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의 행복콘서트] 독서, 책 통해 스스로 깨닫는 즐거움…평생 자신 지키고 유지하는 바탕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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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04 07:46  |  수정 2022-11-04 07:50  |  발행일 2022-11-04 제34면
난초와 사향이 향을 풍겨도 한번 냄새 맡고 나면 그만
고기 반찬이 가득 차려져 있어도 한번 먹고 나면 그만
몸을 보호하기 위한 옷·음식 구하려 죽을힘을 쏟지만
성품 위한 독서는 힘 쓰지 않아 어리석음에서 못 벗어나

이인상-송하독서도
이인상 '송하독서도'.

독서 인구가 2013년 이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 독서 인구(만 13세 이상) 비율은 2013년 63.4%, 2015년 56.2%, 2019년 50.6%, 2021년 45.6% 등으로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제 책을 1년 동안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는 유튜브 등 책 이외의 다른 콘텐츠 이용을 꼽은 것으로 조사됐다.

독서는 언어기능을 포함한 뇌 기능과 공감 능력을 높이고, 숙면과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는 등 심신 건강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독서가 점점 외면받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옛사람들의 글을 살펴본다.

"사람들이 즐거워할 만한 것은 많습니다. 귀에는 소리가, 눈에는 색깔이, 입과 코에는 냄새와 맛이 그러하지요. 이러한 것들이 눈앞에 몰려들어 마음을 흔들면, 반드시 온갖 지혜를 다 짜내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려고 하지요. 그러나 그 좋아하는 바는 불과 잠깐 사이의 일일 뿐입니다.

여러 가지 음악이 떠들썩하거나 맑은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더라도, 연주가 한 번 끝나고 나면 산은 텅 비고 물만 흐를 뿐이지요. 하얗게 분을 바르고 새까맣게 눈썹을 칠하고서 웃음과 교태를 바치는 여인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이 한 번 흩어지고 나면 가물거리는 촛불과 지는 달빛만 비칠 뿐이지요. 난초와 사향이 향을 풍겨도 한 번 냄새를 맡고 나면 그만이지요. 맛난 고기가 가득 차려져 있어도 한번 먹고 나면 그만이지요. 이 모두가 태허(太虛)에 회오리바람이 먼지를 쓸어 가버린 것과 다름이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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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눈과 귀에도 즐겁고, 마음과 뜻에도 흡족해서, 빠져들수록 더욱 맛이 있어 늙음이 이르는 것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혼자 호젓할 때 적막한 물가에 있다 하더라도 문을 닫고 책을 펼치고 있노라면, 완연히 수백 수천의 성현이나 시인, 열사와 더불어 한 침상 사이에서 서로 절을 하거나 질타하는 것과 같으리니, 그 즐거움이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사람 중에 나의 법도를 따르고 나와 마음을 함께하는 이는 거의 드물겠지요. 육예(六藝)에 종사하지 않는다면 그만이겠지만, 종사하는 이가 있다면 책과 더불어 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 금과 옥은 보배이지만, 문장도 또한 보배지요. 백 근이나 되는 묵직한 물건은 보통 사람이라면 감당하기 어렵겠지만, 다섯 수레의 책도 돌돌 말면 가슴 속 심장 안에 넣어 간직해둘 수 있을 것이요, 이를 활용하면 조화에 참여해 천지에 가득하게 되겠지요.

사람이 어찌 쉽게 늘 이것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지금 세상에 이것을 누릴 이가 그 얼마나 되겠습니까? 제가 당신과 알게 된 지는 오래되었으나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사귐이 얕은데 말이 깊은 것은 선철(先哲)께서 경계한 바지요. 그런데도 당신은 저를 못났다 여겨 멀리하지 않으셨으니, 감격스럽고 부끄럽습니다. 보답하고자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전에 당신의 문장을 보았습니다. 가히 정교하고 치밀하다고 말할 만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좋아하는 것은 기뻐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기뻐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대개 배울 줄은 알지만 좋아할 줄 모르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좋아하지만 그 뜻을 가다듬어 그 힘을 다하지 않는다면, 앞서 말한 입과 코·귀·눈이 누리는 짧은 즐거움과 그 거리가 한 치도 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와 당신이 서로 권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말이 망령되다 마시고 가려 받아들이신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

서울 인왕산 아래 옥류동에 살던 가난한 선비 장혼(1759~1828)이 친구 김의현에게 보낸 편지다. 가난하고 외롭지만, 책을 읽고 기뻐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참으로 책을 사랑했던 장혼이 친한 친구가 아름다운 시를 지어 보이자, 시보다 책을 더욱 사랑하라는 충고의 말을 넌지시 던진 것이다.

"의복과 음식이 주는 즐거움은 세상살이의 근심과 걱정을 잊도록 해 준다. 반면에 독서에서 얻는 즐거움은 스스로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의복과 음식 덕분에 보호받으며 자라지만, 그 마음과 성품은 스스로 기르고 얻어서 발전한다.

사람은 평생 의복과 음식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안고 살아간다. 1년 내내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 곡식과 각종 옷감이 창고에 가득 차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즐거움을 품는다. 그 이유는 바로 한 해 동안 의복과 음식에 대한 걱정을 잊고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평생 해야 할 일이다. 스스로 깨달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비록 보잘것없고 사소한 일일지라도 근거로 삼을 만한 것이 없다. 여러 해 동안 연구하거나 깊게 탐구하고 사색해 사물의 이치가 뚜렷이 드러나면, 비로소 만족할 만한 즐거움을 얻는다. 이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얻어 평생토록 자신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는 바탕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복과 음식에 대한 걱정이나 근심이 없는 경우를 독서에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일과 비교해 보자. 의복과 음식에 대한 걱정을 안고 산다면 몸이 제대로 보호되고 자랄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쉽게 안다. 그래서 이들을 구하려고 죽을힘을 쏟으므로 얼어 죽거나 굶어 죽는 경우가 자못 적다. 그러나 독서를 하여 스스로 깨달아 얻는 것이 없으면 그 마음과 성품이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알기 어렵다. 또한, 이것을 얻으려고 힘을 쏟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이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약 독서를 통해 스스로 깨달아 얻는 일에 음식과 의복에 대한 근심을 없애는 일처럼 힘을 쏟는다면, 반드시 스스로 깨달아 얻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혜강(惠岡) 최한기(1803~1877)의 글 '자득(自得)' 중 일부다. 독서와 사색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하는 내용이다.

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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