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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장 |
동북아시아에서 대관(帶冠)은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에서만 확인된다. 4세기 후반에 불교가 전래된 고구려의 전역과 백제의 중앙에서는 대관을 찾을 수 없다. 6세기 전반에야 불교를 공인한 신라는 질과 양 모두에서 대관의 중심지인데, 재래 종교의 무구(巫具)와 함께 부장한 사례도 관찰된다. 이 기준은 사람이 착용한 경우인데, 대관이 종교와 연관되어 있음을 입증할 분명한 근거이다. 종교와 관련된 흥미로운 점은 고구려에도 있다.
그간 고구려의 대관은 3개체가 알려졌다. 하나는 일본 덴리참고관(天理參考館) 소장품이고, 다른 하나는 평양 청암리토성 인근에서 1950년대 도로공사 도중에 수습한 금동관 2점이다. 덴리참고관 소장품은 말안장 꾸미개 2개를 가느다란 금속 띠로 엮어 재조립한 것일 뿐, 관이 아니다. 소장처에서 잘못된 정보로 전시했기에 직접 관찰하지 않은 글에 오해가 있었다. 청암리토성 출토 금동관 2점은 금동광배. 금동불상, 여러 금동장식과 함께 수습되었고, 가까이 건물지가 있다고 알려졌다. 이 금동관은 불꽃무늬 세움 장식과 투조 무늬로 꾸민 머리띠를 조합한 대관 형태인데, 머리띠에 입체적인 연꽃장식과 금속판으로 만든 매듭을 부착한 독특한 모양이다. 사실 연꽃장식은 머리띠를 어디에 고정시키는 데 쓴 못이다.
거의 모든 연구자들은 청암리토성 출토 금동관을 불교조각의 보관(寶冠)으로 판단한다. 비록 한반도에서는 이 금동관뿐이지만, 일본 나라현에서는 호류지(法隆寺)의 백제관음상 및 구세관음상과 도다이지(東大寺) 산게츠도(三月堂)의 관음상에서 이러한 유형의 보관을 살펴볼 수 있다. 청암리토성 출토품이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고, 일본 호류지와 도다이지의 것이 뒤를 이어 차례차례 제작되었다. 불교조각의 보관이기에 매듭은 움직이지 않게 흉내만 내었고, 조각에 부착할 못의 대가리는 불교의 상징인 연꽃봉우리 모양으로 꾸몄다. 불교 조각의 보관이 대관 형태인 점은 앞선 시기 신라의 대관이 재래 종교와 관련된 점과 묘하게 이어진다.
통설과 다르게 청암리토성 출토 금동관을 사람이 착용한 대관이라고 여기는 경우를 종종 본다. 혹시나 이러한 생각이 이 금동관을 모방한 고구려 금관 때문이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가짜 금관은 주로 경주 교동금관을 베꼈다. 가끔 우리나라와 일본에 돌아다니며 국보급 문화유산이 유출된 듯 호들갑을 떨며 소식을 전한다. 수많은 가짜 금동관을 제쳐두더라도, 시중에 나도는 가짜 금관은 4개체를 확인하였다.
국립경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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