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나이 든 사람의 경험과 예측

  • 김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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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15 06:41  |  수정 2022-12-15 15:03  |  발행일 202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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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중부지역본부장

조선 세종때, 황희 정승은 87세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황희는 69세가 된 이후 10차례에 걸쳐 "나이가 많고 몸도 아프니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했으나, 세종은 윤허하지 않았다고 세종실록에 기록돼 있다.


고려의 문인 최충은 5명(목종·현종·덕종·정종·문종)의 왕을 모셔가며 관직에 있었다. 70세가 됐을 때 문하시중 (지금의 총리)이었던 그는 당시 예법에 따라 '대부칠십이치사(大夫七十而致仕·70세가 되었으니 벼슬에서 물러나겠다)'를 실천하려 했으나, 문종은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충은 이듬해 물러났다.


황희와 최충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이에 기반한 미래 예측은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세종과 문종이 나이 많은 신하의 사직을 막은 게 충분히 이해된다. 세상 변화가 거의 없던 그 시절, 경험에 근거한 예측은 비교적 맞았다. 그런 세상에서 나이 든 사람의 경험과 예측은 존중받는다.


그렇다면 지금도 나이 든 사람의 예측대로 세상이 흘러갈까? 아쉽게도 예전 같지는 않다. 2008년에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는 나이 든 사람의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을 얘기할 때 자주 소환된다. 1980년 미국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 추격 영화는 복잡해진 사회 때문에, 은퇴를 앞둔 보안관의 예측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은 영화 속 세상보다 훨씬 복잡해 졌고 더 빠르게 달라지고 있어, 보통의 올드 맨에게는 미래 예측은커녕 적응하는 것 조차 힘든 세상이다. 동네의 작은 식당에서도 휴대폰을 통한 계좌이체로 결제가 이뤄지는 등 일상의 많은 일들이 휴대폰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MZ세대나 기성세대들 모두 처음 경험하는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기성세대에게 이런 세상은 낯설다. 하지만 휴대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해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로 불리는 세대들은 빨리 받아들인다.


동시에 디지털 세상이 곳곳에서 열리면서 메타버스, NFT 같은 낯선 용어들이 사회활동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디지털세상 역시 젊은 사람이 더 친숙하다.


기술의 발달로 세상이 달라지는 속도는 갈수록 빠르다. 미래학자 마우로 F 기옌이 쓴 베스트셀러 '2030 축의 전환'에 나오는 '10년후 지금의 세상은 없다'라는 글이 현실로 다가올 것 같다. 앞으로 맞이할 세상은 지금 처음 겪는 일들을 기반으로 나타날 것은 분명하다. 다른 각도로 말하면 , 나이 든 사람의 서툰 경험이 미래를 준비하는데 장점이 되긴 어렵다.


그렇다고 나이 든 사람의 경험이 아예 필요 없는 사회는 절대 아니다. 노인의 지혜와 경험이 필요한 세상도 분명히 존재한다. 여전히 오프라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고, 나이 든 사람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는 세상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MZ세대가 사는 세상과 나이 든 사람이 사는 세상이 따로 존재한다. MZ세대와 나이 든 세대의 생활 패턴 차이는 문화가 아닌 문명의 차이라고 할 만큼 크다. 다른 문명이 한 공간에 같이 존재하는 만큼, 이질적인 문명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은 절실한 과제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나이 든 사람들의 "나 때는 말이야…"를 버리는 인식 전환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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