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소나무(2)...600살 정이품송과 혼례 올린 '미인송'…아기 소나무 200여 그루 생산 성공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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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13 07:57  |  수정 2023-01-13 08:19  |  발행일 2023-01-13 제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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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이 엄격한 심사를 통해 한국 최고의 소나무로 선정한 준경묘 미인송(철책 안 소나무). 2001년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과 혼례를 치른 후 후계목 생산에 성공했다.

준경묘를 천하명당으로 만드는 주인공은 주변의 멋진 금강송 숲이다. 넓은 숲을 이루고 있는 거의 모든 나무가 소나무인데, 그 금강송이 하나같이 크고 곧고 멋져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그중에 조선 세조가 내린 정 2품 벼슬을 가진 정이품송(수령 600여 년의 천연기념물·충북 보은)과 혼례를 올린, 대한민국 최고의 미인송이 있다. 산림청이 한국을 대표하는 소나무의 혈통 보존을 위해 10여 년의 연구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로 선정한 나무다. 준경묘로 가는 입구 길옆 오른쪽 비탈에 다른 금강송과 더불어 서 있다. 높이 32m의 큰 나무인데도 대나무처럼 곧게 뻗어 유독 눈길을 끈다. 굵기는 가슴높이 둘레 2.1m 정도. 수령은 2001년 기준 95년.

2001년 당시 산림청장이 주례를, 삼척시장과 보은군수가 각 혼주를 맡아 '소나무 전통혼례'를 치렀다. 삼척과 보은의 남녀 초등생 한 명씩을 신랑·신부 역으로 뽑아 혼례식을 거행했다. 나무 잘 타기로 소문난 한 청년이 정이품송의 화분을 가지고 32m 높이의 미인송에 올라 암술에 찍어 바른 후 주변 나무의 꽃가루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비닐 포장지를 씌웠다. 이후 교접에 성공한 미인송의 솔 씨는 200여 그루의 아기 소나무 생산에 성공했다. 그중 한 그루는 혼례 10년 후인 2011년 서울 종로구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식됐다고 한다.

장생불사 '십장생' 상징 귀한 대접받아
임금 관은 '황장목'·왕릉엔 송림 조성
바닷가 자생하는 해송, 日 원산지 금송
나이가 들면서 흰색으로 바뀌는 백송
줄기가 퍼져 수려한 구미 독동리 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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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 선운사 도솔암 장사송. 수령 600여 년의 천연기념물이다.

◆'만수지왕(萬樹之王)' 소나무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해 온 소나무는 산성 토양에서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따뜻한 기후와 적당한 햇빛을 좋아한다. 특이하게 뿌리와 잎에서 타감작용(생물체가 자체적으로 만든 생화학적 물질을 분비해 주변의 다른 생물체의 생장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일으키는 갈로타닌이라는 천연 제초제를 분비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진달래와 철쭉 정도 외에는 소나무숲에서 함께 자랄 수 있는 식물이 거의 없다.

소나무는 예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았다. 장생불사를 상징하는 열 가지 사물인 십장생(十長生: 해·산·물·돌·소나무·달 또는 구름·불로초·거북·학·사슴)에 속하는 소나무는 '만수지왕(萬樹之王)' 또는 '백목지장(百木之長)'으로 불리기도 한다.

임금의 관을 짤 때도 소나무인 황장목을 사용하고, 왕릉 조성 때도 송림을 기본으로 했다. 경주에 있는 신라왕릉은 대부분 송림으로 둘러싸여 있고, 고려왕릉도 북한의 열악한 관리상태 때문에 찾아보기 어렵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송림을 조성했다. 조선왕릉도 송림을 원형으로 해서 다른 상록수들이 섞였다.

100여 종이나 되는 지구상의 소나무는 북반구의 북위 30도 위아래로 폭넓게 분포하지만 주 분포지는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우수리 지역이다.

소나무는 잎으로 구분하면 두 갈래 잎에는 적송, 해송, 반송 등이 있다. 세 갈래 잎에는 백송, 리기다소나무 등이 있다.

적송(赤松)은 껍질이 거북등처럼 갈라지며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더 붉은색을 띤다. 목질이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축재로 쓰이고 있다. 금강송도 적송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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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자금성 내 어화원의 백송.

반송(盤松)은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자란다. 줄기 밑부분에서 굵은 곁가지가 많이 갈라져 나무 모양이 우산처럼 더북한 반송은 만지송(萬枝松)이라고도 한다. 전국 곳곳에 아름답고 오래된 반송이 있다. 가지가 아래로 처지는 소나무는 처진소나무라 하고, 경북 청도 운문사의 처진소나무가 유명하다.

바닷가에 자생하는 해송(海松)은 표피가 검다. 곰솔, 흑송으로도 불린다. 해송은 바닷바람을 맞은 탓에 껍질이 거칠고 강한 잎을 가지고 있다.

껍질이 흰 백송(白松)은 소나무의 돌연변이로 알려져 있다. 중국 베이징 지방이 원산지다. 우리나라의 백송은 모두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백송의 껍질은 매끄럽다. 20년 정도 되어야만 껍질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40년 이후에는 백색의 큰 껍질 조각이 떨어지며 백송의 특징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백송으로 서울 조계사와 재동 헌법재판소의 백송을 들 수 있다.

1950년대 산림녹화용으로 미국에서 들여온 리기다소나무는 껍질이 거칠고 곧게 자란다. 목재는 질이 나쁘고 송진이 많이 나오며 옹이가 많아 쓰임새가 적지만, 송충이의 피해에 강하고 어디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사방조림에 주로 사용했다. 지금은 별로 심지 않는다.

일본 원산인 금송(金松)도 있다. 금송은 잎이 두툼하고 더운 지방에서 잘 자란다.

우리나라의 산림은 국토 면적의 65% 정도를 차지한다. 소나무는 1970년대까지 전체 산림의 50%를 차지했으나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매년 감소, 2007년에는 23%인 150만㏊로 줄어들었다. 절반 이상이 사라진 것이다. 대신 같은 기간 활엽수림은 10%대에서 26%까지 넓어졌다. 국립산림과학원의 분석에 따르면 2060년경에는 지구온난화로 경북 북부, 지리산, 덕유산 등 고산지대와 강원도에서만 소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소나무는 개별 소나무를 비롯해 소나무 군, 소나무 숲(송림) 등 총 40건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2020년 12월 기준) 이 중에는 서울 재동 백송(수령 600여 년)과 조계사 백송(수령 500여 년) 등 오래된 백송 5그루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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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흥덕왕릉 앞 솔숲.

◆대표적 백송과 반송

백송은 나이가 어릴 때는 껍질이 희지 않고 푸른색을 띠며, 나이가 들면서 점차 흰색으로 바뀐다. 중국이 원산지여서 '당송(唐松)'으로도 불리었다. 식물에서 '당'은 '중국'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백송 중에는 충남 예산의 추사고택 근처에 있는 '예산의 백송'(천연기념물 제106호)도 유명하다. 이 백송은 추사 김정희가 중국에서 가져온 씨앗을 고조할아버지 김흥경의 묘 옆에 심어서 자란 것이다. 김정희가 베이징에서 가져온 백송은 자금성 뒤편의 경산공원(景山公園)에서 볼 수 있다. 경산은 명조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자결한 곳이다. 이자성의 군대가 북경성을 포위하자 그 누구도 황제를 보호하지 않고 도망가버렸다. 숭정제는 어쩔 수 없이 자금성 뒤편의 경산에 올라 궁궐 자금성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산 정상 '만춘정(萬春亭)'으로 오르는 곳곳에서 키가 큰 백송을 만날 수 있다.

자금성 안에도 멋진 백송 고목이 있다. 자금성 안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 건청궁, 교태전에는 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 자객이 몸을 숨길 곳이 없도록 감시하기 위한 방비책이라 한다. 그러나 자금성 북쪽 끝부분에 있는 어화원(御花園)은 각종 기암괴석이나 소나무와 측백나무, 향나무 등 수목으로 꾸며 놓고 있다. 황실 정원인 이곳에는 부벽정, 만춘정, 천추정 등 정자도 있다. 또한 태호(太湖)에서 가져온 수석들을 10m 높이로 쌓아 만든 퇴수산(堆秀山)이 있고, 그 꼭대기에는 어경정(御景亭)이 있다. 이 퇴수산 앞에 멋진 백송 한 그루가 서 있다. 수령 600년 정도라고 한다.

천연기념물은 아니지만, 순천 송광사와 울진 불영사에서도 백송을 볼 수 있었다. 백송은 대부분 반송처럼 줄기가 여러 갈래로 나와 자란다.

반송으로는 구미 독동리 반송, 무주 삼공리 반송, 고창 선운사 도솔암 장사송 등이 유명하다. 모두 천연기념물이다.

도솔암 장사송은 고창 선운사에서 도솔암을 올라가는 길가에 있는 진흥굴 바로 앞에서 자라고 있다. 나무의 수령은 600년 정도. 반송으로 분류되는데 키가 크다. 높이는 23m, 가슴높이의 둘레는 3.1m. 높이 2.2m 정도에서 줄기가 크게 세 가지로 갈라져 있고, 그 위에서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져 부챗살처럼 퍼져 있다. '장사송' 또는 '진흥송'이라고 부른다. 장사송은 이 지역의 옛 이름이 장사현이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며, 진흥송은 옛날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앞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무주 삼공리 보안마을에서 자라고 있는 반송의 수령은 350년(1982년 지정 당시)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4m. 옛날에 이 마을에 살던 이주식(李周植)이라는 사람이 150여 년 전에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심었다고 전해진다.

구미 독동리 반송도 수형이 매우 수려하다. 수령은 400년으로 추정된다. 나무 높이는 13m. 뿌리 부분에서부터 줄기가 10여 개로 나뉘며 넓게 퍼져서 전형적인 반송의 형태를 보인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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