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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분뇨 처리장을 리모델링해 만든 낙동강하구 탐방 체험장. 건물 뒤편에는 저류조 시설의 일부 구조물을 남겨 정원으로 조성했다. 미로와 같은 비밀의 화원이다. |
날이 추워진다기에 눈 오는 을숙도도 참 좋겠다고, 빙글빙글 웃으며 단단한 채비를 했다. 그러나 하늘은 점점 연한 푸른빛으로 변했고 구름은 아주 멀리서 얇은 오간자 베일처럼 투명하게 펼쳐졌다. 대기는 냉담하여 햇살의 질감은 느낄 수는 없었지만 빛은 충분했다. 주차장에는 몇 대의 차가 띄엄띄엄 서 있었다. 화단의 빈 가지 아래에는 고양이 몇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강물 소리도 파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따금 비행기의 둔중한 굉음이 들려왔고 종종 새가 울었다. 그리고 세상에! 만개다. 만개한 동백꽃이라니! 수분을 가득 머금은 맑은 꽃잎이 계절도 모르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코를 훌쩍거리며 어쩐지 꽃들과 팔짱을 낀 듯 황홀한 채로 남쪽으로, 남쪽으로 걸었다.
풍부한 퇴적물로 이뤄진 철새도래지
낙동강 하굿둑 중심 북쪽엔 생태공원
계절에 따라 탐방선 타고 체험 가능
남쪽 철새공원엔 다양한 동식물 공존
생생한 숲 보전된 아름다운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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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숙도에서 사람이 갈 수 있는 가장 남쪽 길 너머로, 바다 쪽으로 자라난 모래섬과 갈대밭과 바다가 보인다. |
강물이 바다로 가기 직전 제가 품고 온 흙이며 모래며 하는 것들을 모두 떨구고 떨구고를 반복하다 보니 만들어진 것이 삼각주다. 낙동강 삼각주는 일웅도, 대마등, 장자도, 신자도, 진우도, 백합등, 도요등 등이 있는데 을숙도도 그중 하나다. 이들은 풍부한 퇴적물로 이루어진 영양가 넘치는 비옥한 땅이다. 그래서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고 어패류가 풍부해 새들이 쉬어가기 좋다.
을숙도(乙淑島)는 '새가 많고 물 맑은 섬'이라는 뜻이다. 봄과 가을에는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도요새와 물떼새류가 쉬어가고, 겨울에는 재두루미, 저어새, 제비물떼새, 넓적부리도요 등 희귀한 새들도 볼 수 있다. 을숙도는 1950년대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였고 1966년에는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됐다.
을숙도가 지도상에 처음 나타난 것은 1916년경이라 한다. 대부분이 저습지대인 섬은 홍수에 수몰될 위험이 커 거주하는 사람이 적었다. 이후 1960년 중반부터 농경지로 개간되어 섬의 대부분은 파밭이나 땅콩밭이 됐다. 1987년 을숙도를 동서로 횡단하는 낙동강 하굿둑이 완공되면서 사람들은 육지로 이주했다. 천연기념물이었지만, 1992년에는 분뇨 해양처리시설이 들어왔다. 1993년과 1995년에는 쓰레기 매립장이 생겼다. 그리고는 곧장 환경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었던 모양이다.
1997년부터 인공 생태계 조성 사업이 시작됐다. 1999년 계획이 섰고, 2004년에서 2005년에 걸쳐 을숙도 철새공원이 만들어졌다. 2007년에는 낙동강하구에코센터가 들어섰다. 그리고 2009년부터 2012년에는 낙동강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생태공원이 조성됐다. 현재 낙동강 하굿둑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낙동강 문화관, 수자원공사, 하굿둑 기념비, 문화회관, 조각공원 등과 함께 생태공원이 펼쳐져 있다. 생태공원은 호수형 습지로 계절에 따라 탐방선을 타고 체험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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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조성된 메모리얼파크. 주차장 한쪽 모서리에 한때 쓰레기 매립장의 벽이었던 콘크리트 조각이 서 있다. |
남쪽은 철새공원이다. 철새공원은 크게 세 지구로 나뉘어 있다. A지구는 교육 이용 지구로 에코센터와 야생동물 치료센터, 주차장, 피크닉 광장 등을 포함한다. B지구 완충구역과 C지구 핵심 보전 지역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인간에게 허용된 곳은 A지구뿐이지만 꽤 넓다. 30분마다 운행하는 전동카트 을숙이와 낙동이를 타고 전체를 둘러볼 수도 있다. 직원의 설명이 곁들여져 더욱 흥미롭다. 출발은 에코센터 인근 탐방안내소 앞이다. 을숙도의 동쪽 가장자리를 따라 섬 안의 수로와 낙동강 사이에 뻗어있는 조용한 길을 따라간다. 수로 너머로 보이는 숲은 2차 쓰레기 매립장 생태 복원지다. 예전, 2004년과 2013년에 보았던 을숙도와 매우 다른 모습이다.
반듯한 아스팔트길을 1㎞ 정도 전진하면 너른 주차장이 나타난다. 이곳은 메모리얼파크다. 2014년에 조성된 메모리얼파크는 과거 을숙도가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흔적을 담고 있다. 이곳에서부터 남쪽의 대부분이 쓰레기 매립지였다. 그러다 1차 쓰레기 매립장 생태 복원으로 일부는 주차장이 되었고 나머지는 고라니, 너구리, 뱀, 꿩 등이 살아가는 숲이 되었다. 주차장 한쪽 모서리에 한때 쓰레기 매립장의 벽이었던 콘크리트 조각이 서 있다. 단단한 기억이다. 놀랄 만큼 흐드러지게 꽃 피운 애기동백나무들이 이곳 생태 복원 숲에서 자라고 있다. 숲 위를 을숙도대교가 날듯이 지나간다. 계획 초기인 2002년부터 논란이 많았던 다리다. 결국 2005년 착공, 2009년 완공되었는데 을숙도 하단부 철새들의 핵심 서식지를 피해 가는 곡선형으로 건립되었다. 달리는 자동차의 진동음이 이따금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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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의 습지는 생태보전구역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멀리 하얀 고니 떼가 보인다. |
다리 너머 을숙도의 남동 모서리에 자리한 건물은 낙동강하구 탐방 체험장이다. 놀랍게도 이곳이 과거 분뇨 처리장이었다. 옛날에는 분뇨를 저류조에 저장한 후 바다에 버렸다. 그러다 2006년 런던협약으로 해양투기가 금지되자 이곳을 폐쇄했고 2012년에 리모델링해 체험 공간과 도서관 등으로 변화했다. 건물 뒤편에는 저류조 시설의 일부 구조물을 남겨 정원으로 조성했다. 미로와 같은 비밀의 화원이다. 시설의 벽체는 담쟁이가 뒤덮었고 내부에는 먼나무, 이팝나무, 배롱나무, 꽃댕강나무, 애기동백 등이 윤기 있게 자라고 있다. 이 정원은 2013년 부산광역시 아름다운 조경상을 수상했다.
정원에서부터 을숙도의 남단이다. 남단을 감싼 길은 동백꽃길이다. 어쩌면 이렇게도 화사하게 피었을까. 붉은 꽃잎에 생채기 하나도 없다. 이 길은 을숙도에서 사람이 갈 수 있는 가장 남쪽이다. 꽃길 너머는 바다 쪽으로 자라난 모래섬과 갈대밭과 바다다. 바다에 배 한 척이 그림마냥 떠 있다. 꽃길 가운데와 숲의 둔덕에는 새들을 은밀히 관찰할 수 있는 남단 탐조대가 마련되어 있다.
가로로 긴 깜깜한 창 안에서 눈부신 밖을 조용히 내다본다. 갈대밭에 숨었을까. 남단에서 새들은 보이지 않는다. 꽃길은 서안으로 이어진다. 꽃 너머는 커다란 습지다. 기수 습지, 담수 습지, 생태 수로 등이 조용히 펼쳐져 있다. 멀리 하얀 고니떼가 보인다. 올해는 철새들이 작년보다 30% 정도 많이 찾아왔다고 한다. 멀어도, 울음소리 광광하다. 습지 위로 을숙도대로가 휘어지고 습지 너머 도시가 빽빽하여도 고니의 울음소리와 숲의 새소리만이 생생하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55번 대구부산고속도로 부산 방향으로 간다. 대동 톨게이트에서 요금을 지불하고 약 7㎞ 정도 더 직진하면 중앙고속도로 종점인 삼락IC다. 종점 표지가 나타나면 오른쪽 하굿둑 방향으로 나가 강변대로를 타고 직진한다. 하굿둑 교차로에서 우회전해 가다 을숙도 휴게소삼거리에서 을숙도로 들어간다. 에코센터 주차장이나 메모리얼파크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에코센터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매주 월요일 휴관이다. 을숙도 공원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개방하며 에코센터 휴관일에도 전시관을 제외한 야외 이용이 가능하다. 주차장 이용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며 10분마다 100원, 1일 주차는 2천4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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