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보는 대구문화 아카이브 (35) 하대응] 대구음악가協 초대회장 등 맡으며 지역음악계 중심에 서…'진달래꽃''못잊어' 등 다수 가곡 발표

  • 백승운
  • |
  • 입력 2022-07-14   |  발행일 2022-07-14 제16면   |  수정 2022-07-14 07:29
6·25전쟁 때 육군종군작가단 활동하며 대구와 인연…남산여고·효성여대서 교직생활

하대응

못 잊어

時: 김소월
曲: 하대응

못 잊어 못 잊어
못 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못 잊어 못 잊어
못 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료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료
사노라면 사노라면
잊힐 날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못 잊어
못 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못 잊어도
더러는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하대응가곡집1
하대응가곡집2
'하대응 가곡집 I'(1963년·왼쪽 위)과 '하대응 가곡집 II'(1973년)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소월이 1923년에 쓴 시 '못 잊어'다. 그해 개벽 5월호에 발표된 이 시의 원제는 '못 잊도록 생각나겠지요'였다. 1925년 출간된 시집 '진달래꽃'에 '못 잊어'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실렸고, 이후 전 국민의 애송시가 됐다.

이 시가 처음 발표된 지 21년 뒤인 1954년 11월, 효성여대(지금의 대구카톨릭대) 교수였던 작곡가 하대응은 집 근처 호숫가를 거닐다 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다. 그가 거닐던 '주변 따라 산책길이 있고 길옆에 자그마한 숲이 있어 누구나 시 한 수 정도는 읊조려 볼 만큼 예쁜 호수'가 바로 대구의 수성못이다.

#1. 6·25 전쟁 일어나면서 대구와 첫 인연

1914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난 하대응은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면서 이상준 선생으로부터 음악의 기초를 닦았다. 졸업 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지금의 동경음악대학인 일본 동양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그러던 중 가창(歌唱) 선생이 음성이 좋다고 권유해서 성악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1936년 제5회 전일본(全日本) 음악 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1등 없는 2등으로 입상했고, 동경에서 열린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을 비롯해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의 주역을 맡기도 했다.

귀국 후에는 서울 부민관에서 첫 독창회를 열었다. 이후 교편을 잡기도 했다. 1939년부터 1952년까지는 서울가톨릭합창단을 지휘했다. 당시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와 합창 지휘를 겸했을 뿐 아니라 뛰어난 편곡 능력을 갖춰 독보적인 존재로 주목 받았다.

하대응이 대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6·25전쟁이 일어나면서다. 당시 그는 서울가톨릭합창단을 이끌고 군가 보급과 군 사기진작을 위해 종군했다. 대구에서 결성된 육군종군작가단에서 활동했다.

전쟁 중에 대구 남산여고 음악 교사를 지냈고, 1954년 효성여대에 음악과가 신설되면서 교수로 부임해 1980년까지 재직했다. 1955년에는 대구음악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고, 1959년에는 경북 예술단체총연합회를 발족했다. 1962년 초대 한국음악가협회 경북 지부장, 대구 방송관현악단 창립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대구 음악계의 중심에 서 있었다. '진달래꽃' '못잊어' '초혼' '나그네' 등 다수의 가곡을 남겼다. 1963년 '하대응 가곡집 I', 1973년 '하대응 가곡집 II'를 발표했다. 1965년 경북문화상, 1975년 향토음악 공로상, 1978년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했다. 1983년 5월 29일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별세했고, 그해 9월 5일 효성여대 강당에서 추모음악회를 열렸다.

3_하대응_기사지면2
하대응이 가곡 '못 잊어'를 작곡하게 된 배경이 실린 1976년 5월29일자 경향신문.

#2. 자주 찾던 수성못 거닐다 곡 떠올라

하대응이 소월의 시 '못잊어'에 곡을 붙이게 된 계기는 수성못을 산책하면서다. 효성여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당시 하대응은 학교가 있는 대봉동 근처에 살았다. 수성못은 집과 다소 떨어져 있었지만, 수시로 찾아 산책하곤 했다.

1954년 11월 초겨울 어느 날 밤, 하대응은 고향 홍천과 휴전 이후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자신도 모르게 집을 나와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수성못을 찾아 한참을 거닐기 시작했다.

달무리가 고요히 지는 밤, 귓가를 스치는 바람과 잔잔히 밀려드는 수성못의 물결은 하대응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풍경은 그리움이 되어 무리 지어 달려들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소월의 시 '못 잊어'에 멜로디를 붙여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달무리 지는 밤, 귓가를 스치는 조용한 바람 소리와 잔잔히 밀려드는 수성못 물결은 소월의 시가 풍기는 시골의 풍정(風情)과 애수(哀愁)를 내 가슴에 부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1976년 5월29일자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평소 소월의 시를 즐겨 암송하던 하대응에게 '못 잊어'는 그날 자신의 심정과 애수(哀愁)를 달래기에 충분했다.

이때까지 하대응은 소월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하대응은 그의 대표작인 '못 잊어'를 비롯해 '산' '진달래꽃' '먼 후일' '초혼' '접동새' '가는 길' '구름' '봄비' 등 소월의 시에 붙인 곡이 10여 편에 달한다.

"소월을 만나 본 적도 없고 그의 일생에 대해서 남달리 많이 알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집을 손에 잡고 있으면 고향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지요. 광복 전에 (소월의 고향인) 평북 정주와 삼수갑산에 다녀온 적이 있어 더욱 그의 시를 사랑하게 되었고, 시가 풍기는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경향신문 1976년 5월29일자 인터뷰에서)"

그날 수성못을 거닐며 소월의 시 '못 잊어'를 흥얼거리던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곧장 악보에 멜로디를 옮겨 적었다. 그렇게 탄생한 곡이 바로 국민 가곡 '못 잊어'다.

특히 하대응은 곡을 붙이면서 같은 단어를 두 번 또는 네 번씩 반복하며 느린 템포로 부드러운 멜로디를 만들어 냈다. 반복이 많아지면서 소월 시의 간결한 리듬의 맛은 달라졌다.

서정과 평온을 함께 안겨주던 수성못은 하대응의 기억 한 켠에 자리 잡은 그리움의 원천이었고 추억의 공간이었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가곡집 사진제공=대구문화예술아카이브 임우상·박말순 기증자료
공동기획 : 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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