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의 클래식 오딧세이]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Rite of Spring'...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슬라브족 제전 형상화…원시적·신비로운 세계 고민

  • 김지혜 바이올리니스트, 다원예술그룹 ONENES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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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02 08:42  |  수정 2022-12-02 08:50  |  발행일 2022-12-02 제37면
발레 '봄의 제전' 중 한 장면.
발레 '봄의 제전'은 초연 당시의 논란으로 인해 더욱 유명해진 작품이다. 프랑스 파리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던 러시아 발레단 '발레 뤼스'의 안무가 니진스키의 안무는 기존의 발레와는 다른 매우 파격적이고 원시적이며 기이한 동작들로 뜨거운 찬반 논쟁을 일으켰다. 니진스키의 안무뿐만 아니었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관객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날 공연장에 있던 작곡가 드뷔시는 이 작품이야말로 '천재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는 많은 러시아 예술가가 활동하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인 무용 공연 기획자이자 무대 미술가였던 디아길레프는 디자이너로 브누아와 함께 '발레 뤼스'를 창단한 후 작곡가로 스트라빈스키를 영입했다. 그들은 1910년 발레단의 두 번째 발레이자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첫 번째 발레 음악인 '불새'를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렸다. 이 과정에서 스트라빈스키는 늙은 현자들과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제물로 바쳐진 어린 소녀를 바라보는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디아길레프에게 전달하고 이 작품의 구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3년 후인 1913년, '봄의 제전'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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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신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슬라브족의 제전을 형상화한 것이다.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은 인류 최초의 샤머니즘이 관찰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우랄 지역부터 발트 지역까지 슬라브 민족의 샤머니즘 흔적은 12세기 말 이교도 척결을 위해 발트지역을 공격했던 독일 기사수도회가 기록한 고문헌 등 여러 자료를 통해 볼 수 있다. 스트라빈스키가 샤머니즘에 빠져있었다는 증거는 어느 곳에도 없지만, 그가 제 의식 장면을 떠올렸다는 점은 슬라브 민족의 이러한 문화적, 정서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작곡가가 이 장면을 떠올리고 곧바로 만났던 러시아 미술가 뢰리히는 샤머니즘에 대한 깊은 관심과 슬라브 민족의 토속적인 문화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스트라빈스키와 뢰리히는 함께 이 작품의 대본을 썼고, 제목도 정했다. 그리고 세부 악장들의 배치를 어떤 순서로 할지도 함께 결정했다. 이런 점들을 미루어 보면 이 작품 속에 샤머니즘적 요소가 많이 녹아있고, 그런 원시적이고 신비로운 세계를 음악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곡은 총 2부로 나뉜다. 1부는 '대지의 찬미'라는 소제목을 갖고 있으며 총 8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곡' '봄의 태동과 젊은 처녀들의 춤' '유괴의 유희' '봄의 춤' '적대하는 도시의 유희' '현인들의 행렬' '현인' '대지의 춤' 등의 제목을 가진 악장들이다. (여기서 '유희'라고 번역된 부분들은 영어로 Ritual로 표현되어 있지만, 단순히 장난스럽게 노는 듯한 장면을 떠올리기보다는 제 의식의 여러 행위로 이루어진 장면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2부는 '희생의 제사'라는 소제목을 갖고 있고 '서곡'과 더불어 '젊은이의 신비한 모임' '선택된 처녀의 찬미' '조상의 초혼' '조상의 의식' '희생의 춤, 선택된 처녀' 등 6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제목들을 생각해 보면 이 작품이 어떤 분위기를 띠고 있을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작품을 위해 대규모의 5관 편성으로 구성하고 다양한 타악기를 활용했다. 또한 화려한 관악기의 주법, 강렬한 리듬 패턴을 반복하고 불규칙한 악센트를 자주 사용했다. 이 작품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폴리리듬(polyrhythm)의 사용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리듬 패턴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러 악기를 동시에 연주하지만 그것이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고 묘하게 어긋나게 하면서 매우 불안하거나 강렬한, 화려한 음향 효과를 통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또 반음계적 선율로 신비롭고 음산한 분위기를 표현하기도 하고 과감한 화성, 잦은 변박의 사용 등 여러 가지 요소를 통해 원시적인 이교도들의 제 의식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이 공연이 당시 파리의 문화계에서 뜨거운 논쟁이 되자 젊은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졌다. 그는 니진스키의 안무가 자신의 음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했지만, 그의 음악이 갖는 실험성과 신선함에 대해 주목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스트라빈스키는 이듬해인 1914년 무용 없이 오케스트라 연주만으로 다시 한번 무대에 올렸고, 이 연주회는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이후 작곡가는 '봄의 제전'을 세 차례(1920년·1926년·1943년) 개작하면서 더욱 매력적으로 다듬어 이 작품은 지금까지 20세기 초반의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 잡고 현재까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34년 프랑스 시민이 된 스트라빈스키는 미국 순회공연을 하며 미국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1939년 하버드 대학에서 강연을 맡으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1942년 '음악의 시학'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스트라빈스키는 20세기 작곡가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작품 활동을 한 작곡가로, 20세기 모더니즘 사조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친 음악가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바이올리니스트·다원예술그룹 ONENES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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