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함께 살아가는 배려 이야기' 공모전 수기] '동상' 배려란, '이게 나고, 그게 너야' 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인정해주는 것-조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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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6  |  수정 2023-03-06 07:38  |  발행일 2023-03-06 제14면
배려하는 사회 이루려면 먼저 자신을 탐색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2022 함께 살아가는 배려 이야기 공모전 수기] 동상 배려란, 이게 나고, 그게 너야 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인정해주는 것-조영란
삽화=장수현기자 jsh10623@yeongnam.com

항상 들어가는 웹카페였는데 그 글이 올라온 지 꽤 지나서야 눈에 들어왔다. 배려라는 말을 처음으로 깊게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다. '배려: 配(나눌·짝 배) 慮(생각할 려)' 짝과 같은 마음으로 생각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이 '배려'라는 것은 시대, 문화적으로 배려심을 가진 행동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대단한 '오지랖'의 나라다. 한국인은 어려움이 생기면 누구보다 발 벗고 나서서 함께 해결을 한다. 하지만 코로나시대를 거치면서 배려의 의미를 조금 바꿔놓은 듯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긴 것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과 비슷하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안전거리만큼 심리적 안전거리도 함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친구와 함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 나누던 이야기이다. 친구는 "요즘에는 우는 아이 함부로 달래주면 안 된다더라"라고 한다. 그 이유가 너무 황당했다. 우는 아이의 부모가 자기 아이 왜 울렸냐고 화를 낸다는 것이다. 자기도 그런 적 있다며, 함부로 도와주면 안 된다고 한다. 예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또 들은 적이 있다. 요즘에는 동네 아이에게 예쁘다느니, 머리를 쓰다듬는다든지 등 관심을 가지는 행동은 오히려 민폐라는 것이다. 또 놀이터에서 내 아이 간식을 다른 아이들이 보고 먹고 싶어 할 때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부모에게 물어보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좀 황당하고 너무 정이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나 또한 그랬다.

첫째 아이가 7살 무렵이었다. 공원에 산책을 갔는데 둘째를 보고 있는 사이 첫째가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첫째가 벤치에 낯선 할아버지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첫째가 예쁘다며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얼른 첫째를 불러 내 쪽으로 오도록 했고, 함부로 낯선 사람에게 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나에게 벤치에 앉고 싶어 하는 자기를 위해 할아버지께서 앉아도 된다고 상냥하게 이야기해 주셨다고 했다. 하지만 난 기분이 좋지 않았고, 오히려 그 할아버지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다음부터는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지 말라고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나도 요즘 부모였다.

자영업을 하고 있는 남편 회사에 직원이 새로 들어왔다. 나이가 23살. 첫 직장이었다. 남편 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운전을 많이 해야 하는데 직원은 운전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남편은 많은 고민 끝에 그 직원을 채용했고,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어느 날, 내가 새로 들어온 직원이 일을 잘하냐고 물었다. 남편은 "귀엽다. 열심히 하긴 하는데…. 답답도 하지. 요즘 애들 마음을 도통 모르겠네…."

최근 마사지숍에서 마사지를 받고 있는데 거기에도 직원이 새로 들어와 일을 배우고 있었다. 숍 원장님은 "요즘 애들이 손이 느려서 제가 더 바빠요. 손발이 안 맞아. 에휴"라며 하소연을 했다.

남편의 나이는 41살이다. 원장님의 나이도 얼추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내 나이는 37살이다. '요즘 애들'이란 소리가 너무 이상하게 들렸다. 그 '요즘 애들'을 MZ세대라고 말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뜻을 찾아보니 MZ세대란 1980년대 초반~2000년대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모두 아우르는 말 즉, 지금 10대부터 40대 초반을 이르는 말이다. 왜 10대와 20대 30대 40대가 서로 '요즘 애들'이란 말로 선을 긋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배려란 먼저 경험한 세대가 그 뒤의 세대와 선을 긋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 배려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음의 안전거리도 그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마음과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같은 마음이 될 수 없다. 조금 떨어져서 한 사람으로서 있는 그대로를 보고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려면 지금 세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진정한 나'에 대한 공부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빠른 시대다. 이 빠른 시대에 너무나 다양한 매체가 있어 심심할 틈도 없다. 그저 오감 만족 그 이상을 누리는 시대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진정한 내 것을 가져보지 못 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거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 MZ세대는 자기밖에 모른다고, 자기 것을 얼마나 챙기는지 모른다고. 그들 또한 자기가 자기 것을 잘 챙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챙기고 있는 것은 과연 진짜 자기 것일까? 겉으로 보이는 물질적인 것에만 그리고 자기 욕심을 채울 수 있는 것을 챙기는 것에 급급해 보인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눈에 보이는 자기 것을 소유하고 지키려고 하는 것일까?

우리 부모님 세대는 살이 깎이는 고통으로 바닥보다 더 밑바닥이었던 우리나라를 단숨에 여러 분야에서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너무 빠른 시간에 많은 분야를 한꺼번에 끌어올려 우리 아이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에 미치지 못하는 지경에 왔다. 밑바닥이었던 그 시절엔 그저 열심히만 하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고 성과도 눈부셨다. 부모님 세대가 올라간 계단의 높이는 너무 높아 MZ세대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기본밖에 되지 못하고 새로운 길을 찾을 희망은 너무 좁혀져 있다. 해가 갈수록 사람들의 아이큐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공부해야 할 수준은 계속 높아지고 그만큼 교육의 질도 좋아지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시간은 아예 없어지고 있다. 바로 나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이들 방송 프로그램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오전 8시,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 그 시간 외에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없었다. 오로지 나가서 놀아야 하거나 혼자 있는 시간이 있었다. 혼자 찾아서 공부를 해야 했고, 그 당시 물론 학원도 있고, 과외도 있었지만 책으로 공부를 했다. 모르는 것은 선생님께 물어보고 찾아서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바로 즉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핸드폰, TV 모두 24시간 즐거움도 주고 모르는 것은 그 즉시 찾아볼 수 있다. 심심하다고 생각할 시간도, 모르는 문제를 혼자 풀어가며 머리를 쥐어짜며 고통의 시간을 겪지 않아도 된다. 편리해졌지만, 너무 안타깝다. 모든 게 인스턴트 같다. 조금의 지루함도, 답답함도, 아픔도, 슬픔도 견딜 수 없어 다양한 감정이 아주 빠르게 처리된다. 마치 컴퓨터로 삭제하듯이. 내가 가진 감정을 알아갈 수가 없다. 나를 탐색할 시간이 없다. 지금의 MZ세대는 진정 자기 자신을 알고 있을까? 내가 정말 원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나의 존재의 이유, 알고 있을까?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어느 프로그램에서 5살 아이가 자꾸 "내 꺼! 내 꺼!"하는 것에 엄청 신경을 쓰는 부모가 있었다. 너무 이기적으로 보이고, 아이를 착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본 소아정신과 박사는 "이 아이는 그대로 인정받고 자기의 것을 소유할 수 있어야 그다음에 양보와 배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를 가지지 못한 MZ세대여서 타인에 대한 감정을 받아 줄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닐까?

배려 있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장 우선시 생각해야 하는 것은 타인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먼저인 것이다. 나 자신을 깊이 탐색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 장점은 물론 단점을 직시해 볼 수 있는 용기, '이게 나야'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타인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다. '이게 나고, 그게 너구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배려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아이들의 길을 내 기준과 판단으로 만든 포장도로가 아닌 그들의 비포장도로를 걸어갈 수 있도록 거리를 두고 페이스메이커를 해주는 것일 것이다. 아이들이 온전한 자기 자신을 만들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도와준다면 더욱 배려 깊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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