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제부도 트레킹…하루 두 번 바닷길 '쫘악'…모세의 기적이 열리는 섬

  • 김찬일 시인·방방곡곡트레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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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30   |  발행일 2022-09-30 제38면   |  수정 2022-09-30 08:44
바닷속 찻길 드러나면 펼쳐지는 갯벌
빨간 등대에서부터 '제비꼬리길' 시작
원시 그대로의 모습 간직한 염습지
강한 생명력 염생식물 대규모 밀집
가장 높은 탑재산 데크길 오르면 비경
드넓은 백사장에 자유와 해방감 만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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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빨간 등대와 데크전망대.

간물때였다. 시나브로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제부도 들어가는 구불구불한 S자 포장길은 갈회색 갯벌 위로 은박의 띠처럼 반짝거린다. 바닷물을 상실한 섬은 뭍의 한 팔이 되어 마치 연꽃을 쥐고 있는 듯, 아름다운 풍경이다. 섬은 화성 송교리 해안에서 1.8㎞ 서쪽 지점에 있다. 제부도는 예부터 뭍에서 아득히 바라보이는 섬이란 의미로 '저비섬' 또는 '접비섬'으로 불리었다. 조선조 중기 무렵부터 송교리와 제부도를 이어주는 갯벌 고랑을 어린아이는 업고, 노인은 부축해서 애면글면 건넌다는 뜻의 '제약부경(濟弱扶傾)'이라는 말이 전해 왔다. 여기서 '제(濟)' 자(字)와 '부(扶)' 자(字)를 따와 '제부리(濟扶理)'로 개칭되었다 한다.

이 섬은 하루에 두 차례 바닷길이 열리는, 이를테면 '모세의 기적'이 나타난다. 그러나 40년 전만 해도 제부도 사람들은 장화를 신고 갯벌 길에 빠지면서 뭍으로 건너가곤 했다. 그 뒤 갯벌에 돌다리가 놓이고, 한동안 그렇게 다니다가 1988년 지금과 같은 시멘트 포장길, 즉 바닷속 찻길이 되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잠시 눈을 감는다. 언제부터인가 눈만 감으면 더 또렷해지는 영상이 있다. 영화 '모세'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바닷물이 갈라진 홍해를 건너는 장면이다. 긴 영화 화면에서 이 장면만이 망막에 잔류해 눈만 감으면 기억의 회로에서 파르르 떨림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영문도 모르는 채. 눈을 뜬다. 섬과 주변 풍경이 눈자위에 아롱거린다. 속살 드러낸 갯벌은 얼마나 친환경적인지. 물 빠진 벌에 작은 어선 몇 척이 평화롭게 누워있다. 또 얼마나 친근한 배경인지. 배들의 방향타이며, 섬의 아이콘이기도 한 빨간 등대까지 그러구러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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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제비꼬리 데크길.

바다 쪽으로 난 데크 전망대에서 보는 풍광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그 충격이 등줄기까지 찌르르 관통했다. 물이 빠진 양쪽 바다 벌이 햇빛에 반사되어 희끄무레하게 백내장을 만든다. 가장 낮은 곳,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곳에 쾌속선과 어선들이 그럴싸하게 한 폭의 상상화를 그리고 있다. 전망대는 관광객으로 붐빈다. 저 섬과 바다가 정신을 흩뜨려 눈을 홉떠본다. 섬과 바다의 바람, 나는 저 허공을 흔드는 무언의 바람이고 싶었다. 이런 경험은 의식과 무의식을 이어주는 새로운 길이 된다. 마치 간조로 송교리와 제부도가 이어지듯이. 그래서 더 폭넓은 경험으로 학습되는 것이다. 빨간 등대가 제부도 서쪽 제비꼬리 길 출발점이다. 섬이 제비의 꼬리를 닮아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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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탑재산과 제비꼬리길.

바다 건너 뭍인 궁평이, 바다와 하늘 사이에서 감청색의 샌드위치가 된다. 그 뭍의 더 서쪽에 대부도 영흥도 자월도 승봉도가 떠 있다. 여기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풍경들이 눈과 감정을 사로잡아 먹먹하게 한다. 제비꼬리 길은 '제부도 문화예술섬 프로젝트'로 탄생한 트레킹 로드다. 왼편 너절한 상가를 지나 탑재산 밑 데크 길에 들어선다. 곳곳의 안내문 중, 시간에 대한 단상도 있다. 어쨌든 시간은 신(神)의 솜씨다. 성경 창세기 인간의 창조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가 있다. 여기에 나오는 '흙'과 '생기'의 원료는 시간이다. 인간은 심장 박동으로 시계를 만들었고, 시간의 줄을 타고 곡예를 하면서, 신의 나라를 엿볼 수 있었다. 인간의 일대기인 태어나고 병들고 늙고 죽고 하는 것이 시간의 얼개다. 그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시간의 법 앞에 우리는 예배하고 기도한다.

바다 쪽은 염습지다. 갯벌의 초원, 강한 바닷바람, 바닷물 그리고 큰 기온 차로 식물이 살기 힘든 곳, 오직 강한 생명력으로 가혹한 환경을 이겨나가는 염생 식물이 대규모 밀집된 지역이다. 사나운 파도를 잠재우는 마법을 부리며,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서 생태계 전이 지역의 역할을 해내는 섬의 염습지는 원시 그대로 적나라하다. 해안사구 식물도 보인다. 수분이 부족한 모래 언덕에서 염분, 기온 차라는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많은 잔뿌리를 이용해 억척으로 살아가는 여러해살이풀. 염색한 머리칼처럼 금빛인 모래 언덕의 풀들은 바람에 잠깐 흔들리다가 이전의 꿈 꾸는 기억으로 돌아가곤 한다. 이 풀들은 오랜 시간 척박한 환경을 견뎌내며 섬을 지켜 온 제부도 주민을 떠올린다.

수십 마리는 됨 직한 괭이갈매기가 이악스럽게 접근한다. 고양이 울음과 구별되지 않는 울음 탓으로, 괭이갈매기라 부른다. 해안 갯벌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텃새이다. 적응력이 뛰어나고, 사람의 움직임과 음식에 익숙하고, 어촌 식당에서 배출하는 음식물 쓰레기, 심지어 갯벌의 낙지까지 못 먹는 것이 없을 정도다. 한편 독 있는 복어나 먹을 수 없는 것을 던져주면 허투루 보지 않는 영악함도 있다. 물갈퀴가 있어 수영도 하며 갯벌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하는 새이다.

하늘의자에서 좌로 틀어 섬에서 제일 높은 탑재산 데크길로 오른다. 가파른 길이다. 오르면서 조망하는 비경에 눈이 헉헉 뜀박질한다. 하늘 둥지 전망대에서 사방을 두루두루 본다. 새 둥지처럼 포근한 쉼터, 자연이 터뜨려 주는 축복의 공간에서 숨을 고르고, 온몸의 촉각을 집중해 자연의 그림자까지 꿀떡꿀떡 삼킨다. 섬의 남단 매바위까지 드넓은 백사장, 더 멀리서부터 차츰 달라지는 물때 따라 바뀌는 풍경에 혼뜨검이 난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발을 뗀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간의 결박에서 벗어나 영원한 자유의 해방감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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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모세의 기적 찻길과 서해랑 해상케이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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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일 (시인·방방곡곡트레킹 회장)

정상을 거쳐 숲길을 지나 왕진물 쉼터에서 다시 풍광을 감상한다. 제부도와 전곡항을 잇는 2.12㎞ 구간의 서해랑 해상케이블카가 오락가락하는 광경은 정녕 현실이 아닌 것만 같다. 그리고 제부도 바닷길, 누에섬, 해상풍력, 마리나 등을 주시한다. 제부 마리나(marina)는 경기도 최대 규모로, 요트와 보트가 해상 176석·육상 124석이 정박하는 최신시설이다. 그러나 더욱 감동인 것은 간조 때면 송교리와 제부도를 잇는 포장된 찻길, 모세의 기적이 던지는 의미일 것이다.

'모세의 기적'은 무엇인가. 구약성경 출애굽기에서 '모세의 기적'으로 기록된 홍해 바다 갈라짐을 간추려 보자. 탐욕은 우리를 노예로 만든다. 반면 영혼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모세가 했던 것처럼.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누구라도, 모세가 이집트인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낸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을 것이다. 그 줄거리는 모세가 불타는 가시덤불 앞에 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놀라운 경배에서 시작된다. 모세는 히브리 노예 여인에게서 태어났다. 그러나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쳐 파라오 딸이 모세를 키웠다. 그가 장성하였을 때, 이집트 병사가 히브리 노예를 심하게 때리는 것을 보고 격분하여 그 병사를 죽였다. 이 소문이 곰비임비 퍼지자, 위기를 느낀 모세는 시나이반도로 도망가 십보라와 결혼하고 그곳에서 40년을 살았다. 어느 날 호렙산에서 양떼를 돌보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되고 숱한 곤란을 거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약속의 땅으로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떠나보내고 후회하던 파라오가 추격하여 오자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한 후, 뒤따라 오던 이집트 군대를 전멸시킬 수 있었다. 그게 '모세의 기적'이다.

그럭저럭 수산물 센터에 도착하고 트레킹은 마무리된다. 이런 내면에 영혼이 깃드는 트레킹으로 얻은 기쁨에 흠뻑 젖어, 나는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그리고 돌아온 나 자신의 내면에서 비로소 태초에서 지금까지 우리를 부르는 신(神) 앞에 신발을 벗고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글=시인·방방곡곡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백계분 여행사진 작가


☞문의 : 화성도시공사 제부도 관리팀 *물때시간 확인 필수
☞내비주소 :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제부로 224
☞트레킹 코스 : 제부도 빨간 등대- 데크길- 서서의자- 조개의자- 하늘의자- 탑재산 하늘 둥지- 하늘로(탑재산 정상)- 왕진물 쉼터- 제부도 수산물 센터
☞인근의 볼거리 : 백미항, 황금해안 길, 궁평 해송군락지, 궁평항, 화성호, 시화호, 대부도 해솔길, 전곡항, 고렴산 수변 공원, 누에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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