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연꽃(2) 여름날 연못에 떠오른 청초한 자태…부처의 성품·다산 상징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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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26   |  발행일 2022-08-26 제34면   |  수정 2022-08-2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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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궁과 월지(안압지) 연꽃단지의 여름 풍경.

한여름 연못에서 피어나는 정결하고 아름다운 연꽃. 이 연꽃 덕분에 7~8월의 무더위를 잠시나마 잊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최근 들어 7월과 8월 전국 곳곳에서 연꽃축제가 열린다. 그 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 다양한 연꽃들이 수놓는 대규모 연꽃단지가 그만큼 많아진다는 말이다. 지자체들이 다양한 연못을 조성하고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연꽃단지를 조성한 덕분이다.

요즘과는 다른, 연꽃축제라는 말을 듣지도 못하던 30년쯤 전에 전남 무안 백련지를 찾아간 기억이 새롭다. 당시로는 보기 드문 백련, 즉 흰 연꽃이 가득한 드넓은 연못의 장관이 주는 감흥을 지금도 되살릴 수 있다. 넓은 들판에 위치한 회산백련지는 동양 최대 백련 자생지로 알려져 있다.

아라연꽃5
함안 아라홍련

연꽃 명소
'무안 회산 백련지' 동양 최대 자생지
서동요 설화 유명 '부여 궁남지 연꽃'
국내 최대 연근 생산지 '안심 연꽃단지'


전남 무안군 일로읍 복용리에 있는 이 회산백련지는 오래전부터 유명했다. 전체면적이 10만평 정도(31만3천313㎡)로, 2001년 동양 최대 백련 자생지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회산(回山)은 이곳 마을 이름이다.

일제 때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인근 마을의 주민들이 축조한 이 저수지는 영산강 종합개발계획으로 인해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기능을 상실하면서 백련 자생지로 탈바꿈했다. 1955년 여름 어느 날 이 마을의 한 주민이 연뿌리 12주를 이 저수지의 가장자리에 심으면서 시작됐다. 그날 밤 꿈에 하늘에서 학 12마리가 저수지에 내려와 앉는 모습을 보고 좋은 징조라고 여겨 정성을 다해 백련을 가꾸어 나갔다.

둘레가 3㎞인 이 백련지에서는 1997년 연꽃축제를 시작한 이후 해마다 연꽃축제를 열어왔다. 올해 제25회 무안연꽃축제는 지난달 21일부터 4일 동안 열렸다. 멸종 위기 식물인 가시연꽃 집단자생지이기도 한 이 백련지에는 수련, 홍련, 애기수련, 어리연, 노랑어리연 등 30여 종의 연꽃과 50여 종의 수생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부여 궁남지 연꽃도 유명하다. 궁남지는 서동요 설화로 잘 알려진 백제 무왕 35년(634)에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연못이다. 7월이면 5만여 평에 달하는 연못이 연꽃으로 가득해진다. 백련, 홍련, 수련, 가시연 등 다양한 연꽃이 피어난다. 연못 한가운데 떠 있는 아담한 정자(포룡정), 연못 가장자리 곳곳에 있는 초가지붕 파라솔과 아담한 벤치가 놓인 모습과도 잘 어울린다.

부여군은 이곳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03년 8월 제1회 부여서동연꽃축제를 개최했다. 형형색색의 연꽃들을 관람하며 다채로운 문화체험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밤에는 연꽃을 배경으로 하는 조명 쇼가 펼쳐진다. 올해 제20회 부여서동연꽃축제는 7월14일부터 4일간 펼쳐졌다.

우리나라 최대 연근 생산지인 대구 안심(반야월)연꽃단지도 유명하다. 2014년 안심지역이 국토교통부의 '도시활력증진 개발지역' 공모사업에 선정된 이후 대구시 동구청이 사업비 80억원을 들여 '안심창조밸리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이 연꽃단지도 새롭게 변신했다. 데크로드, 전망대, 연생태관, 레일카페 등 부속시설과 편의시설이 많이 갖추어져 도심 속의 힐링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가남지 코스, 점새늪 코스, 안심습지 코스 등 13㎞에 이르는 4개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도 2017년부터 연꽃축제가 열리고 있다. 대구 동구청이 주최한 올해 제5회 안심창조밸리 연꽃축제는 8월11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됐다.

경주 동궁과 월지 연꽃단지, 시흥 연꽃테마파크, 전주 덕진공원 연꽃단지, 양평 세미원, 함양 상림연꽃단지, 청도 유등지 등도 연꽃 명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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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궁과 월지 홍련


연꽃 이야기
고려 충선왕과 원나라 여인 사랑 정표
진흙에서 나왔으나 맑고 곧으며 고결
선비들이 사랑한 꽃…'군자'라 찬미


고려 충선왕이 젊은 시절 원나라에 가 있을 때,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 여인도 왕을 뜨겁게 사랑했다. 그러던 중 왕이 고려로 귀국하게 되었다. 여인은 당연히 따라나서려 했지만, 함께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이별해야 하자, 충선왕은 사랑의 정표로 연꽃 한 송이를 꺾어 연인에게 주고 떠나왔다. 둘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떠나온 후 왕은 한시도 그리움을 잊지 못해 동행했던 익재 이제현(1287~1367)에게 다시 돌아가서 여인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게 했다. 이제현이 가보니 여인은 다락 속에 있었는데,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여 말도 제대로 못 할 지경이었다. 겨우 몸을 일으키고 억지로 붓을 들어 시 한 수를 적어주었다.

'떠나시며 건네주신 연꽃 한 송이(贈送蓮花片)/ 처음에는 그렇게도 곱고 붉더니(初來灼灼紅)/ 가지를 떠난 지 지금 몇 날인가(辭枝今幾日)/ 초췌해진 모습이 나와 같구나(憔悴與人同).'

그 시를 가지고 돌아온 이제현은 자신의 가슴도 아팠을 것이지만, 그대로 전할 수 없어 엉뚱한 보고를 했다. "그 여인은 술집으로 들어가서 젊은 남자들과 술을 퍼마시면서 날을 보내고 있다고 하는데,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현은 이듬해 왕의 생일을 맞아 비로소 그 시를 올리며 사실을 고하고 사죄하며 처벌을 기다렸다. 사연을 알게 된 왕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 시를 보았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 여인에게 되돌아갔을 것이오. 경(卿)이 나를 사랑하여 일부러 거짓말을 하였으니, 참으로 충성스러운 일이오."

허백당 성현(1439~1504)의 '용재총화'에 수록된 이야기다.

연은 특히 불교와 인연이 깊은 식물이다. 연의 성품은 부처의 성품, 즉 불성(佛性)과 일맥상통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선 연은 늪이나 연못의 진흙 속에서도 맑고 깨끗한 꽃을 피워낸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여 비록 나쁜 환경 속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그 자성(自性)은 절대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불교의 기본교리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꽃이 피는 동시에 열매를 맺는다. 이것은 모든 중생은 태어남과 동시에 불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성불할 수 있다는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연꽃은 아름다우면서도 고결한 풍모를 지니고 있어 세속을 초월한 깨달음의 경지를 연상하게 한다. 그것은 곧 부처의 모습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

연꽃은 선비들로부터도 사랑을 받아왔다. 연꽃을 찬미한 글로는 북송 유학자 염계 주돈이(1017~1073)의 '애련설(愛蓮說)'이 유명하다. 국화는 '은일(隱逸)'로, 연꽃은 '군자(君子)'로, 모란은 '부귀(富貴)'로 특징지으면서 자신은 연꽃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군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특성을 지닌 연꽃을 사랑한다는 내용이다.

'물과 육지에서 피는 초목의 꽃 가운데에는 사랑스러운 것들이 매우 많으나, 진(晉)나라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하였고, 당나라 이래로는 세상 사람들이 모란을 매우 사랑했다. 내가 유독 연꽃을 사랑하는 이유가 있다. 연꽃은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럽혀지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은 비어 있고 밖은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않는다. 그리고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더 맑으며, 우뚝한 모습으로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함부로 하거나 가지고 놀 수 없음을 사랑한다.

내가 생각건대 국화는 꽃 가운데 은자(隱者)이고, 모란은 꽃 가운데 부귀한 자(富貴者)이며, 연꽃은 꽃 가운데 군자(君子)라고 하겠다. 아! 국화를 사랑하는 것은 도연명 이후에는 들은 바가 드물고, 연꽃을 사랑하는 것은 나와 함께 할 이가 어떤 사람일까? 모란을 사랑하는 이들은 마땅히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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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연꽃테마파크 수련

다산 기원
많은 종자 맺어…부인 의복에 연꽃문양
위장염·불면 치료…식품으로도 애용


연꽃은 종자를 많이 맺기에 민간에서는 다산의 징표로 보았다. 부인의 의복에 연꽃의 문양을 새겨넣는 것도 연꽃의 다산성에 힘입어 자손을 많이 낳기를 기원하는 것이었다.

연은 연못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논밭에다 재배하기도 한다. 뿌리는 옆으로 길게 뻗는다. 원주형이고 마디가 많으며, 가을철에 끝부분이 특히 굵어진다. 잎은 뿌리에서 나와 물 위에 높이 솟는다. 원형에 가까우며 백녹색이고, 잎맥이 사방으로 퍼진다. 잎 크기는 지름 40㎝ 정도이고, 물에 잘 젖지 않는다.

꽃은 7~8월에 피며, 보통 연한 홍색 또는 백색이다. 꽃대 하나에 한 개의 꽃이 달린다. 꽃받침은 녹색이며 일찍 떨어지고 꽃잎은 길이 8∼12㎝, 너비 3∼7㎝. 열매는 타원형이고, 길이 2㎝ 정도로 먹을 수 있다. 원산지는 인도이며, 오래전부터 재배됐다.

실생활에서는 약재와 식용으로 애용되어 왔다. 연꽃의 종자는 신체허약, 위장염, 불면 등의 증상에 치료제로 이용되었다. 잎은 소변장애나 토혈 등의 증상, 연근은 지사제나 건위제로 이용되었다. 연근은 식품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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