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의 행복콘서트] 음주 이야기...밤낮 술에 중독된다면 가정 파탄·나라 망치는 길, 절제의 미덕 일깨워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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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02 08:24  |  수정 2022-12-02 09:17  |  발행일 2022-12-02 제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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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행복을 누리려면 절제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가지 유혹에 잘 넘어가거나 쾌락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면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삶의 지혜가 담긴 글귀들을 수록한 동양고전 '채근담'에 이런 글귀가 있다.

'입에 맞는 음식은 모두 창자를 짓무르게 하고 뼈를 썩게 하는 독약이니, 반쯤만 먹어야 재앙이 없을 것이며(爽口之味 皆爛腸腐骨之藥 五分便無殃)/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일은 모두 몸을 망치고 덕을 잃게 하는 매개물이니 반쯤에서 멈춰야 후회가 없을 것이다.(快心之事 悉敗身喪德之媒 五分便無悔)'

절제의 미덕을 일깨우고 있다. '주색잡기(酒色雜技)에 패가망신 안 하는 놈 없다'라는 속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음주와 성, 도박 등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술자리가 많아지는 연말이 다가오고 있어, 주색잡기 중 음주에 대한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다산 정약용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밥과 술은 모두 곡식에서 나오는 것
밥은 평생 건강하게 오래 살게 만들고
덕과 어진 이를 높여 나라를 이롭게 해

술은 곡식성질 어지럽혀 누룩 띄워 빚어
술맛에 빠지면 오장육부 해치고 命 재촉
헐뜯고 미워하며 덕과 어진 이를 멀리해
나라를 해롭게 하고 제집을 망치는 것


'진정한 술맛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는 것이다. 소가 물을 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는 적시지도 않고 곧바로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무슨 맛이 있겠느냐. 술의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다. 얼굴빛이 주귀(朱鬼)와 같고, 구토를 해대고, 잠에 곯아떨어지는 자들이야 무슨 정취가 있겠느냐. …무릇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시키는 흉패(凶悖)한 행동은 모두 술로 말미암아 비롯된다.'

아들이 술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정약용은 이어 술로 인한 병 등을 거론하며 금주할 것을 당부한 뒤 마지막 부분에 다시 한번 '너에게 빌고 비노니, 술을 입에서 끊고 마시지 말도록 해라'고 하면서 마치고 있다.

호곡(壺谷) 남용익(1628∼1692)이 금주를 결심한 뒤 쓴, 술을 소인에 비유한 글 '주소인설(酒小人說)'도 소개한다.

'주보(酒譜)에 의하면 옛날 애주가들이 술을 아주 사랑한 나머지 맑은 술을 성(聖)에, 빛이 노란 전내기 술을 현(賢)에 비유했다고 한다. 나 역시 매우 술을 좋아하였으므로 성에 또는 현에 비유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술은 성도 현도 아닌, 바로 진짜 소인(小人)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체로 술이 입술에 닿으면 그 시원한 기운과 맑은 빛깔, 그 향기로운 맛이 마른 목을 축여 주고 답답한 가슴을 확 트이게 하여 정신을 새롭게 하고 기운을 샘솟게 해 주는데, 이것은 이를테면 은나라 고종이 어진 부열(傅說)에게 충정 어린 인도를 받는 것과도 같다. 또 술이 배속에 들어가면 기분이 온화해지고 체력이 충만해져서 근심 걱정이 절로 사라지고 즐거운 흥취가 절로 발동되어 진득해지고 화락하게 되는데, 이것은 마치 온화한 봄기운에 만물이 소생하는 듯하던 안자(顔子)의 기상과도 같다. 이것이야말로 성현다운 교화가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술기운이 살갗에 배고 뼛속에 스며들어 점차 중독되어 그 기운을 없애고자 하나 없앨 수 없어서 날마다 정신이 흐리멍덩하게 되면, 입술에 닿는 것은 모두 간교로 임금을 속이며 권력을 휘두르다 결국 안록산(安祿山)·사사명(史思明)의 난을 유발했던 간신 이임보(李林甫)의 꿀맛 같던 아첨과 같다.

그리하여 듣고 보는 것이 모두가 그 술에 사역되어 밤낮없이 주악을 베풀고 잔치만 즐기는 것은 바로 남북조시대 강총(江總)이 정무를 돌보지 않고 향연만을 베풀어 진(陣)나라 후주(後主)를 망하도록 인도했던 행위와도 같다. 또한 잠자리의 방탕함은 월왕 구천(句踐)의 미인계에 빠진 오나라의 태재(太宰) 백비가 오왕 부차를 미혹시켜 멸망하게 만든 것과도 같다.

심지어 심성을 상실하여 미치광이 같은 말과 행동을 마구 해서 가정을 어지럽히고 공무를 포기하기에 이르면, 그것은 옛날 위(韋)나라와 고(顧)나라가 하걸(夏桀)의 포악을 돕고, 주(周)나라의 태사(太師) 윤씨(尹氏)와 경사(卿士) 포공(暴公)이 난정과 참소로 주나라를 쓰러지게 하고, 환관 홍공(弘恭)·석현(石顯)이 참소로써 어진 이를 배척하여 한나라를 기울게 했던 것과도 같다.

이뿐만 아니라 끝내는 오장육부가 손상되고 온갖 병마가 틈을 타 발생하며 원기가 날로 깎여 명을 재촉하고 몸을 망치게 되어서는, 간신 비렴(飛廉)·악래(惡來) 부자가 은주(殷紂)를 망하게 만들고, 이사(李斯)·조고(趙高)가 진(秦)나라를 망하게 만들고, 장돈(章惇)·채경(蔡京)이 송나라를 넘어지게 했던 것과도 같다.

술병이 든 사람이 때로 뉘우쳐서 혹독하게 자책하고 경계하여 여러 날 술을 안 마시기도 한다. 그러나 갑자기 술맛이 생각나면 저도 모르게 군침을 흘리게 되는 것은 바로 위(魏)와 화약(和約)을 맺어 나라를 기울게 한 소인 주이(朱異)를 못 잊던 양무제(梁武帝)와도 같고, 정치를 문란하게 해 나라를 어지럽게 한 노기(盧杞)를 생각하던 당덕종(唐德宗)과도 같다.

이렇게 된 뒤에는 온갖 좋은 약으로도 그 증세를 낫게 할 수 없고, 맛 좋은 팔진미라 하더라도 그 위장을 조양(調養)할 수가 없다. 죽이나 밥이 눈앞에 가까이만 와도 구역질을 참지 못하게 되지만, 만일 천천히 밥알을 한 알씩 입안에 넣고 억지로라도 한 술씩 떠먹어서 점점 밥 기운이 술기운을 이겨 술 힘이 밥심에 밀리게 되면, 그때부터는 정신이 살아나고 의지가 안정되어 자연히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을 잊게 된다.

이것은 이를테면 제선왕(齊宣王)이 맹자에게 인의(仁義)에 관한 말씀을 들어 깨우침이 있던 것과도 같고, 노래를 좋아하는 조열후(趙烈侯)가 상국(相國) 공중련(公仲連)의 충간을 들어 노래하는 자에게 주려던 농토를 주지 않은 것과도 같은 것이다.


대쾌도1
술도 적당하게 마실 줄 알아야 한다. 김후신의 '대쾌도'.


아! 밥과 술은 다 곡식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밥은 곡식의 성질을 온전하게 보존하여서 그 맛이 담담할 뿐 감칠맛이 없다. 그러므로 하루에 두 끼니만 먹으면 그만이고 평생 늘 먹어도 물리지 않으며, 사람을 건강히 오래 살게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군자가 천성을 온전히 보전하여 그것으로 임금을 섬겨 서로 미워하거나 싫어함이 없이 덕을 높이고 어진 이를 높여서 나라를 이롭게 함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술은 곡식의 성질을 어지럽혀 누룩으로 띄우고 빚어 그것을 걸러 마시는데, 더러는 소주로 만들기까지 하면서 반드시 독한 것을 미주(美酒)로 여긴다. 사람마다 모두 그 맛을 좋아하여 백 잔이고 천 잔이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퍼마셔 대어, 마침내 사람의 오장육부를 상하게 해서 명을 재촉하고 있으니, 이것은 바로 소인이 천성을 해치고 그 잘못된 천성으로 임금을 섬기되 서로 헐뜯고 미워하며, 덕 있는 이와 어진 이를 멀리하게 해서 나라를 해롭게 하고 제집을 망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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