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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표현의 자유 논란이 일고 있다. '또다시'라는 말을 굳이 붙인 건, 소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이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은 얼마 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개최한 '한국만화축제'에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의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며, 문화체육관광부가 유감과 엄중 경고의 입장을 밝히면서 크게 번지게 되었다. 문체부의 표현대로 이것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냐에 대한 논란도 있고, 작품의 표절 논란도 있기에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이슈로만 한정해서 본다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건, 불현듯 엄습하는 기시감 때문이다. 그것은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와 진일보했다고 믿고 있는 사회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길 바라며, 부디 지난 과오가 이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말의 노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영화계는 오랫동안 표현의 자유를 위해 저항해 왔다. 특히 주류가 아닌 변방의 독립영화는 더더욱 그러하다. 독립영화는 그 개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관습화된 주류의 언어와 이미지를 깨기 위해 수없이 많은 도전을 해왔다. 이러한 독립영화의 예술적 지향과 금기에의 도전은 권력의 탄압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사전검열이라는 말이 이제는 좀 어색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이유는 지금 같은 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영화에 대한 사전검열이 없어진 건 문민정부 시절인 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내려지고 나서부터였다. 불과 26년 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국가에서 영화를 검열했다. 중간에 검열이 아닌 심의라는 이름으로 바뀌긴 했지만, 취지는 마찬가지였다. 국가 정책에 비판적이면서 소위 반체제적인 영화는 애초에 제작될 수가 없었다. 권력은 문화예술을 탄압하기도 하였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전두환 정권 당시 '3S정책'과 '국풍81'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잠재우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활용하였다. 후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며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라는 문화예술에 대한 대원칙이 세워지며, 표현의 자유는 민주화된 한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21세기에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었다. 작년 '보이스'라는 영화로 성공적인 상업영화 데뷔를 한 김곡, 김선 감독의 전작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는 2010년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게 된다.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는 건 포르노그래피와 같은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만을 상영할 수 있는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할 수 있는 영화로 분류되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한국에는 제한상영관이 없으므로 이는 영화관에서 개봉할 수 없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였다. 당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판정 사유는 '특정 정치인의 경멸적, 모욕적 표현 수위가 다분히 의도적이며 극심해서 개인의 보편적 존엄과 가치를 현저하게 손상하는 것으로 판단됨. 아무리 표현의 자유, 창작의 자유가 존중되어야 하는 민주주의 국가라 해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라는 것이었다.
김곡, 김선 감독은 이에 굴하지 않고 2012년 재차 등급분류를 신청하지만, 역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게 된다. 결국 이들은 이와 같은 등급분류판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등급분류결정취소 소송을 제기하였다. 대법원까지 가는 지난한 법정 공방 끝에 승소하게 된다. 판결의 내용은 "'제한상영가 영화는 현재 국내에 제한상영관이 없으므로 사실상 국내개봉이 불가능' '다수의 영상 표현기법과 여러 장르를 혼합한 실험적 작품' '베를린영화제 등의 영화제에서 공식 상영된 점' '영화진흥위원회가 예술영화로 인정한 점' 등을 볼 때 일반 영화상영관에서 이 사건 영화를 관람할 수 없게 한 것은 과도한 규제이므로, 이 사건 처분은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하여 위법하므로 제한상영가 등급을 취소한다"라는 것이었다.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이후에도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사건은 없어지지 않았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이었던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다이빙벨'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반대하였다. 이미 프로그램으로 확정된 영화에 대한 검열이자 정치 권력의 부당한 개입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측은 '다이빙벨' 상영을 예정대로 강행하였지만, 감사원의 감사, 검찰 조사, 예산 삭감 등 뒤따른 대가는 혹독했다. 어딘가 익숙한 장면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문화예술에서의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법적으로 상당히 보장되어 있다. 2014년 제정된 '문화기본법'에서는 문화의 다양성과 자율성, 문화 창조의 자유에 대한 보장이 명시되어 있다. 작년에 제정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에서는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예술인의 노동과 복지 등 직업적 권리를 신장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결국 이러한 논란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지속적으로 예외적 상황과 맞닥뜨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닐까. 있는 법을 잘 지켜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말이 이토록 나이브(naive)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권력의 상식과 선의에 기대기에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축적해 온 모든 성과를 너무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일일 것이다. 여러모로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들면서도, 부디 이 기시감이 현실로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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