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가업승계는 '부의 대물림' 아닌 사회자산 유지"

  • 정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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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22 21:25  |  수정 2022-11-23 06:44  |  발행일 2022-11-23
대구경북 중소기업인들, 세제 개편안 통과 촉구
중소기업 가업승계는 부의 대물림 아닌 사회자산 유지
22일 대구 인터불고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기업승계입법추진위원회' 발족식에 참석한 대구경북 중소기업인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제공>
중소기업 가업승계는 부의 대물림 아닌 사회자산 유지
22일 대구 인터불고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기업승계입법추진위원회' 발족식에 참석한 대구경북 중소기업인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제공>

대구경북 중소기업인들이 '경영인 세대 교체'를 위한 세제 개편안 통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중소기업 CEO의 고령화가 가속화하는 이때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한국 기업의 근간이 되는 중소기업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기업 승계 활성화를 혁신성장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 늙어가는 중소기업 CEO
중소기업 대표자의 연령이 급속도로 높아지는 추세다. 중소기업중앙회(이하 중기중앙회)가 실시한 '중소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표자 평균 연령은 2010년 50.6세에서 2020년 54.9세로 10년 사이 4.3세 높아졌다. 특히 같은 기간 60세 이상 CEO 비율은 13%에서 30.7%로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70세 이상도 2만1천513명(4.3%)에 달한다. 대구경북 경우 70세를 넘어선 중소기업 CEO가 1천179명이며 비중은 전국 평균보다 높은 5.3%로 집계됐다.

중소기업은 현 제도 하에선 가업 승계가 너무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업승계시 애로사항을 묻는 질문에 '막대한 조세 부담 우려(76.3%)'를 가장 많이 꼽았다. 까다로운 승계 요건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가업승계 세제 활용을 위한 사전·사후 요건을 모두 충족할 수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27.5%에 불과했다. 고도 경제성장과 함께해 온 '베이비 부머' 세대(1955~1963년 출생)의 고령인구 편입이 본격화하면서 나이 많은 중소기업 CEO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층 진입 규모는 68만1천600명으로 집계됐고 2025년에는 9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8년까지 연 평균 약 81만명이 고령층이 되는 셈이다.

◆ 승계 포기 기업 적지 않아
기업 승계가 여의치 않다 보니 기업 매각 혹은 폐업을 고려하는 중소기업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기중앙회가 지난달 창업 10년 이상된 중소기업 600개사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및 약 270만개사 기업 데이터를 분석한 '가업승계 DB분석 용역'자료에 따르면, 경영 승계를 하지 않을 경우 변화(매각 등)가 예상되는 기업은 65.8%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52.6%는 폐업·매각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활한 승계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폐업·매각으로 이어지면 일자리 감소 등 경제적 악영향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손톱깍이 세계 1위 업체였던 '쓰리세븐'은 15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에 부담을 느껴 매각 절차를 밟은 바 있다.

대구 중소기업 역시 승계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주>한신특수가공 한상웅 대표(대구경북패션칼라산업협동조합)는 "직물 염색에 있어서는 세계 1위라고 자부하는 기업이다. 중동지역 전통의상을 수출해 왕족들도 우리 옷을 입는다"며 "하지만 가업 승계가 너무 힘들고 나이도 많아지다 보니 '이제 그만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가업 승계 과정에서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고 하소연했다.

'업종 유지' '가업 경영기간' 등 같은 기업의 체질개선과 신산업 진출을 저해하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세계실업<주> 이대형 대표(한국경영혁신중소기업 대구경북연합회장)는 "업종 유지에 관한 조항 등이 현재 빠르게 변화하는 경영환경과 맞지 않다. 젊은 CEO들이 빨리 적응하고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고용 승계가 어려운 탓에 해외로 눈길을 돌리는 사례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한 2세 경영인은 "싱가포르는 상속세가 없어 현지에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승계를 진행할 수 있다. 이는 국부 유출이 될 수 있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고 본다"며 "글로벌 강국이 되려면 세제 개편안을 지금이라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가업승계는 부의 대물림 아닌 사회자산 유지
◆ '부의 대물림' 인식 개선해야
기업승계에 대한 일반의 부정적 인식도 제도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역 중소기업들은 일반 상속과 달리 기업승계는 '공동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기업을 유지·성장시키는 데 노력이 요구되고, 또 그 성과는 후계자뿐 아니라 근로자·거래처에 분배되는 것은 물론 경제성장으로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개인의 재산이 아닌 '사회의 자산'이라는 인식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승계를 통한 기업 영속의 가치는 높다. 중기중앙회가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업력(기업 유지 기간)이 30년 이상인 중소기업 자산 총액은 10년 미만 중소기업에 비해 27.9배 더 많다. 매출액은 19배, 고용인원은 11배, 법인세는 32배 차이 나는 것으로 집계됐다.

중소기업 경영진의 안정적 세대교체는 재투자 및 채용시장의 활성화로도 이어진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독일은 업종유지, 가업 경영기간 등의 조항을 폐지해 제도 접근성을 높였다. 일본은 기업 승계시 상속·증여세를 면제하는 특례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대구경북기업승계입법추진위원회는 기업승계 관련 제도 개편안 통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위원회는 22일 성명을 통해 "2008년 제도가 본격 시행된 이후 여러 차례 제도개선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부자 감세'라는 오해와 편견 때문에 가로막혀 결국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중소기업의 승계는 '부자 감세'나 '부의 대물림'이 결코 아니다"며 "공장, 기계설비 등 사업에 직접 사용되는 자산에 한해 지원 대상을 엄격하게 적용한다. 선진국의 기업 승계는 혁신과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업이 과도한 세금을 못 버티고 경영을 포기하면 기업이 책임지던 일자리, 세금 등도 모두 사라진다"고 덧붙였다.

최복희 중기중앙회 대구경북지역본부장은 "가업승계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지역 중소기업이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다. 개정안 통과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총력전을 예고했다.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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