시대에 첫발을 뗀 것으로 보인다.

아직 상주에서 신석기 시대 유적이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청리 유적에서 구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유적이 동시에 발견됐기 때문에 신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상주교육지원청이 소장한 유물 가운데 지표 채집된 신석기 시대 유물도 있어 전문가들은 상주에도 신석기 시대 유적이 존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청리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의 반달돌칼 등 다양한 농기구는 꽤 오래전부터 상주에서 농경문화가 잘 발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상주에서는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의 집터와 분묘에서 탄화미, 반달돌칼, 민무늬토기 시루 등도 출토됐다. 고인돌, 선돌, 주거 유적 등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이나 소하천변 평지와 야산이 이어지는 구릉에서 청동기 시대 유적이 많이 나왔다. 낙동강을 품은 넓은 평야에서 고대부터 농경이 발달했던 것이다.

벼농사가 크게 번성했던 상주에서는 공검지 등 많은 수리시설이 축조됐다. 조선시대 영남에서 수리시설이 가장 많은 지역이 상주였을 정도다. 또 상주는 예부터 뽕나무가 유명할 정도로 목화를 재배하기에도 좋은 땅이었다.

◆삼백의 도시 거쳐 농업수도로

고대부터 쌀농사를 중심으로 싹튼 상주의 농업문화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삼백의 고장이라는 명성도 함께 얻었다. 삼백은 본래 쌀, 목화, 누에고치를 뜻했는데 지금은 목화 대신에 곶감이 들어간다.

농업 외에 상주에서 잠업(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치고 명주를 뽑아 옷을 짓는 산업)이 크게 발달한 것은 조선 후기 때부터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년)에도 상주의 특산물로 뽕나무가 기록돼 있다.

상주는 곶감의 고장으로도 유명했다. 상주 곶감의 기록은 예종실록(睿宗實錄·1472년)에 처음 나온다. 이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에서도 감을 상주의 특산품으로 기록하고 있다. 상주 곶감은 감나무가 잘 자라는 비옥한 토지에 큰 일교차라는 좋은 기후 조건까지 더해져 왕에게 진상할 정도였다고 한다.

농업기술도 뛰어났다. 17세기 상주와 안동 등 영남의 농사법을 기록한 수암(修巖) 유진(柳袗)의 위빈명농기(渭濱明農記)는 당시 나라에서 펴낸 농서 농가집성(農家集成)의 기초자료로 사용될 만큼 농업기술이 앞서 있었다. 지금도 상주는 농가, 농업인구, 농지면적 등 모든 면에서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농업도시다. 곶감 생산량 전국 1위, 배 생산량은 전국 3위다. 쌀, 오이 생산량도 경북지역에선 가장 많다.

쌀, 곶감, 사과, 포도, 배, 복숭아, 오이, 오미자 등 현재 상주의 특산물은 손에 꼽기 힘들 정도다. 또 한우와 양계 생산량은 경북 2위, 돼지 생산량은 경북 8위에 이를 정도로 축산업도 발전하며 전국에서 억대 농가가 가장 많은 도시로 우뚝 섰다.

상주시는 이런 상주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2007년 경천대 근처에 상주박물관을 세웠다. 이어 2017년에는 상주박물관 옆에 농경문화관도 열었다.

글=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전 영남일보 기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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