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시민기자 세상보기] '따뜻함이 가득' 한실마을 장영남씨의 황토방

  • 천윤자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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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20 19:14  |  수정 2023-03-15 08:02  |  발행일 2023-03-01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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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 하양읍 한실미을 장영남씨의 황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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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남씨가 장을 담그고 있다.
경북 경산 하양읍 대곡리 장영남씨(60).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매화꽃 필 무렵이다.

"바쁘지 않으면 건너편 황토방에서 차 한 잔 하고 가셔요. 다구와 차는 준비돼 있으니 직접 우려 마시면 됩니다. 방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한실마을로 불리는 대곡리의 백곡서원을 둘러보고 뒷산을 걷다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주문한 들깨칼국수를 내온 그가 건넨 말이다. 아담한 황토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랫목이 따뜻하다. 한쪽에 차려진 찻상이 정갈하다. 창으로 보이는 경치는 한 폭의 그림이다. 창밖 풍경에 넋을 놓고 앉았는데 장씨가 뒤따라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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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남씨가 황토방에서 차를 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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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남씨의 장독대에 수십개의 장독이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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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남씨가 담근 장.

마을에서 하나뿐인 식당에서 바쁜 점심시간에만 일손을 돕고 있다고 했다. 시집 와서 30여 년 시부모를 모시며 살아온 그가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된 지는 13년 됐다고 했다. 본채에는 가족이 살고 있고 별채인 황토방은 온전히 그만의 공간이다. 건축 일을 하던 시아버지가 함께 살아준 며느리가 고마워 지어 준 곳이란다. 시아버지와 함께 직접 흙을 바르고 온돌을 놓고, 강변의 돌을 주워 와서 돌담을 쌓았다. 장독대를 만들고 매화나무와 개나리, 연상홍을 심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따뜻해지는 방이 너무 좋아서 혼자 즐기기보다 누구든 와서 함께하고 싶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귀촌한 윗집에 사는 이웃도 번듯한 자기 집을 두고 이 방에서 자고 가고, 그에게 다도를 가르쳐준 선생도 수시로 이 방을 이용한다.

다시 매화 피는 무렵이 되어 불쑥 찾아갔다. 차를 마시며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따뜻한 방에 앉아 있으니 일어나기 싫다고 하자, 잠시 망설임도 없이 자고 가라고 붙잡는다. 내일이 장 담그는 날이니 보고 가란다. 집에 연락하고 예정에도 없이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 창을 통해 보이는 그믐달을 보며 일어났다. 소금물을 담은 옹기 독에 계란을 넣어 염도를 확인하고, 황토방에서 띄운 메주를 씻어 넣었다. 지난밤 불을 지핀 아궁이의 숯을 씻어 붉은 고추와 함께 넣었다. 시어머니가 나와 마지막 점검을 했다. 정성으로 담은 장은 햇살 잘 드는 장독대에서 맛나게 숙성될 것이다. 오늘 저녁에도 그는 누군가를 위해 이 방에 불을 지필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황토방 온돌처럼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한실마을에 자꾸만 가고 싶어진다.
글·사진=천윤자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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