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강제징집·프락치 공작 사건 피해자 187명 인정…최대 51년 만에 개인별 진실 규명

  • 송종욱
  • |
  • 입력 2022-11-23 12:46  |  수정 2022-11-23 14:23  |  발행일 2022-11-23
국방의무 악용·사상과 양심의 자유 침해…공권력 중대한 인권 침해
보안사 문건·존안 자료 확보, 강제징집·녹화·선도 공작 2천921
2022112301000742100031171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로고. 영남일보 DB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대학생 강제 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을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으로 결론을 내리고 187명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이 사건은 1970∼1980년대 공권력이 학생운동을 벌이던 대학생들을 강제로 군대에 끌고 가 고문·협박·회유를 통해 전향시킨 뒤 ‘프락치(정보망원)’로 활용한 공작이다.

사건의 윤곽을 파악하는 조사는 그간 진행됐지만, 개인별 피해 사례를 대대적으로 파악해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강제 징집·녹화·선도 공작 관련자 2천921명의 명단이 확인돼 피해자 규모가 현재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동안 5공화국 시기인 1980~1984년 강제 징집 1천152명과 녹화사업 피해자 1천192명(강제징집 921명 포함)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진실화해위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신청인 조중주 등 187명은 국가로부터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71년부터 1987년까지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시위 전력이 있는 학생이나 사찰 대상자를 체포·감금한 뒤 학교에서 제적하거나 휴학 상태로 변경해 강제 입영 조치했다.

또 이렇게 강제 징집한 학생들의 사상 불온성 여부를 심사한 뒤 프락치 임무를 맡겨 학원, 종교, 노동 관련 정보를 수집하게 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5월 조사 개시를 의결하고 1년 6개월 동안 조사했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국가기록원에 이관한 개인별 ‘존안 자료’ 2천417건과 선도 대상자 명단 등 관련 문건을 확보해 진실규명 신청자 207명 가운데 187명을 피해자로 판단했다.

또 신청자 20명의 추가 조사해 진실을 규명할 예정이다.

개인별 존안 자료에는 유시민·박래군·이강택·오동진 씨 등 사회 저명인사를 비롯해 윤영찬·기동민 등 현역 국회의원도 포함됐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강제 징집의 근거가 됐던 위수령(1971년)과 대통령 긴급조치 9호(1975년), 계엄 포고령 10호(1980년) 등이 위헌·위법에 해당해 입영 조치 역시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국가안전기획부, 경찰이 피해자들을 불법 체포·감금한 상태에서 군에 끌고 가거나 가혹 행위와 강요로 휴학계나 입대 지원서를 쓰게 한 후 입영시켰고, 군 복무 중 사상 전향과 양심에 반하는 프락치 활용을 강요한 것 등에 대해 모두 불법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전두환 정권이 ‘녹화사업’을 추진하던 보안사 심사과를 폐지한 뒤에도 ‘선도업무’라는 이름으로 1987년까지 프락치 공작을 계속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녹화사업은 ‘좌경 사상으로 붉게 물든 학생을 푸르게 순화하는 사업’이라는 의미로, 보안사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벌인 대학생들을 강제 입영시키고 특별 정훈교육을 받게 한 것이 주된 내용이다.

진실화해위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친구와 동료, 선후배를 배반하도록 강요하는 반인권적인 일이 공권력에 의해 벌어진 것”이라며 “피해자들은 국방의 의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당한 후 다시 사회와 격리되는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설명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장은 “과거 내무부와 내무부 치안본부는 입영 대상자를 결정하고, 신병을 확보해 병무청에 명단을 전달하고 부대로 호송 인계하는 등 강제 징집에 가장 최전선에 섰던 기관”이라며 “현재의 행정안전부와 행정안전부 경찰국, 경찰청은 과거의 잘못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이어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강제 징집 및 녹화사업에 대해 정부의 사과 방안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지만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사과도, 피해 복구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국방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교육부, 병무청 등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송종욱 기자

경주 담당입니다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