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복의 텃밭 인문학] 내가 꿈꾸는 이상사회: 소국과민

  • 채형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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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21  |  수정 2022-10-21 09:22  |  발행일 2022-10-21 제38면
집과 가까운 작은 공간서 가족이 먹을만큼만 재배

무위의 자세로 소박한 삶과 걸맞은 텃밭을 가꾼다

[채형복의 텃밭 인문학] 내가 꿈꾸는 이상사회: 소국과민

텃밭은 집터에 딸리거나 집 가까이 있는 밭이다. 예전 시골 농가에는 집터에 딸린 마당이나 모서리 터에 작은 텃밭을 두고 있었다. 최근 도시민 가운데는 농촌의 넓은 밭을 구입하여 농사를 짓기도 하는데, 텃밭이라고 말하기에는 그 규모가 상당하다. 어느 정도의 공간을 텃밭이라고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가족이 먹을 채소 중심으로 작물을 가꾸는 작은 공간이 텃밭이라고 할 수 있다.

전원생활을 꿈꾸던 때부터 텃밭 농사를 계획했다.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산속 마을로 들어온 결정적 이유 중의 하나가 텃밭이다.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밭에 가서 쟁기질한 흙을 밟고 걷기를 좋아했다. 맨발에 닿는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운 흙을 밟으면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성인이 되어 도시에 살면서도 거리를 뒤덮은 차가운 콘크리트 시멘트에서 벗어나 생명이 살아 숨 쉬는 흙을 밟으며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서로 꼿꼿이 고개를 치켜들고 '나 잘났네, 너 못났네' 경쟁하고 다투는 현실을 떠나 허리 굽혀 겸손한 자세로 땅을 일구며 살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루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집을 짓고 바로 옆에 텃밭을 만들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1. 텃밭은 집과 붙어있거나 가까이 있어야 한다.
2. 텃밭은 힘에 부치지 않을 정도의 크기여야 한다.
3.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4.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가 있는 텃밭을 가꾼다.

이 원칙을 지키면서 텃밭 농사를 지으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바쁘게 경쟁하며 사람들과 부대끼는 삶이 싫어 산촌에 들어왔는데 부지런해야 한다니 무슨 말인가 싶을 수도 있다. 단 며칠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잡풀과 뒤엉켜 텃밭은 엉망진창이 되고 마니,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작물을 세심하게 돌봐야 한다.

만일 전원에 살면서도 도심의 아파트에서 누리는 모든 편의를 누릴 생각이라면 단독주택보다는 전원주택단지를 선택하는 게 낫다. 이런 단지는 도심에서 벗어나 있지만 관리사무소에서 쓰레기 배출은 물론 생활에 필요한 모든 편의를 다 봐주기 때문이다. 자연적 삶이 주는 불편을 성가신 일로 여기지 않고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전원생활의 여유와 낭만을 누릴 수 있다.

전원생활의 여유와 낭만을 누리려면
겸손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텃밭은 이웃사촌들과의 만남의 광장
열려있는 자연공간에선 마음도 열려
정성 다하되 땅이 주는대로 만족하자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경제적 이익 여부로 판단하는 유형의 사람들도 텃밭 농사를 짓지 않는 게 낫다. 사실 땅값에 비하면 텃밭 농사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 비싼 땅에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면 몇 푼 하지 않는 채소를 가꾸어 먹으니 경제적으로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도심의 카페에 앉아 우아하게 커피 한 잔을 즐기는 도시의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바람에 흔들리는 떡갈나무 가지와 잎이 연주하는 합주곡을 들으며 텃밭에서 거둔 채소로 차린 소박한 밥상으로 여유로운 아침을 맞는 삶을 살 것인가. 결국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전원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우면서 가꾸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규모의 작은 텃밭을 일구기로 마음먹었다. 처음부터 의욕이 앞선 나머지 너무 넓은 텃밭을 가꾸면 쉬 지치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낮에는 직장생활하고 퇴근 후 또는 주말을 이용하여 텃밭 농사를 짓는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텃밭의 지리적 위치도 중요하다. 마을에서 동떨어져 외진 데 있기보다는 집 가까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 좋다. 가까운 곳에 있어야 채소를 가꾸고 돌보기가 쉽다.

기계로 밭을 갈지 않는 나는 굳이 이랑을 곧고 길게, 또 반듯하게 만들려고 애쓰지 않는다. 좀 꾸불꾸불 삐뚤삐뚤하면 어떤가. 평생 앞만 보고 직선으로 내달려 왔으니 이제는 모양이 반듯하지 않더라도 마음 내키는 대로 땅을 가르고 구획한다. 우리는 보통 세상이 정한 기준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텃밭에서는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나만의 왕국' 텃밭에서 나는 내 삶의 주인이자 왕이다. 모든 규칙은 내가 정한다.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생겨나고, 그늘이 있으라 하면 그늘이 생겨난다. 여기에 파를 심고 싶으면 파를 심고, 저기에 부추를 심고 싶으면 부추를 심으면 된다. 여기저기 마음 가는 대로 채소를 심고 가꾸다 보면 해를 거듭하면서 모두 제자리를 찾는다. 텃밭에서는 세상이 아니라 나의 생각이 모든 일의 기준이다.

[채형복의 텃밭 인문학] 내가 꿈꾸는 이상사회: 소국과민

텃밭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가 이뤄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텃밭을 돌보고 있으면 저절로 많은 사람을 만난다. 이웃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농사짓는 정보를 교환하며 각자가 가꾼 채소를 나누는 것은 일상이다. 수시로 산을 오르내리는 등산객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인근 식당에서 밥 먹고, 산책하는 행인들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상추가 맛있어 보인다고 하면 상추를 뜯어주고, 딸기가 탐스럽다고 하면 딸기를 따준다. 처음 만나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지만, 텃밭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자연스레 친구가 된다.

도심의 아파트에 살 때는 이웃이 누구며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삶을 사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어쩌다 만나 형식적으로 인사를 나누고 나면 서로 어색하여 눈길을 피하곤 했다. 텃밭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누구를 만나든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간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앞과 뒤가 막히고 닫힌 곳에서는 서로를 경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연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텃밭에서는 긴장된 몸과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려 모두 이웃사촌이 된다.

텃밭을 가꾸면서 내가 꿈꾸는 이상사회는 노자(老子)가 말한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이라는 뜻의 소국과민(小國寡民)이다. 노자는 물질문명에서 벗어나 자연에 따라 사는 원시공동체를 이상사회로 보았다.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돈을 가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무위의 마음으로 자연 속에서 작은 마을을 이루고 가족·이웃과 더불어 소박하게 사는 삶이 바로 노자가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욕심을 버리고 자족함을 알아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지나친 욕심보다 더 큰 죄가 없고,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으며, 남의 것을 탐내는 것보다 더 큰 허물은 없다. 그러므로 자족함을 아는 데에서 오는 만족이야말로 영원한 만족이다."(46장)

이런 이유로 나는 텃밭을 가꿀 때 욕심을 내지 않는다. 농사는 잘될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다. 땅이 주는 대로 거두고, 주는 만큼 먹는다. 육십 평생 치열하게 경쟁하며 앞만 보고 살아왔다. 무엇을 조금 더 가지려 욕심을 내어 뭣할까. 그저 때맞춰 씨 뿌리고 모종 심고 정성을 다해 텃밭을 가꿀 뿐이다. 굳이 더 많이 가지겠다는 욕심을 내지 않아도 텃밭은 우리 가족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만큼의 결실을 본다. 봄부터 겨울까지 수십 가지의 채소를 거두어 먹으니 텃밭이 베푸는 자비가 한량없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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