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의 행복콘서트] 수오(守吾) "천하 만물보다 '나'의 맑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 행복의 요체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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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07   |  발행일 2022-10-07 제34면   |  수정 2022-10-07 08:22
사람이 지켜야 할 바는 외물보다 '吾'
정약용이 형 서재이름 '수오'에 의문
유배지에서 깨달은 '나를 지키는 것'
어떤 유혹에도 '자신'을 잃지 않아야

다산초당
다산 정약용이 유배 시절 머물렀던 강진 다산초당.

몸과 정신이 맑고 상쾌해지는 가을이다. 이런 날씨 덕분에 흐트러진 마음도 차분해지면서 맑아지는 것 같다. 쾌청한 가을 하늘처럼 마음을 맑게 유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산 정약용(176~1836)의 글 '수오재기(守吾齋記)'가 있다. '나를 지키는 집(서재)에 대한 기록'이라는 의미다. 자신의 큰 형님인 정약현(丁若鉉)이 서재의 이름으로 걸어 놓은 현판의 의미에 대해 쓴 글이다. 사람이 가장 지켜야 할 바는 외물이 아닌 '나(吾)'이고, 나의 본래 성품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나를 지킨다'라는 의미의 '수오(守吾)'라는 서재 이름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그러나 벼슬길에서 쫓겨나 유배의 길에 오르자 '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것인가를 깨달으면서 이 글을 썼다.

"수오재(守吾齋)라는 것은 큰 형님이 그 거실에 붙인 이름이다. 나는 처음에 의심하며 '사물이 나와 굳게 맺어져 있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는 나[吾]보다 절실한 것이 없으니, 비록 지키지 않더라도 어디로 갈 것인가. 이상한 이름이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장기로 귀양 온 이후 홀로 지내면서 정밀하게 생각해 보았더니, 하루는 갑자기 이러한 의문점에 대해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천하의 만물이란 모두 지킬 수는 없고, 오직 나만은 마땅히 지켜야 한다. 내 밭을 지고 도망갈 자가 있는가? 그러니 밭은 지킬 것이 없다. 내 집을 지고 달아날 자가 있는가? 그러니 집은 지킬 것이 없다. 나의 정원의 꽃과 과실나무 등 나무들을 뽑아갈 자가 있는가? 그 뿌리가 땅에 깊이 박혀 있다. 나의 책을 훔쳐 없애버릴 자가 있는가? 성현의 경전은 세상에 널리 퍼지기를 물이나 불과 같은데, 누가 능히 없앨 수 있겠는가? 나의 옷과 식량을 도둑질하여 나를 군색하게 하겠는가? 지금 천하의 실이 모두 내가 입을 옷이며, 천하의 곡식은 모두 내가 먹을 양식이다. 도둑이 비록 한두 개를 훔쳐 가더라도, 천하의 모든 옷과 곡식을 모두 없앨 수 있겠는가. 그런즉 천하의 만물은 모두 지킬 것이 없다.

오직 이른바 나라는 것은 그 성품이 달아나기를 잘하여 드나듦에 일정함이 없다.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어서 서로 배반하지 못할 것 같으나, 잠시라도 살피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이익과 작록(爵祿)으로 유인하면 가버리고, 위엄과 재화(災禍)가 겁을 주면 가버리며,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만 들려도 가버리고, 새까만 눈썹에 흰 이빨 미인의 요염한 모습만 보아도 가버린다. 그런데, 한 번 가면 돌아올 줄을 모르니 붙잡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서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 것으로는 나 같은 것이 없다. 어찌 실과 끈으로 잡아매고 빗장과 걸쇠로 잠가서 굳게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나를 잘못 간직했다가 나를 잃은 자이다. 어렸을 때는 과거 급제하는 명예가 좋게 보여서 과거 공부에 빠진 것이 10년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처지가 바뀌어 조정에 나아가 검은 사모를 쓰고 비단 도포를 입고, 미친 듯이 대낮에 큰길을 뛰어다녔다. 이처럼 하기를 12년이었다. 또 처지가 바뀌어(유배의 몸이 되어) 한강을 건너고 문경새재를 넘어, 친척들과 멀어지고 조상의 묘소를 버린 채 곧바로 아득한 바닷가의 대나무 숲(첫 유배지인 포항의 장기)에 달려와서야 멈추게 되었다. 이때에는 나도 땀이 흐르고 두려워 숨을 죽이면서, 내 발뒤꿈치가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내가 나에게 말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가? 여우나 도깨비가 끌어서 온 것인가? 또는 해신(海神)이 불러서 온 것인가? 그대의 집과 고향은 모두 초천(苕川)에 있는데, 어찌 그 본향(本鄕)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그러나 끝끝내 나라는 것은 멍한 채로 움직이지 않으며 돌아갈 줄을 몰랐다. 그 얼굴빛을 보니 마치 얽매인 것이 있어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끝내 붙잡아서 함께 머물렀다. 이때 나의 둘째 형님 좌랑공(佐郞公)도 그의 나를 잃고 나를 따라 남해로 왔으니, 역시 자신을 붙잡아서 그곳(유배지)에 머물렀다. 오직 나의 큰 형님만은 그 나를 잃지 않고 편안하고 단정하게 수오재(守吾齋)에 앉아 계시니, 어찌 본디부터 지키는 것이 있어 나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큰형님께서 그의 거실에 이름 붙인 까닭일 것이다.

큰형님께서 일찍이 '아버지께서 나에게 태현(太玄)이라고 자(字)를 지어주셨으니, 나는 오로지 나의 태현을 지키고자 이것으로써 나의 거실에 이름을 붙였다'라고 하셨지만, 이것은 핑계 대는 말씀이다.

맹자가 이르되 '지켜야 할 것 중에 무엇이 가장 중대한가?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대하다'라고 하였으니, 그 말씀이 진실하다. 드디어 나 스스로 말한 것을 큰형님께 보이고 수오재의 기(記)로 삼는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내용이다. 자신을 지키는 것, 자신의 맑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 행복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자신을 잃지 않고 주인으로 산다면, 당신이 있는 그곳은 모두 참된 자리라는 의미다. 당나라 임제 의현(?~867) 선사의 말이다.

이 구절 앞뒤 내용을 함께 보자.

"수행자들이여, 부처님 법은 애써 힘쓸 필요가 없다. 다만 평소 아무 탈 없이 똥 싸고 오줌 누고, 옷 입고 밥 먹으며, 피곤하면 잠자면 된다. 그뿐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비웃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안다. 옛 성인 말씀하시길 '밖을 향해 공부하지 마라. 그것은 어리석은 이들의 짓일 뿐이다'라고 했다. 그러니 그대들은 어디에 있으나 주인이 된다면, 있는 곳 그대로가 모두 참된 것이 된다. 어떤 경계가 다가오더라도 그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불법을 깨닫는 차원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어떤 상황이나 유혹에도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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