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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필자는 지난 글에서 OTT 서비스와 한국의 영상 콘텐츠가 가지는 상관성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결국 많은 OTT 서비스가 한국 콘텐츠를 제공하는 이유는 한국 콘텐츠의 저력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왜 세계적으로 OTT 서비스가 영향력을 갖춘 후에야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졌는가 하는 점은 의문스럽다. 물론 한국의 영상 콘텐츠 자체가 가진 저력이 있었기에, OTT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그 영향력을 더 발휘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분명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서비스를 통해 한국의 영상 콘텐츠가 성공 신화를 쓰게 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의 영상 콘텐츠가 OTT 서비스와 만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살필 필요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우수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전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OTT 서비스 넷플릭스와 한국 영상 콘텐츠의 인연을 이어준 작품은 역시 봉준호 감독의 '옥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옥자'는 전통적인 방식의 극장 개봉이 아니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개봉하면서, 프랑스극장협회나 국내 멀티플렉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왜 봉준호 감독이 극장 개봉에서 벗어나 과감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기도 한다. 봉준호는 '옥자' 제작에 필요한 560억원 전부를 넷플릭스로부터 지원받았다. 넷플릭스는 봉준호 감독에게 원하는 대로 영화를 촬영할 수 있도록 하면서 스트리밍 서비스에 맞게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해달라는 한 가지 조건만 내걸었다고 한다.
넷플릭스를 통해 가장 성공한 한국 콘텐츠는 역시 '오징어 게임'이 아닐까 한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넷플릭스와 제작사 간의 수익 배분에 관한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이 문제는 정치권에서마저 쟁점이 되었는데, '오징어 게임'의 모든 지식재산권을 넷플릭스가 가지고 가면서 수익 배분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한편으로 정당한 문제 제기라고 할 수 있다. 넷플릭스 내부에서도 '오징어 게임'의 가치를 약 1조원으로 평가한다는 보도가 있었을 정도다. 그에 비해 '오징어 게임'의 제작을 맡은 국내 제작사는 20억~50억원 정도의 수익을 얻었을 뿐, 추가 수익 배분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년부터 '오징어 게임'을 준비한 황동혁 감독의 입장은 수익 문제와는 다를 수도 있다. 오랜 시간 제작사를 찾지 못해 만들 수 없었던 작품을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완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위의 사례들을 보면, 넷플릭스의 투자는 장단점이 뚜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감독이나 제작사 입장에서 넷플릭스의 투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국내 상황이 더 나쁘다는 방증일지 모른다. 산업적인 면에서 콘텐츠 제작은 위험 요소가 많기에, 투자는 위험 요소를 줄이는 데 집중한다. 그래서 많은 콘텐츠가 감독이나 연출자의 의도와 다른 방식으로 제작되기 일쑤다. 만약 넷플릭스라는 OTT 서비스가 아니었다면, '옥자'나 '오징어 게임'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어쩌면 우수한 영상 콘텐츠를 계속 만들기 위한 답은 간단할지도 모른다. 창작자가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여건만 주어진다면, 한국의 영상 콘텐츠는 언제나 훌륭한 결과물을 내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콘텐츠 투자의 실상이나 제작 환경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승현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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