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송의 환경과 사람] 의류 업사이클링 등 친환경 동참을!…천천히 사서 오래 입는 '슬로패션' 지구를 살린다

  • 이기송 ISC농업발전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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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16  |  수정 2022-12-16 08:10  |  발행일 2022-12-16 제36면
작년 전세계서 1천100억벌 이상 옷 생산

연간 9천200만t 상당 섬유 폐기물 발생

섬유 산업 통한 탄소배출량 연간 12억t

화학섬유인 폐의류 분해에 수십년 소요

옷 재활용·새활용 시도는 미미한 실정

[이기송의 환경과 사람] 의류 업사이클링 등 친환경 동참을!…천천히 사서 오래 입는 슬로패션 지구를 살린다

카타르 월드컵 축구 대표팀의 귀국 소식이 모든 매스컴에서 뜨겁다. 12년 만에 16강 진출에 성공하고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는 뉴스이다. 오래전부터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 왔다'는 말은 출세와 성공을 상징하는 매우 적절한 표현으로 사용됐다.

예로부터 의복은 단지 벗은 몸을 가려주고 외부 환경과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도구로서만이 아니라 계급과 신분을 구분하는 수단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왕국이나 부족이든 왕과 귀족과 양반들은 의복으로 자신들의 존엄성과 가치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로서는 '식의주(食衣住)'라는 말보다 '의식주(衣食住)'라는 말이 더 의미 있는 용어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단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면 곧바로 의복으로 관심을 쏟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망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창조주는 어찌 된 영문인지 다른 모든 동물에게는 평생 옷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도록 자기 몸에 꼭 맞는 고급 맞춤형 털옷이나 가죽옷을 한 벌씩 재단해서 입혀 주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유독 인간만은 기저귀 하나도 제공하지 않고 벌거숭이 몸뚱이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인간만은 '네 옷은 네가 알아서 해결하라' 라는 숙명적인 과제를 부여받은 건지도 모른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신은 애당초부터 인간들이 어쩔 수 없이 한 벌밖에 없는 남의 털코트나 가죽옷을 빼앗아 입는 것을 다소 묵인하실 작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입는 문제'는 '먹는 문제'에 버금갈 정도로 인간에게는 중요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류는 산업혁명 이전까지 수천 년 동안 한 올 한 올 수공업에 의존하여 섬유를 생산해야 했기 때문에 1년에 옷 한 벌 얻어 입는다는 것도 일반인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섬유산업이 핵심이었던 산업혁명의 혜택이라고 해도 그것은 유럽에서나 해당하는 일이었고 대다수 국가는 화학섬유가 나오기까지는 일 년에 옷 한 벌씩 골고루 나눠 입기도 힘들었다. 화학섬유가 대량 생산되고 먹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기 시작하자 모든 개발도상국에서 가장 먼저 발전한 산업은 다름 아닌 섬유산업이었다. 덕분에 의복은 더 이상 특권층으로의 신분 상승을 표현하는 방법이 되지는 않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의 가치를 가장 단순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포장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기송의 환경과 사람] 의류 업사이클링 등 친환경 동참을!…천천히 사서 오래 입는 슬로패션 지구를 살린다

◆기후 악당은 패스트 패션

이제 옷은 설날에나 한 번쯤 얻어 낡아 없어질 때까지 입는 연례행사가 아니라 유행 따라 한 철 입고 버려지는 소비재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분명한 축복이다. 그러나 축복도 과하면 저주가 될 수도 있다. 20년 전만 해도 옷의 평균 수명은 2년~10년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1년~5년으로 줄었다. 매년 철 따라 새로운 패션이 나왔다면 지금은 일주일 주기로 새 패션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인은 일 년에 평균 37.5㎏의 새 옷을 사고 보통 5~7회를 입고 버린다고 한다. 싸게 쉽게 사서 한 철에 몇 번 입다가 쉽게 버리는 '패스트 패션'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렇게 쏟아지는 옷 홍수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2021년 전 세계에서는 1천100억벌 이상의 옷이 생산되었고, 신발은 150억켤레 이상 생산되었다고 한다. 1인당 14.2벌의 옷, 2켤레의 신발이 배당된 셈이다. 이러한 급성장의 이면에는 연간 9천200만t의 섬유 폐기물이 쏟아지고 있다는 현실이 가려져 있다.

섬유산업의 탄소배출 또한 만만치 않다. 섬유 관련 산업으로 인한 탄소배출은 연간 12억t, 섬유의 소각, 폐기로 인한 탄소배출 또한 2천190만t. 이렇게 하여 섬유산업이 전 세계 연간 탄소배출의 10%를 차지하는데, 이것은 EU 전체 국가들의 연간 총배출량과 맞먹는 배출량이다. 의류 산업은 많은 화학염색과 세척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독한 폐수가 배출될 수밖에 없다. 이는 전 세계 폐수의 20%를 차지한다. 따라서 많은 물 사용은 필연이다. 매년 의복생산에 약 1조5천억ℓ의 물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한 개의 면셔츠를 만드는데 2천700ℓ, 청바지 1벌에는 7천500ℓ의 물이 사용된다고 한다. 한 사람이 10년 이상 마시는 물의 양과 같다는 말이다.

이러한 의류산업과 그 폐기물의 총체적 반환경적 영향력은 현시대의 '총체적 기후악당'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까지 부여받고 있다.

◆재사용과 재활용

비록 내가 최신의 유행 따라 빠르게 사 입고 빠르게 버린다 해도 헌 옷으로 기부하거나 수출되면 누군가에게 재사용되어 환경적 가해자의 죄송함에서 다소 면책의 자유로움을 가질 수 있지는 않을까? 미국환경보호국(EPA)은 2018년에 미국에서 발생한 1천700만t의 섬유 폐기물 중 15%만이 재활용되었고 나머지 20% 정도는 소각, 나머지 65%는 헌 옷으로 수출되거나 매립지에 버려지는 것으로 추산한다. 한국의 경우, 2020년 기준 연간 약 8만2천t의 폐의류와 약 40만t의 폐섬유류가 배출되고 있다. 버려지는 옷 중에서 약 5%가 재활용되고 15%는 쓰레기로 소각되고 나머지 80%는 헌 옷으로 수출된다.

수거된 헌 옷이나 기부된 재고품 등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미 국가로 수출되고 있지만 그중 절반 정도는 헌 옷 구매로 유통되나 나머지는 쓰레기로 버려져 하천과 바다를 메우고 있다. 칠레는 매년 6만t의 헌 옷이 수입되지만 3만9천t 이상이 판매되지 못하고 쓰레기로 버려진다고 한다. 또한 헌 옷으로 판매된 의류조차 대부분 몇 번 입은 후에는 역시 쓰레기로 버려지는 건 마찬가지다. 생산된 의류의 90% 이상은 결국은 매년 쓰레기로 매립, 소각, 방치되어 환경 파괴원으로 전환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코스이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이 화학섬유인 의복 폐기물이 오염물질을 방출하면서 분해되는 데는 수십·수백 년이 걸린다는 점이다.

◆친환경 의류 가능성

폐의류의 환경적 폐해를 상쇄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의류폐기물에서 에탄올을 추출하거나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여 얻은 섬유로 만든 의류, 의류렌털, 의류교환 등의 방법도 있다. 최근에는 '재활용(Re-cycling)'을 넘어 '새활용' 또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이라는 시도도 이뤄진다. 버려지는 의류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려는 작업이다. 물론 이 모두가 가상한 시도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가 패션산업의 전반적인 환경오염의 파괴력에 비하면 거저 기특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친환경적 직물이라는 동물과 식물에서 얻은 의류 생산을 장려할 일도 결코 아니다. 면직물 생산에는 흠 없는 뽀얀 면화를 얻기 위해 많은 농약을 살포해야 하는데 전 세계 농약 사용량의 10% 이상이 면화 재배에 사용된다. 털과 가죽을 얻기 위해 희생되는 동물의 양과 그 학대의 참상은 또한 실로 끔찍하다. 모피코트 한 벌에는 수십 또는 수백 마리의 동물이 죽임을 당해야 한다. 양질의 모피를 얻기 위해서 그것도 산채로 가죽을 벗기거나 갖가지 잔인한 방법으로 그들의 단벌옷을 탈취해 온다. 이렇게 해서 밍크, 수달, 여우, 족제비, 물개, 코요테 등 야생동물이 매년 1억마리 이상 희생된다.

◆동물과 환경에 미안함을 느낀다면

최신 유행에 빠르게 반응하는 패스트 패션으로 인한 심각한 환경적 위해를 극복하기 위한 어떠한 대안도 대견스러운 제스처일 수는 있으나 느리게 반응하여 덜 사 입고 한 번 산 옷은 오래 입는 '슬로 패션' 외에는 진정한 답이 없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라면 행복과 만족을 위한 추구는 모든 사람의 당연한 권리이며 자유로운 선택이다. '내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패션을 즐기는데 뭐가 문제인가'라고 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 맞는 말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의 멋과 자아 만족을 위한 패션이 결국 조만간에 아프리카의 어느 강가에서, 동남아시아의 어느 바닷가에서 추함과 타인 불만족을 더하는 수십, 수백 년짜리 쓰레기로 전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내가 누리는 따스함과 우아한 만족감이 수십 마리의 생명을 희생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돈 있다고, 싸다고, 최신 유행이라고 옷가게 카운터에 그토록 '빠르고 쉽게' 카드를 내밀지를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 우리가 산 옷의 입는 횟수를 두 배로 늘려 입고, 새 옷을 사는 주기를 두 배로 늘릴 수만 있다면 전 지구의 탄소배출을 5%나 감축할 수 있으며, 매년 의류 쓰레기 약 5천만t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패스트 패션'의 대량생산과 대량쇼핑의 극단적인 가속페달에 대응하여 '천천히 사서 오래 입는' 특단의 '슬로 패션, 슬로 쇼핑'의 감속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다면 필연적으로 의류 쓰레기가 지구를 뒤덮을 날도 멀지 않을 것 같다.

ISC농업발전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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