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 작가가 14일 대구 중구 갤러리CNK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말하고 있다. |
대구 중구 갤러리CNK에 전시된 박정현 작가의 설치작품 'SEEK WISDOM'. 노란색 액체에 잠긴 텍스트는 빙산의 일각인 8.3%를 제외한 91.7%를 의미한다. |
"보이는 것만으로 서로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예술을 바라보는 오만함이 누군가를 심연에 빠뜨려 익사시킬 수 있다는 것을 상기했으면 한다."
표절 논란에 따른 법적 분쟁을 이겨낸 대구 출신의 박정현 작가가 그동안의 고단한 여정을 갈무리 짓고 3월30일까지 대구 중구 갤러리CNK에서 개인전을 연다.
전시회의 주제는 '0.917-Unspeakable'. 함축된 듯 하지만 의미심장하다. '알기 힘든 진실이 재현되는 순간'이라는 부제는 그동안 겪은 고충과 작가가 말하려는 진실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박 작가는 대구미술관의 'Y아티스트 프로젝트'에 선정된 후 지난 2014년 고무줄을 이용한 작품 '방해(disturbing)'를 전시했다 표절 분쟁에 휘말렸고, 자신의 작품이 대구미술관에서 철거되는 수모를 겪었다. 2021년 부산고법이 부산 모 작가가 박 작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면서 예술가로서 명예를 되찾았다. 7년 만에 억울한 누명을 벗은 순간이었다.
오랜 시간 돌덩이를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는 박 작가는 14일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시련을 디딤돌 삼아 예술가로서 변화의 전기를 마련 중이라고 했다. 박 작가는 "현대미술은 나날이 변하지만, 사진 몇 장으로 (예술을)평가하는 법의 오만함은 존재한다. 분쟁을 겪으며 어느 순간 '침묵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조급한 마음에 설명을 할 수록 상처가 커진 느낌이었다"면서 그동안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이어 "한 작가의 사건이 법적 기록으로 남아 기준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누군가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면 발벗고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개인전에 전시된 20여 점의 입체(설치) 및 회화 작품에는 그동안 박 작가가 겪은 고단함이 일부 담겨있다. 전시 제목인 '0.917-Unspeakable'에서 드러나는 '0.917'은 숨겨진 91.7%와 드러난 8.3%를 일컫는다. 빙산이 수면 위에 드러나는 부분이 전체의 8.3%인데서 착안했다. 일부 보이는 것들로는 실체를 알 수 없고, 그 뜻을 이해할 수도 없다는 의미다.
박 작가는 특히 "SEEK WISDOM(지혜를 구하다)'라는 설치작품을 통해 시각적으로나마 목까지 타오르는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빙산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서로 간의 오해로 여겨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부정 보다는 긍정적 자세를 표현하려는 마음이었다"고 설명했다.
신작 중 '건곤감리'를 나타내는 'Flag(깃발)' 시리즈는 태극기의 여러 의미 중 균형과 조화의 의미를 담았다. 이 시리즈를 통해 긴 시간 혼란을 겪었던 작가의 작품은 예술가만의 질서와 기운으로 묵직하지만 감각적으로 새롭게 표현된다.
기존 작업이 작가 개인의 어려움과 한계를 극복(치유)하려고 했다면, 이번 전시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양해진 구도의 회화와 입체 작업으로 제시한다.
박 작가는 "그동안 작가로서 너무 느리게 걸어왔다는 생각에 조급함과 우울함도 있었다. 당분간 창작작업을 열심히 하는 작가로 살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대구 출신인 박 작가는 경북대 예술대 미술학과와 동 대학원 및 영국 런던 킹스턴대 공간&제품 디자인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글·사진=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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