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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지음·김영사·2022·199면·1만5천800원 |
이 책의 저자는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아는 이어령 선생이다. 그는 1933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문학평론가로서 호는 능소(凌宵)로 쓰고, 이화여대 교수와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서울대 재학시절부터 '이상론'으로 문단의 주목을 끌었고, 기성문단을 비판하는 '우상의 파괴'로 데뷔한 이래 20대부터 논객으로 활약했다.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에 읽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와 곧이어 나온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그야말로 새로운 안목으로 눈뜨게 하여 흥분하며 읽었던 글들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2019년 10월부터 영면에 들기 한 달 전인 2022년 1월까지 노트에 손수 쓴 마지막 글을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 빛.'/ 김소월의 강변. 그 모래들은 도시로 가서/ 저 높은 건축물이 된다./ … /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지?'/ 나는 두 손을 활짝 열고/ '하늘 땅땅 모레 수만큼요!'/ 죽을 때까지 다 셀 수 없는 모래알들이 어머니를 기쁘게 했다. [어머니 …나는 지금 아직도 모래알을 세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다 헤지 못하고 떠납니다.] "
그는 자연 상태인 '모래'는 강변에서 개성을 나타내며 반짝이지만, 집단으로서의 모래는 개인의 아름다움은 상실된 채 도시의 콘크리트의 세포가 되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모래알처럼 셀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을 다 헤지 못하고 떠나는 심정을 절절히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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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글에서는 이런 시가 있다.
"나는 지금 달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어둠의 바탕이 있어야 하얀 달이 뜬다.// … /지금까지 나는 그 바탕을 보지 않고 하늘의 달을 보고/ 종이 위의 글씨를 읽었다. …/ 겨우겨우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 의미 없는 생명의 바탕을 보게 된다./ … "
어둠의 바탕이 있어야 밝은 달을 볼 수 있고, 하얀 종이의 바탕이 있어야 검은 글씨의 책을 읽을 수 있듯이, 두드러진 것과 함께 숨어있는 그 바탕을 알아야 하는데도, 그는 이제까지 두드러진 '달'과 '글'만 보아와서 그 바탕을 몰랐는데, 이제 와 보니 '죽음'의 바탕에는 '생명'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그는 자신에게 몰려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응시하며, 다음과 같이 절실한 심정을 여과 없이 나타낸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라고 하면서도 책을 주문한다. …/ 아마 그 책이 배달되기 전에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을 지도 모른다./ … "
"옛날 읽던 책 꺼내 읽다가/ 눈물 한 방울/ 밑줄 쳐놓은 낯선 단어들// [왜 거기에다 밑줄을 쳐놓았는지 기억할 수 없다. 그때의 내 젊음이 그리워진다.]/ 낡은 책상 서랍 열고/ 눈물 한 방울/ 먼 나라 소인이 찍힌 그림엽서 한 장./"
이어령 선생의 이 책을 읽어 보니 그는 평론가, 시인, 소설가와 함께 진정한 독서인임을 알겠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책을 사랑하였다. "하나님 제가 죽음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까닭은, / 저에게는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옛날 읽은 책이라고 해도 꼭 한 번 다시/ 읽어야 할 책들이 날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 " 나도 이어령 선생처럼 죽는 순간까지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삼가 이어령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사> 대구독서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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