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 기자의 '지구촌 산책' .30] 中 허베이성 백림선사…"끽다거" 번뇌·망상 제거 화두 던진 승려 '조주'의 佛心과 마주하다

  • 김봉규
  • |
  • 입력 2022-10-14 08:50  |  수정 2023-01-20 08:11  |  발행일 2022-10-14 제35면
中 선불교 꽃피운 조주 종심
80세부터 40년간 관음원 머물며 불법
조주 사리 모신 천년 버텨온 조주탑
'평소 마음이 도' 깨달음 얻은 오도송
경내 곳곳 전각·박물관·연구소 관람
중생에 가르침 주는 돌다리 조주교

2022101001000198000007851
중국 허베이성 스좌장에 있는 백림선사 입구. 조주 스님이 80세 때부터 40년 동안 머물렀던 곳이다.

당나라 승려인 조주 종심(778~897)은 중국의 선불교를 꽃피운 대표적 선사(禪師)다. 조주(趙州) 고불(古佛), 즉 '조주의 옛 부처'라는 칭송을 들은 그는 특히 많은 유명 화두(話頭 :불교 참선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구하는 문제)를 남겨 지금도 많은 선수행자들을 깨달음의 길로 이끌고 있다. '차 한 잔 하게(喫茶去)' '뜰 앞의 잣(측백)나무(庭前柏樹子)' '무(無)' 등이 그가 탄생시킨 대표적 화두들이다. 조주는 중국 허베이성(河北省)에 있는 지역 이름이다.

보기 드물게 120세까지 장수한 그는 80세 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조주성(趙州城)동쪽 관음원에 머물며 불법을 펼쳤다. 조주라는 그의 법호가 지어진 연유이기도 하다. 조주가 오랫동안 머물며 많은 화두와 일화를 남긴 관음원은 송나라 때는 영안서원(永安禪院), 금나라 때는 백림선원(柏林禪院)으로 불렸다. 원나라 때부터 백림선사(柏林禪寺)로 불리고 있다. 이 백림선사는 2013년 12월에 들러봤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출가한 조주는 은사를 따라 여러 곳을 전전하다 18세 때 남전 보원(748~835) 선사를 만나 그의 문하에 머물며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그는 스승이 입적할 때까지 40년간 정성을 다해 모셨다. 스승 열반 후에는 60세가 넘은 몸을 이끌고 20년 동안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중국 천하를 만행했다. 그는 행각을 나서면서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곱 살 먹은 아이라도 나보다 나은 이에게는 내가 물을 것이요. 100살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이는 내가 가르치리라."

조주는 80세 때 조주성에 있는 관음원에 정착, 120세가 되도록 40년 동안 머물렀다.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을 하며 후학들을 가르치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불법을 폈다. 선가(禪家)의 제일 화두인 '무(無)'자 화두를 비롯해 '차 한 잔 하게' '뜰 앞의 잣나무' '청주의 베옷' '진주의 큰 무' 등 번뇌와 망상을 제거하는 유명 화두들이 모두 조주에게서 나왔다.

조주 스님은 20세 무렵 남전 스님의 '평소의 마음이 도(平常心是道)'라는 말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조주의 오도송이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달빛 밝으며/ 여름에는 산들바람 불고 겨울에는 흰 눈 내리네/ 쓸데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인간세상의 좋은 시절이로다(春有百花秋有月 夏有凉風冬有雪 若無閑事掛心頭 便是人間好時節)'

2022101001000198000007852
'백림선사' 편액. 중국불교협회장을 지낸 조박초(1907~2000) 글씨다.
조주교
백림선사 근처에 있는 조주교. 조주 스님의 유명세로 붙은 다리 이름이다.

◆조주 선사가 40년 동안 불법을 편 곳

백림선사는 허베이성 성도 스좌장(石家壯)시 자오현(趙縣)에 있다. 한나라 헌제 건안 연간(196~220)에 건립돼 처음에는 관음원(觀音院) 또는 동원(東院)으로 불렸다.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원나라 때다. 사찰 입구 좌우에 이런 주련이 걸려 있다.

'절 안에는 천년을 버텨온 조주탑이 있고/ 산문은 조주의 만리교를 마주 대하고 있다(寺藏眞際千秋塔 門對趙州萬里橋)'

조주가 이 사찰의 주인공임을 말해주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전각들과 더불어 푸른 측백나무들이 곳곳에 서 있다. 이 주련에 나오는 '진제(眞際)'는 조주의 시호다.

사찰의 중심은 측백나무 길이 끝나는 곳에 높이 서 있는 아름다운 탑이다. 조주의 사리를 모신 조주탑이다. 정식 이름은 '특사대원조주고불진제광조국사탑(特賜大元趙州古佛眞際光祖國師塔)'.

2022101001000198000007854
백림선사에 있는 조주 사리탑.

조주가 별세한 후 문도들은 그의 사리와 바리때 등을 수습해 검소하게 모셨다. 세월이 지나 원나라 때 황제가 특별히 '조주고불진제광조국사(趙州古佛眞際光祖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1330년에는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지금의 탑을 조성했다. 벽돌을 조화롭게 쌓아 올린 탑은 8면 7층에 높이는 33m. 마치 목탑처럼 처마와 기와지붕까지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격자무늬의 문도 세밀하게 담아냈다. 특히 층마다 용, 코끼리, 기린 등 상서로운 동물들을 조각하고 연꽃과 당초 무늬로 장식했다.

탑 뒤편에 관음전이 있는데, 예전의 관음원 당시 건물은 아니고 근래 세운 전각이다. 그 앞에 측백나무 고목이 곳곳에 허옇게 속을 드러낸 채 허리를 구부린 모습으로 서 있다. 조주가 머물던 당시 '뜰 앞의 잣나무'라는 화두를 낳게 한 그 주인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주의 화두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를 '뜰 앞의 잣나무'라고 번역해 사용해 왔는데, 중국에서 백수(柏樹)는 측백나무를 말한다. 그러니 우리나라 옛 스님들이 백림선사의 측백나무를 확인하지 못했기에 잣나무로 오해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백림선사도 문화혁명 당시 조주탑과 몇 개의 비석을 제외한 전각들이 대부분 파괴됐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전각들이 중건되면서 지금은 경내 곳곳 많은 전각과 박물관, 연구소 등이 많이 들어서 있다. 상주 승려는 160여 명.

백림선사의 문선료(問禪寮) 입구 기둥에는 이런 주련이 걸려 있다. '조주 차 향기 마음의 성품을 밝히고(趙州茶香明心性)/ 뜰 앞의 측백나무는 참된 공을 깨닫게 하네(庭前柏樹覺眞空)'

◆'끽다거(喫茶去)' 화두

조주 선사의 '끽다거(喫茶去)', 즉 '차 한 잔 마시게'라는 화두는 이렇게 탄생한다.

어느 날 한 수행승이 조주를 찾아와 불법(佛法)이 무엇인지 물었다.

"불법의 대의가 무엇입니까?"

"여기에 온 일이 있는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럼, 차나 한 잔 마시게(喫茶去)"

다음 날 다른 수행승이 들러 조주와 문답했다.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여기에 온 일이 있는가?"

"예, 한 번 온 적이 있습니다."

"그럼, 차나 한 잔 마시게."

이를 옆에서 보고 있던 원주(院主: 절 살림을 담당하는 스님)가 물었다.

"스님, 어찌하여 이곳에 온 일이 없는 사람에게도 차 한 잔 마시라고 하고, 왔던 적이 있는 사람에게도 같은 말을 하십니까?"

"원주야, 너도 차나 마셔라."

'끽다거'라는 화두가 이렇게 탄생했다. 조주는 수행승들에게 왜 '차 한 잔 마시게'라고 했을까. 차 한 잔을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무심하게 마실 수 있으면, 불법의 대의를 깨달은 것이라 할 수 있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불법은 지식이나 무엇에 대한 논쟁으로 얻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 있는 것이다.

'조주세발(趙州洗鉢)'이라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아침, 한 스님이 조주에게 와서 불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조주는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고 이렇게 되물었다.

"아침은 먹었는가?"

"예, 죽을 먹었습니다."

"그러면 가서 바리때나 씻게(洗鉢盂去)."

이 말에 그 스님은 깨달은 바가 있었다.

식사를 했으면 밥그릇을 씻으라고 한 것이다. 죽을 먹었으면 항상 하던 일인, 자기 밥그릇 씻는 일을 하는 것이 선이고 도인 것이지, 불법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기 때문이다. 끽다거와 같은 가르침이다.

◆평소의 마음이 도

조주는 '평소의 마음이 바로 도'라는 의미의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화두로도 유명하다. 마조 도일(709~788) 선사가 처음 탄생시킨 화두인데, 조주 시대에 와서 완성된 선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마조 선사가 대중들에게 말했다.

"여러 도반이여, 도를 닦을 필요가 없다. 오직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면 된다. 더러움에 물든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나고 죽는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별난 짓을 하는 것이 바로 더러움에 물드는 것이다. 그대들은 단번에 도를 이루고 싶은가. 평소의 마음이 바로 도다. 평소의 마음(平常心)은 어떤 마음인가. 그것은 일부러 꾸미지 않고,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버리며, 평범하다거나 성스럽다는 생각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음이다."

사람들은 도라고 하면 특별하거나 보통 사람이 다다를 수 없는 오묘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도란 사람이 일상생활을 하는 마음과 별개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마음 씀에 조작이 없고, 시비가 없고, 취사가 없으며, 범성(凡聖)의 구별이 없는 본래 마음이면 된다. 그것이 평상심이고, 곧 도라는 것이다.

마조의 제자인 남전 보원도 이 가풍을 이어받았다. 조주가 수행승일 때 스승인 남전에게 물었다.

"도는 무엇입니까?"

"평소의 마음 그대로가 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평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것을 얻으려고 하면 곧 도에서 어그러지고 만다."

"얻으려고 하지 않으면 어찌 그 도를 알 수 있습니까?"

"도는 알고 모르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안다는 것은 망각(妄覺)일 뿐이고, 모른다는 것은 무기(無記)일 뿐이다. 만약에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한 도를 진정으로 통달하고 나면, 그것은 허공과 같이 확연하고 걸림이 없다. 그러니 어찌 그 도에 대해 옳다 그르다 할 수 있겠는가?"

이 말을 듣고 조주는 '평상심이 도'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조주의 끽다거는 평상심시도를 달리 표현한 것이다. 망상이나 집착, 고정관념 등에서 벗어난 마음이 평상심이고 도이며, 불법이다. 조주가 어떤 중생이 찾아오든 그 중생의 근기에 맞게 가르침을 준다는 의미에서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너는 돌다리'라고 수행승에게 이야기한 석교(石橋)인 '조주교(趙州橋)'도 유명한데, 백림선사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있다. 수나라 때 만들어진 이 석교는 조주가 이곳에 머물면서 유명해진 이후 언젠가부터 '조주교'로 불려 왔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