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시대공감] 걸그룹 초전성시대가 왔다

  •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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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14  |  수정 2022-10-14 06:51  |  발행일 2022-10-14 제22면
블랙핑크·에스파·뉴진스…

걸그룹 3세대 여성팬 주력

남성 향한 애교 없어지고

다양한 음악 시도 나서면서

한류 걸그룹의 초전성시대

[하재근의 시대공감] 걸그룹 초전성시대가 왔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2022년의 가장 큰 특징은 걸그룹 초전성시대의 도래라고 할 수 있다. 걸그룹은 보이그룹의 수익성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그 고정관념이 올해 깨지면서 각 기획사들도 걸그룹 투자확대에 나서고 있다.

걸그룹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 더블 밀리언셀러의 등장이다. 블랙핑크의 정규 2집 '본 핑크'가 214만장이란 판매고를 기록한 것이다. 그동안은 보이그룹이 음반시장을 주도했지만 이젠 걸그룹도 막대한 판매고를 올리게 됐다. 9월 마지막 주 서클차트(구 가온차트) 글로벌 K팝 차트에선 단 두 곡을 제외하고 1~20위까지 모두 걸그룹의 노래였다. 올해 상반기 음원 판매량 중 걸그룹 점유율이 78%에 달한다.

현재의 한류 아이돌 1세대 걸그룹은 SES, 핑클, 베이비복스 등을 꼽는다. 2세대는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 투애니원, 티아라, 브라운 아이드 걸스 등이다. 이 2세대에 이르러 걸그룹 전성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트와이스, 블랙핑크 등 3세대는 걸그룹 한류를 더 확장했다. 에스파, 아이브, 르세라핌, (여자)아이들, 뉴진스 등 4세대는 3세대의 뒤를 이어 한국 걸그룹의 지평을 더욱 넓히고 있다.

걸그룹 초전성시대는 3세대에서부터 시작됐다. 원더걸스, 소녀시대 등 2세대 때도 걸그룹 전성기였지만 지금과 같은 대형한류 분위기는 아니었고, 보이그룹을 압도하지도 못했었다. 3세대 때부터 차원이 다른 걸그룹의 위상이 시작됐는데 그 중심에 블랙핑크가 있다.

블랙핑크는 현재 세계 최고 걸그룹으로 우뚝 섰다. 방탄소년단이 팀활동 잠정중단과 군문제 등으로 위상이 축소된다면, 그 공백을 메울 1순위가 바로 블랙핑크라고 할 정도로 국제적 톱스타다. 이들은 서구적인 음악과 자신감 넘치는 분위기로 정상에 올랐다. 원래 걸그룹 노래들은 한국적 멜로디가 강했고, 그 멤버들은 한국적인 소녀 느낌이 강했다. 간혹 섹시 콘셉트도 있었는데 소녀든 섹시든 모두 남성들에게 어필하는 스타일이었다.

반면에 블랙핑크는 자신감 넘치는 자기 자신을 이야기한다. 남성에게 잘 보이려는 여자가 아닌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세계의 1020 Z세대 여성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블랙핑크가 활동할 때 페미니즘 열풍이 불었는데 이것이 블랙핑크의 개성과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블랙핑크는 지구촌 Z세대 여성들의 '워너비, 롤모델'로 자리매김했다. 뒤이은 4세대 걸그룹도 이러한 주체성, 당당함 등을 내세우며 걸크러시 열풍과 조응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여성들이 대거 걸그룹 팬덤에 가세했다. 2세대까지는 걸그룹 팬이 남성이었지만 3세대부턴 여성팬들이 주력이다. 뉴진스 앨범 구매자 중 여성 비율이 82%에 달할 정도다. 아이돌 팬덤은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충성도가 강하다. 그동안은 여성팬덤이 보이그룹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젠 걸그룹이 여성팬덤을 가져가면서 시장을 주도하게 된 것이다.

2세대까지는 남성들을 향한 애교도 많이 등장했는데 3세대 블랙핑크 이후론 그런 것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 대신 다양한 음악적 시도에 나선다. 에스파는 독보적인 메타버스 세계관을, 뉴진스는 뉴트로 스타일을 선보였다. 이런 시도가 전체적인 다양성을 풍부하게 해 우리 걸그룹의 입지를 더욱 강화했다. 그 결과 올해 걸그룹 초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90년대부터 고도화한 K 걸그룹의 실력과 스타일에, 페미니즘이라는 시대변화가 만난 결과다. 내년엔 과연 보이그룹의 반격이 진행될지, 아니면 한류 걸그룹의 위세가 여전히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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