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외래어 담배 이름 유감

  • 양경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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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10   |  발행일 2022-10-10 제20면   |  수정 2022-10-10 07:38

양경한
양경한 (시인)

우리말 담배 이름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어 안타깝다. 영어로 된 담배 이름이 대부분이며 심지어는 일본말을 연상하게 하는 것도 있다. 현재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담배는 궐련 담배뿐이며, 그 종류는 23가지나 된다. 궐련은 얇은 종이로 길게 말아놓은 담배를 말한다. 원래 '권연'이라 했는데, 이것이 활음조와 유음화 현상으로 궐련이 되었다.

현재 한국담배인삼공사에서는 종이로 말은 지궐련만을 시판하고 있다. 오늘날 유통되고 있는 지궐련 담배의 종류는 25가지다. 그중 영어로 된 담배이름이 17개로 70%에 해당하고 우리말 담배 이름은 8개로 25%에 불과하다. 영어로 된 담배 이름을 보면 'rich, esse, simpie, get2, deiune, mikde, linc, liacap멘솔, eighty eight라이트, eighty eight골드, time, mount, this plus, cima 등이다. 이 같은 담배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담배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이름을 가진 담배들이 외국담배와 섞이면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외래어 이름을 쓴다고 해서 우리 담배를 잘 팔 수 있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말로 된 담배 이름으로는 한라산, 도라지, 한마음, 하나로, 은하수, 무궁화, 장미, 솔, 시나브로 등이다. 수출을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영어로 표기를 해야 할 때에는 한글과 로마자를 함께 표기하면 우리나라를 널리 알릴 수도 있고 담배도 팔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나타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나라 담배에는 우리말로 지은 이름이 가장 아름답고 세계적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더욱이 전 세계적으로 K-한류가 빛을 보는 시대가 아닌가.

담배 이름은 우리의 정치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45년 9월 광복의 기쁨을 담아 첫 한글로 된 '승리'라는 담배가 나왔다. 이듬해 국민 가슴에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과 국화인 '무궁화'를 한글로 표기한 담배가 나오기도 했다. 1961년 이후 박정희 정부 때는 '재건, 새마을, 상록수, 희망, 비둘기, 개나리, 남대문, 거북선, 샘' 등 전통적인 이름이었다. 88서울올림픽 대회 이후 영어가 많이 쓰였다. 80년 '솔' 담배에 이어 'pine three'라는 영어가 등장했다. 87년엔 한글과 한자 이름을 제치고 처음으로 영어로만 쓰인 'eighty eight 88'이 나왔다. 이를 기점으로 우리나라 담배 이름이 영어로 바뀌는 전환점이 되었다. 89년에는 'lilac'이라는 영어가 아주 큰 글자로, 한글은 아주 작은 글자와 함께 나옴으로써 우리말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90년 deli mild 100, 88이 등장하면서 이때부터는 외국말 담배 이름이 쏟아져나왔다.

우리말 담배 이름은 몇 년에 하나씩 구색 맞추기식이었다. '솔'에 이어 82년 '장미', 88년 '도라지', 89년 '한라산'. 92년 '하나로' 이후 7년여간 우리말 담배 이름은 사라지고 외국말로만 생산됐다. 그러다가 99년 '시나브로'를 7년 만에 내놓았다. 2000년 '한마음'이란 담배를 끝으로 지금까지 우리말 담배는 없다.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좋은 우리말 담배 이름이 많아질 때 한국의 위상은 높아질 것이다. 국어순화는 말할 것도 없다.

양경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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