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 배경이 된 포룸 광장의 반 고흐 카페. |
고흐가 아를에 머문 시간은 약 15개월에 불과하지만, 그는 이곳에서 화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고흐는 2년간의 파리 생활을 접고 새로운 예술혼을 불태우기 위해 햇빛을 찾아 남쪽으로 왔다. 태양 아래 빛나는 색채와 공동체 작업을 꿈꾸었던 그는 원래 마르세유에 정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도중에 아를에 반하여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그는 1888년 2월20일부터 1889년 5월8일까지 머물며 '밤의 카페테라스' '아를 요양원의 정원' '아를의 반 고흐의 방'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원형 경기장' '랑그루아 다리' '해바라기' 등 유화 200점, 드로잉과 수채화 100점 등 300여 점의 그림을 그렸고, 동생 테오에게 200여 통의 편지를 썼다.
![]() |
프랭크 게리가 고흐의 색채를 형상화해서 설계했다는 복합문화공간 '루마 아를'. |
매일같이 도시 구석구석을 산책한 반 고흐처럼 작품이 탄생한 배경지를 따라 여행하면, 아를에서의 고흐의 예술혼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아를에는 고흐가 이젤을 세운 곳곳에 그의 그림 패널이 표시되어 있다.
나는 먼저 가장 유명한 반 고흐 카페(Cafe Van gogh)를 찾았다. 반 고흐 카페는 오벨리스크 광장 북쪽의 포룸 광장에 있다. 아를에서 3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 '밤의 카페테라스' 배경이다. 아를에 오는 이들이라면 이곳을 꼭 떠올린다. 고흐의 그림 제목은 '밤의 카페테라스'이지만, 그림이 유명해지면서 '반 고흐 카페'로 불린다. 노란 차양 위에 'de cafe la nuit(밤의 카페)'라는 이름을 새겨놓아, 이곳이 고흐 그림의 배경임을 뽐내고 있었다. 그림 패널이 놓인 자리에서 카페를 보니 고흐 당시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나는 잠시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떠올렸다. "푸른 밤, 카페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바로 이곳에서 밤을 그리는 것은 나를 매우 놀라게 하지. 창백하리만치 옅은 하얀 빛은 그저 그런 밤 풍경을 제거해 버리는 유일한 방법이지. 검은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을 사용했어. 그리고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밝은 노란색으로 그렸단다.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라고 했다. 이처럼 고흐의 그림은 아를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색채가 더욱 강렬해지고 밝은 분위기로 변했다.
아를을 가로지르는 론강은 반 고흐가 1888년 9월 중순에 강과 밤하늘을 배경으로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역사적인 장소이다. '나는 지금 아를 강변에 앉아 있어. 별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맑음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두 남녀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어'라는 고흐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는 고흐의 모습이 돈 맥클린의 'Starry, starry night'으로 시작하는 노래 '빈센트'의 선율에 실려 되살아났다.
![]() |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그린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
고흐는 이곳에서 파리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예술적 감정들이 벅차올랐다. 예술의 본질 속으로 한 걸음씩 천천히 들어가는 느낌이었고, 화가들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에 차서 매일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공동체에 참가하려는 화가들이 없었다. 그나마 동생 테오의 주선으로 1888년 10월23일 폴 고갱이 합류했다. 고갱은 아를에 9주가량 머물렀다. 이 기간에 고흐는 36점, 고갱은 21점의 유화를 그렸다. 그러나 두 사람은 기질이 달랐고 화풍도 달랐다. 무엇보다 예술에 대한 인식 차이는 공동체 작업을 지속할 수 없는 큰 요소였다. 두 사람은 토론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12월23일 고갱은 파리로 떠났고, 고흐의 꿈도 깨어지고 말았다.
그날 밤 고흐는 자신의 왼쪽 귀를 잘라 매춘부에게 주는 등 정신질환에 시달렸고, 그 후 아를 시립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였다. 오벨리스크 광장에서 남서쪽으로 골목을 조금 걸어 내려오다 보면 나타나는 건물이 고흐가 처음 입원했던 아를 시립병원이다. 16세기에 세워진 이 병원은 현재 고흐가 입원했던 당시 모습으로 복원하여 '에스파스 반 고흐(L'espace Van Gogh: 반 고흐의 장소)'라는 고흐 기념관이 되었다. 그렇지만 고흐의 흔적이라고는 이곳에서 요양할 때 그렸던 복제화 하나가 고작이다. 그래서 당시 그의 절망과 고통이 오히려 더욱 증폭되어 전달되는 것 같았다.
![]() |
고흐는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자신이 좋아했던 아를을 추억하며 행복했던 순간들을 화폭에 담았다. 고흐는 이 병원에서 1년간 머물며 요양했는데, 그는 이 시기에 또 한 번 밤의 풍경을 그렸다. 그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이 이곳에서 그려진 것이다. 이 작품은 론강의 밤과는 다르게 무척 쓸쓸하고 우울한 느낌을 자아낸다. 우뚝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에 이지러진 초승달 이 박힌 밤하늘은 스산하면서도 신비롭다. 그 풍경은 아름다운 아를과 자신의 고향 네덜란드의 풍경을 결합하여 만들어낸 풍경이라고 한다. 잠 못 이루는 여름밤, 정신병원 쇠창살 너머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떠올렸을 아를과 고향의 풍경이 함께 교차했을 것이다. 고흐는 아를에서 행복했던 시기에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다. 그리고 발작 증세가 악화하고 힘들었던 이 정신병원에서 또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다. 상반되는 시기에 그려진 두 그림을 통해 고흐의 행복과 고통을 함께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두 그림이 사람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난해 6월, 아를에 새 명소가 생겼단다. 현대 건축의 거장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복합문화공간 '루마 아를' 타워이다. 원통형의 이 건물은 아를의 원형경기장을 상징하고 울퉁불퉁한 외관은 프로방스의 절벽 같은 암석 지형을 표현했다. 해가 질 때면 1만여 개가 넘는 알루미늄 패널이 빛을 반사하는데, 바로 고흐 그림의 찬란한 색채를 형상화했다. 올해 4월에는 또 이곳 아를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이우환 화백의 '이우환미술관'이 개관했다.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지어진 3층 저택 호텔 베르농(Hotel de Vernon)을 미술관으로 고쳤다. 아를을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자꾸 늘어난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