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의병장 이현규 기념비 이전 제막식

  • 배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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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22 14:38  |  수정 2022-11-22 18:53  |  발행일 202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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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서 열린 영양 출신 의병장 내산 이현구의 기념비 이전 제막식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송군 제공>

경북 영양 출신 의병장 내산 이현규(1874~1917)의 기념비 이전 제막식이 22일 당시 격전지였던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서 열렸다.

내산 이현규 기념사업회가 개최한 이날 행사에는 윤경희 청송군수, 오도창 영양군수, 권태준 청송군의회의장, 김석현 영양군의회의장, 김덕석 경북보훈지청장 등 기관·단체장 및 지역주민 등 300여 명이 참석, 이 의병장의 정신을 기려 제막식의 의미를 더했다.

1874년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에서 4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난 이현규는 경북과 강원도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으로, 본관은 재령, 자는 하현이라 불렸다. 체격이 장대하고 기상이 강건한 청년으로 성장했으며 학문과 무예가 뛰어났다.

그는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11월 청송 주왕산 대전사에서 동지 수십 명과 함께 의병을일으키기로 결의하고 의사들을 모집했다. 12월 중순쯤 울진 불영사에서 안동, 청송, 진보, 영양의 4군 의병대장으로 추대됐다. 1906년 2월 영양군 입암면 교리에서 의병진을 편성, 일본군과 수십 회에 걸쳐 교전했으며 진보면의 오누이 저수지에서 일본군 수십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1906년 5월 울진, 죽변, 왜관의 일본군을 격파하고 영양 북방의 일본군을 공격하다가 역습을 받아 부상 당한 그는 1908년 봄 부대를 해산한 뒤 영일군 청하면 모진리로 들어가 은거했다. 이후 후진 양성에 힘쓰다가 1917년 2월 3일 44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 의병장에게는 1963년 대통령 표창,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1975년 10월 19일 지경리로 이장했으나, 이후 묘가 퇴락하여 2017년 7월 6일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5 묘역 178번으로이장했다.

배운철기자 baeu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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