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의 클래식 오딧세이] 예술가가 평화에 이바지하는 하나의 방식

  • 김지혜 바이올리니스트, 다원예술그룹 ONENES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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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28  |  수정 2022-10-28 08:38  |  발행일 2022-10-28 제37면
■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러시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김지혜의 클래식 오딧세이] 예술가가 평화에 이바지하는 하나의 방식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 안나 페도로바

9월24일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열린 'DMZ 콘서트' 개막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안나 페도로바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했다. 그녀는 "한국전쟁의 흔적인 DMZ에서 열리는 'DMZ 평화 예술제'에서, …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가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는 것은 예술가가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했다. (출처: 위메이크 뉴스. 9월27일자)

안나 페도로바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우크라이나의 청소년 난민을 위한 음악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또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피해 유럽으로 망명한 음악가들로 구성된 '우크라이나 자유 오케스트라'의 미국과 유럽 순회 공연을 개최하는 등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실상을 알리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음악가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활동하고 있다.

[김지혜의 클래식 오딧세이] 예술가가 평화에 이바지하는 하나의 방식

내한 공연을 앞두고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인터뷰를 가진 그녀는 "라흐마니노프 역시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피해 망명했던 난민이었으며, 만약 그가 지금 우크라이나의 참상을 봤다면 비극적인 전쟁을 일으킨 푸틴을 비난하고 평화를 위해 무엇이든 했을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푸틴 정권이지 러시아는 아니며, 라흐마니노프와 같은 러시아의 문화적 유산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라흐마니노프는 1873년 러시아의 유서 깊은 노브고라드의 오네그에서 태어나 188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하고, 3년 후인 1885년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옮겨 니콜라이 즈베레프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여기서 안톤 루비슈타인과 차이콥스키를 만나 작곡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졸업 후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러시아와 유럽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젊은 음악가인 그는 삶에 중요한 고비를 만난다. 바로 세계 1차 대전과 러시아의 볼셰비키혁명이 그것이다.

전쟁이 아니어도 인간의 삶은 이미 복잡한 문제에 둘러싸여 힘겹기 마련인데, 거기에 전쟁이라는 고통이 닥치게 되면 평범한 인간의 삶은 형언할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라흐마니노프의 삶 역시 마찬가지였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곧이어 레닌을 주축으로 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면서 귀족 출신, 지주 계급이었던 라흐마니노프와 그의 가족들은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라흐마니노프는 1917년 스웨덴에서 초청을 받아 연주 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연주를 마치고 그와 가족들은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했다. 그리고 이듬해 그들은 미국으로 이주했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기보다 작곡에 더욱 진지한 관심을 두고 작곡가로 성장하고 싶어 했다. 학창 시절 그의 이러한 태도를 반대했던 스승 니콜라이 즈베레프와 많은 논쟁을 벌였다는 증언도 꽤 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음악가라 해도 결국 난민이었던 그는 생계를 위해 작곡에만 전념할 수 없었다. 피아니스트로 연주 활동에 시간을 더 많이 보내야만 했다. 자신의 진정한 꿈을 어느 정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라흐마니노프는 곧이어 발발한 2차 세계대전으로 결국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전쟁이 끝나기 얼마 전인 1943년 암으로 사망했다. 생전의 라흐마니노프가 우울증과 향수병으로 괴로워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자신은 연주자로 조금 일찍 알려져 위험을 피해 망명할 기회라도 있었지만, 그런 기회조차 얻지 못해 러시아에 남아 전쟁과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고통받았던 다른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죄책감이 그런 정서적 고통의 한 부분이었다. 그의 죄책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말이다.

볼셰비키 혁명이 노동자들, 무산 계급을 위한 혁명이라는 명분을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와 반대되는 모든 사람을 향한 탄압, 탈취, 잔인한 폭력을 허용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농민과 노동자를 착취했던 지주들이 있었기 때문에 혁명 이후 모든 지주를 숙청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명분을 가져와도 절대로 허용될 수 없는 것이 전쟁, 폭력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 안나 페드로바의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연주는 '평화'라는 짧은 단어가 가진 무겁고 깊은 의미를 담은, 역사적으로 길이 남는 명연주로 기억될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다원예술그룹 ONENES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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