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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분쟁 전문기자 |
"미국 의원들 욕하는 한국 지도자 윤석열을 핫 마이크가 포착"<시엔엔>, "한국 대통령 윤석열, 핫 마이크에 잡힌 미국 모욕 부인"<비비시>, "대통령 윤석열, 한미동맹 훼손한다며 한국 언론 비난"<에이피>, "한국 대통령의 당, 핫 마이크 자막으로 방송사 고발"<아에프페>, "한국, 대통령의 핫 마이크로 왁자지껄"<방콕 포스트>.
<알아라비야>, <스트레이츠 타임스>, <더 힌두>, <마닐라 불레틴>, <알자지라>, <자카르타 포스트>, <가디언>, <도이체 벨레>, <워싱턴 포스트>, <교도뉴스>, <시비에스>….
꼽기도 숨차다. 외신 한 마흔 개쯤을 훑다 말았다. 아시아, 유럽, 미국 가릴 것도 없다. 진보, 보수가 따로 없다. 온 세상 언론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막말을 들쑤셔 놓았다. <비비시>는 아예 시사 코미디로 띄웠다. 기가 차고 맥이 빠진다. 30년 넘게 아시아 정치판을 취재하며 대통령, 총리, 혁명 지도자를 비롯해 숱한 정치인을 공적, 사적 자리에서 만나왔지만 욕지거리로 탈이 난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다.
대통령 막말이 하도 눈꼴 사나워서 며칠 새 우리말 공부를 다시 했다. '새끼'부터 찾아봤다. 본디 시아우를 가리킨 '시아기'에서 '새기'로 다시 '새끼'로 변했다는데, 요즘은 생물의 '어린 것'을 가리키거나 '놈'과 같은 욕으로 통한다고. 그다음 '쪽팔리다'는 어원을 놓고 말들이 많지만, 얼굴을 일컫는 '쪽'에 '팔리다'가 붙은 합성어로 '부끄러워 체면이 깎인다'를 뜻하는 비속어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말썽거리가 된 대통령 윤석열의 말을 모든 언론사가 '새끼'를 '××'로 썼다는 건 입에 담기 힘든 욕이란 뜻이다. 사실은 '쪽팔려서'도 기사에선 가려야 할만한 막말이다. 상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공적인 자리에서 이런 거친 말을 쏟아내지 않는다는 걸 대통령 언저리도 알긴 알았던 듯. 곧장 "사적인 자리였다"고 발뺌한 걸 보면. 장담컨대, 카메라가 돌고 기자들이 따라붙는 국제회의 동선을 사적 영역이라 우기는 자들은 대한민국 대통령실뿐이다. 시민이 세금 내서 대표선수로 보낸 대통령의 국제 외교 현장을 사적 영역이라니!
대통령 윤석열은 한술 더 떴다. "동맹을 훼손하는 건 국민을 위험에 빠트리는 일". 이걸 변명이랍시고! 천만에, 대한민국 시민 가운데 대통령의 욕 따위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는 아무도 없다. "진상이 더 밝혀져야 한다." 밝히고 말고 할 일도 없다. 대통령이 고백하면 끝이다. 이번 논란의 고갱이는 '바이든'도 '대한민국 국회의원'도 아니다. 세상 모두를 ××로 낮잡아 보는 대통령의 인성이 드러났다는 대목이다. "(욕한) 기억이 안 난다"는 그 확인용으로 충분했다. 이건 법적 공방에서 혐의를 잡아떼는 아주 상투적인 말이다. 대통령의 욕에서 비롯된 이 논란의 본질이 이제 대통령의 거짓말로 옮겨가는 꼴이다.
이미 엎지른 물. 사과란 것도 다 때가 있다. 늦었다. 욕을 입에 단 대통령한테도 지켜야 할 명예가 있다면, 내친김에 부디 <엠비시>뿐 아니라 <영남일보>를 비롯해 그 욕을 보도한 대한민국 언론사 150여 개와 더불어 국제 언론사를 모조리 고발하기 바란다. 국제 언론사 명단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바칠 테니.
"고발하면 우리야 좋지. 뉴스거리 없던 터에 잘 됐다." <더 네이션> 국제 편집장을 지낸 내 친구 비아냥이다. 남세스러워 고개를 들 수 없는 아주 불쾌한 아침이다.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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