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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대구 달서구 성당동 안병근올림픽기념유도관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 |
이번 이태원 참사는 '압박 사고'로는 국내 역사상 최다 인명 피해를 낳았지만, 사실 압박 사고는 국내·외에서 꾸준히 발생하는 사고다. 대구·경북지역에서도 압사 또는 인파로 인한 부상 관련 사고는 잊을만하면 재발하곤 했다.
◆국내·외 압박 사고
1995년 10월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렸던 '젊음의 삐삐 012콘서트' 공연장에서 1만여 명의 관객이 한꺼번에 입장하려다 8명이 부상 당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듬해 1996년 12월에는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에서 열린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에 먼저 입장하기 위한 인파가 출입문으로 모여들면서 2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2005년 10월에는 경북 상주의 한 콘서트 현장에서 11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의 시민이 부상 당하는 참사가 있었다. 주최 측이 상주시민운동장의 여러 출입문 중 하나만 개방하면서, 문을 여는 순간 앞에서 입장하던 사람들이 넘어져 발생한 사고다. 1983년 4월에 발생한 대구 중구 향촌동 디스코클럽 '초원의집' 화재 사건도 압사와 무관하지 않았다. 불이 나자 2층에서 춤을 추던 150여 명이 한꺼번에 출입구로 몰려 들면서 가파른 계단에서 넘어지는 사람이 생겼고, 줄줄이 넘어졌다. 결국 좁은 통로가 막혀버리면서 25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쳤다. 피해자는 대부분 10대 청소년 또는 20대 청년들이었다.
이태원 참사 이전까지 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압박 사고는 1959년 7월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열렸던 '시민위안잔치'였다. 참석한 3만여 명의 시민이 소나기를 피하려고 좁은 출입구로 몰리면서 67명이 숨지고 150명이 다친 사고다. 이밖에 1960년 설을 앞둔 1월, 서울역에서 목포행 야간열차를 타려는 승객들이 계단에서 한꺼번에 넘어지면서 31명이 숨지고 41명이 다치는 일도 있었고, 1992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있었던 뉴키즈온더블록 공연 도중 소녀 팬들이 무대 앞으로 몰려 나오다 1명이 사망하고 60명이 부상 입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역대 최악의 압사사고는 1990년 이슬람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인근에서 일어났다. 성지순례 '하지'에 이어지는 '이드 알 아드하'(희생제) 기간 도중 터널에 몰려든 사람들 중 1천426명이 압사한 것이다. 2015년에도 순례자들이 순례도의 합류지점에서 충돌하면서 뒤엉켜 통제 불능 상황이 발생하면서 769명 사망, 954명 부상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 사상자 규모가 더 클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최근 들어서도 압사 사고는 계속된다. 지난 1일 인도네시아에서 축구 경기 도중 홈팀이 패하자 흥분한 관중이 경기장으로 뛰어드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막으려던 경찰이 최루탄을 쏘면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출구로 몰리면서 132명이 숨졌다. 당시 인파에 깔린 이들 중 수십 명이 여전히 중태여서 사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태원 참사 직후인 지난 30일에는 아프리카 콩고 수도인 킨샤사에서 열린 유명 가수의 콘서트장에서 관중과 경찰관 등 총 8명이 숨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성격 다른 이태원 참사…평소 경각심 가져야
압사 사고가 드물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이태원 참사가 여타 대형 압사 사고와 비교해 성격이 다소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간개발연구소 메흐디 무사이드 연구원(군중행동연구가)은 지난 30일 미국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티켓도 없고 출입 통제도 없는 지발적인 환경의 행사가 재앙을 악화시켰다"며 "사람들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인파는 도시에 몰려 있었고, 심지어 입장권이 있는, 통제되는 행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군중을 흩트릴 수도 없었다는 분석이다. 음악 축제나 종교 순례 등 사례와는 성격이 달랐다는 것이다.
그는 충돌 당시 영상을 보고 "가용 가능한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있었다"며 "이런 사고는 밀도를 측정해야 하는데, 이번의 경우 1제곱미터당 8~10명의 사람이 모인 것 같다"고 했다. 또 "그 정도의 밀집도라면 처음 몇 명이 기절하기 시작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너무 비좁아 더 이상 숨쉬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그 공간의 모든 사람이 산소가 부족해지고, 차례로 숨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의 팀은 2011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보행자의 행태와 군중 재난의 결정 요인'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인간 군중은 일상생활에서 효율적인 움직임을 위해서 자기 조직화된 행동을 보인다. 예컨대 우측통행, 좌측통행과 같이 자발적으로 단일한 일정 방향으로 움직이는 행동이다. 그러나 보행자의 원활한 흐름이 끊어지고,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 높은 밀도의 상황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하지 못하면서 흐름이 뒤죽박죽되고 집단적인 패턴이 발생한다. 결국 대규모 이벤트 중 심각한 짓밟기 등이 발생하고 압사 사고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인 원인을 '군중 난류(暖流)' 현상으로도 부른다.
국가와 지자체, 일반 시민들까지 '압박 사고'와 관련한 경각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나온다.
이기환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국가와 지자체가 주최하는 행사의 경우, 기본적으로 안전 관리 등 대책이 서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의 경우 주최가 특별히 없다는 점에서 달랐다"며 "사고 가능성에 대해 지자체 등에서 대비가 돼 있지 않았던 점이 문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셈이지만, 유관 기관에서 미리 매뉴얼 마련 등을 통해 대처 방안을 세워 놔야 한다. 또 지자체나 경찰이 개입하면 날 선 반응을 보이는 시민 의식에 대해서도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항상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괜찮을 것이다'는 생각과 인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서민지
정경부 서민지 기자입니다.
윤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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