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펑쯔는 나의 사랑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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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3  |  수정 2023-03-03 07:44  |  발행일 2023-03-03 제15면

[정만진의 문학 향기] 펑쯔는 나의 사랑
정만진 (소설가)

"합법이라 해도 좋다. 불법이라 해도 좋다. 누가 뭐라 하든 우리는 신경 쓰지 않는다. 왈가왈부하는 당신들과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오직 펑쯔는 나의 사랑이다." 중국 어떤 저명 여류 인사의 글 중 한 부분이다. 그런데 어투와 내용으로 보아 대단한 불륜의 주인공이 내뱉은 말처럼 여겨진다.

발언 당사자는 누구이며, 상대 남자 펑쯔는 또 누구인가? 일단 두 남녀를 '보통 사람'이 아니라 단언해도 지레짐작하지 말라는 핀잔에 시달릴 일은 없을 터이다. 우리 정치사에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라는 상징조작적 구호가 있기는 했지만, 보통사람의 불륜이라면 애당초 유명세를 치를 일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당사자는 또 자작시에 "우리는 마음과 마음이 통해/ 인류를 위해 일하기 위해/ 손잡고 함께 가기로 했다/ 우리는 마음에 부끄러울 데가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할 일도 없이/ 당당하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그녀는 쉬광핑(許廣平)으로 자신보다 17세 많은 유부남과의 사이에 아들도 낳았다. 상대 남자가 루쉰(魯迅)이었던 까닭에 그녀는 중국 대륙을 뒤흔든 풍문 한복판에 올려졌다. 지구가 알아주는 대문호이자 혁명가 루쉰의 별명이 펑쯔(風子)이다.

루쉰은 부인과 이혼도 하지 않고 제자 쉬광핑과 동거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인들은 좋게 말해 대범한 듯하다. 루쉰과 쉬광핑이 살았던 광저우의 도서관 앞에 두 사람이 함께 조형된 동상을 세워 놓았다. 괴테와 실러가 나란히 손을 잡고 서 있는 바이마르 국민극장 앞 풍경과는 전혀 다른 스토리가 아닌가!

'인류를 위해 일'하는 남녀라고 해서 불륜을 저질러도 "마음에 부끄러울 데가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할 일도 없이/ 당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목적이 옳다고 하여 부당한 과정과 방법에 면죄부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정녕 그렇다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세계 명작 반열에 오를 수는 없을 것이다.

쉬광핑과 루쉰에 비견할 만한 우리나라 사례에 나혜석과 최린이 있다. 쉬광핑은 "여성이 가정에서만 일하는 것은 남편의 죄수로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최린과의 불륜이 파리 전역에 소문으로 번지면서 그 이후 어려운 삶을 살게 된 나혜석은 "결혼은 여성의 지옥이고 육아는 저주"라고 부르짖었다.

그래도 다른 점은 있다. 루쉰은 중국과 세계가 인정하는 인물이고, 최린은 친일파로 욕먹는 인간이다. 사랑에 국경은 없지만 상대가 나를 비추는 거울임은 꼭 명심할 일이다. 1968년 3월3일 세상을 떠난 쉬광핑도 그렇게 생각하였으리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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