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지지 않는 교통사고 보험사기] (하) '나이롱 환자' 부추기는 車보험제도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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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26 06:50  |  수정 2022-10-26 07:20  |  발행일 2022-10-26 제1면

A(80·대구 달서구)씨는 지난해 8월 가벼운 접촉사고를 냈다. 횡단보도를 조금 물고 정차한 그는 보행신호가 바뀌기 전에 후진하기 위해 후진 기어를 넣고 브레이크에서 서서히 발을 떼는 정도로 서행했지만 뒤 차량과 부딪쳤다.

20대로 보이는 뒤차 운전자(B씨)는 차량수리비에 병원 치료비까지 요구했다. A씨는 수리비 요구는 당연하지만, 접촉사고가 났는지 느끼지도 못할 정도의 충격으로 병원 치료까지 요구한 것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자 B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2주짜리 병원진단서도 경찰에 제출했다.

A씨도 경찰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두 달가량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차만 수리하는 것으로 보험처리가 마무리됐다고 생각할 때쯤 B씨는 A씨의 보험사에 치료비를 요구했다. A씨의 보험사 측에서도 "보험금을 지급해도 A씨에게 돌아가는 추가 피해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A씨는 B씨를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까지 제기했고, 승소했다. 아파서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했던 B씨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아서다. 결국 치료비를 더 받아내려던 B씨에게 법원은 A씨의 소송비용 50여만 원을 부담하라고 명령했다.

A씨는 "정말 치료를 받았던 상황이라면 법정에 나와서 자신의 피해를 주장했을 텐테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면 나이롱환자로 눈먼 보험금을 더 받아내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5일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자동차보험 경상환자 진료비는 1조944억원으로 2016년(6천591억원) 대비 연평균 13.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상해 환자 증가율의 5.3배를 넘는 수준이다.

더구나 과잉진료 기준을 충족한 경상환자 비중은 29.3%이고, 이들의 진료비 비중은 60%에 이른다. 이런 과잉진료는 자동차보험 손해율을 2.5~4.6%포인트 높여, 보험료를 차량 1대당 최대 3만1천200원까지 높이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경상환자의 3명 중 1명가량이 과잉진료를 받으면서 대당 3만원 이상의 보험료를 더 내는 셈이다.

문제는 A씨처럼 개인이 나서 적극적으로 가짜 환자를 걸러내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이다. 거기다 자동차보험에서 부담하는 진료비의 경우 자기부담금이 없어 '나이롱환자'를 양산하기 쉬운 구조다. 특히 경상환자의 경우 주관적 통증 호소만으로도 치료를 이어나갈 수 있는 데다, 진료비가 많이 나올수록 합의금 등 보상금도 덩달아 늘어나는 구조여서 이런 상황을 부추기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유럽 국가 가운데 경상환자 과잉진료가 적은 국가들은 경미한 자동차 사고 상해 평가 관련 공인 기관을 운영하거나 자동차 충격 속도를 고려해 보험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이런 보완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또 "A씨 사례처럼 당사자가 직접 소송 제기할 경우 보험사가 지원해 주는 제도 마련 등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토교통부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6월부터 이달 말까지 지방자치단체, 손해보험협회 등과 함께 전국 병·의원 500여 곳을 직접 찾아 교통사고 입원환자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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