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조말선 - 삶

  • 송재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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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10   |  발행일 2022-10-10 제21면   |  수정 2022-10-10 06:54

살이 답답하니까 입이 터진 거라고 살이 꽉 찼으니까 숨을 쉬게 된 거라고 살이 꿈틀꿈틀 비어져 나오니까 겹겹이 옷을 벗는 거라고 살이 살 만하니까 뛰쳐나갈 옆문을 튼 거라고


살을 따라붙은 입이라고 하는 말이


살이 아니라 살로 둘러싼 욕망 때문에 살을 키우는 거라고 살을 키워 살로 유혹할 수만 있다면 살이 아니라 살로 둘러싼 난감함 때문에 살을 키우는 거라고 살을 키워 칠흑 속에 가두어야만 하겠니

조말선 - 삶


근대 이후 인간의 살은 육체이면서 욕망의 표면이란 역할을 기꺼이 떠맡았다. 마찬가지로 살은 육체를 지배하면서 정신까지 넘나들고 있다. 조말선의 시에서도 살은 스스로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능동체가 되었다. 욕망이 앞장서면 비극은 저절로 따라오는 법, 살은 그 중심이다. 살이 답답하면서 입이 터진 것이라는 구절을 읽다가 비명 때문에 입을 꽉 다물고 싶어진다. 살이 꿈틀꿈틀 비어져 나오니까 겹겹이 옷을 벗는 거라는 부분에서 비만투성이의 내 살을 힐끗 훔쳐본다. 살을 키우는 것은 살이 아니라 살을 둘러싼 욕망 때문이라는 시인의 자괴감에 내 자괴감을 얹어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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