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보은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평등세상 향한 항쟁사 걸어둔 '통곡의 벽'엔 절반의 빛과 어둠이…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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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3  |  수정 2023-03-03 07:53  |  발행일 2023-03-03 제16면
최시형이 동학 대도소 세운 충북 보은

읍내서 속리산으로 가는 한적한 골짝

돌 조형물엔 동학혁명 배경사건 기록

위령탑 뒤 벽엔 그들이 꿈꾼 세상 '꾹꾹'

130년前 '혁명의 始終' 마을 역사 담겨

[주말&여행] 보은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평등세상 향한 항쟁사 걸어둔 통곡의 벽엔 절반의 빛과 어둠이…
통곡의 벽 사이로 빛의 계단이 동학농민혁명군위령탑을 향해 간다. 벽에는 동학농민혁명의 다양한 역사적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넓고 고요했다. 환했지만 외딴 장소라는 느낌이 강했다. 어떤 이들은 봄과 가을이 아름답다고 했다. 겨울의 이곳은 늘 푸른 나무들이 무성해 쓸쓸하지 않았다. 늘 푸른 것들의 창창함 때문에 몇 그루 잔망스러운 꽃나무와 몇 그루 무성한 낙엽수들이 그들의 시절 동안 자유로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아닐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역시 고통이나 저항이나 죽음에 관련된 공간이라는 것은 이토록 넓고 환하고 푸르러도 어딘가 가슴을 짓누르는 데가 있다. 그것은 배워서 알고 있고 극히 드물게 떠올릴지라도 살아있는 인간들의 존엄성에 몸 바친 사람들에게 감응하는 살아있는 마음 같았다.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되고 종결된 곳, 보은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교도와 농민이 합세해 일으킨 사회개혁운동이다. 보통 공주 우금치, 정읍 황토현, 장성 황룡강, 장흥 석대들을 4대 전적지로 꼽는다. 보은에는 기념공원이 있다. 보은 읍내에서 속리산으로 가는 한적한 골짜기다. 주차장에 내리면 산봉우리 같은 돌 조형물이 낮게 늘어서 있다. 그것은 마치 우리 국토의 산야를 표현한 듯하다. 그 가운데 높은 봉우리들에는 일본군의 경복궁 침범과 청일전쟁의 발발, 전쟁의 참화에 시달리는 백성, 동학도의 의병봉기 계획 등이 섬세한 그림과 글로 새겨져 있다. 이는 동학농민혁명의 배경이 된 일련의 사건들이다.

좁은 개울이 흐른다. 다리를 건너 장승이 늘어선 산책로를 따라간다. 장승들의 가슴에는 '사람이 하늘이다' '사인여천(事人如天)' '보국안민(輔國安民)' 등 동학의 기본 이념들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동학의 성지 보은'이라는 글이 있다.

보은은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이 1893년 1월 장내리(현 장안면)에 동학교단의 총본부인 대도소를 설치한 곳이다. 같은 해 3월에는 전국의 동학도를 규합한 '보은취회'가 열렸다. 최대 3만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정되는 집회에서 그들은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 즉 '일본과 서양을 배척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킨다'라는 정치적 기치를 올렸다. 동학농민혁명의 불씨였다. 1894년 일본이 경복궁을 기습 점거하자 동학농민군은 전국에서 일어났다. 충청, 경기, 강원, 경상도의 동학농민군이 보은으로 집결했고 곧 전봉준의 호남 농민군과 합세했다. 그러나 이들은 우금치전투에서 밀려나 해산되었고, 전라도를 거쳐 북상하던 혁명군은 보은 북실마을에서 관군과 일본군의 기습으로 무참히 학살당한다. 동학농민혁명군 최후의 항전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보은은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되고 종결된 곳이다.

장승의 뒤편에 조성되어 있는 작은 성은 동학대도소가 있던 장내리에 세운 성을 재현해놓은 것이다. 성벽에는 최제우와 최시형의 사진이 까만 오석(烏石)에 미세한 망점으로 조각되어 있다. 아래에는 전봉준의 유시와 동학농민군과 관련된 시 구절을 새긴 조경석이 놓여 있다. 성을 지나면 넓은 민중광장이 둥그렇게 열리고 그 위로 산 중턱에서부터 솟아 나온 탑이 보인다. 죽순 같기도 하고 오벨리스크 같기도 한 너무도 하얀 저 탑은 동학농민혁명군위령탑이다. 탑은 북실 전적지를 내다보고 있다.

[주말&여행] 보은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평등세상 향한 항쟁사 걸어둔 통곡의 벽엔 절반의 빛과 어둠이…
동학농민혁명군위령탑. 탑 아래에는 죽창을 든 동학군이 쓰러진 동료를 안고 있는 조각상이 있다.
[주말&여행] 보은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평등세상 향한 항쟁사 걸어둔 통곡의 벽엔 절반의 빛과 어둠이…
통곡의 벽 오석에 새겨져 있는 보은취회 기록. 최대 3만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집회에서 일본과 서양을 배척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킨다는 정치적 기치를 올렸다.
[주말&여행] 보은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평등세상 향한 항쟁사 걸어둔 통곡의 벽엔 절반의 빛과 어둠이…
민중광장과 동학농민혁명군위령탑을 잇는 하늘길. 길이 굽어질 때마다 쉼터와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통곡의 벽 사이 빛의 계단을 오르면

민중광장의 오른쪽 끝에 위령탑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빛의 계단'이다. 계단의 양옆에는 굳건한 성벽처럼 돌을 쌓아 올린 축벽(築壁)이 높게 서 있어 길은 실제보다 몹시 좁게 느껴진다. 일자로 뻗어 있으나 방향을 찾아야 하는 미로 같고, 문도 없는데 갇힌 듯하다. 벽 너머에 솟아 있는 푸른 나무들과 길 끝에서 기다리는 듯 서 있는 탑이 위안이 된다. 길의 절반에 드리워진 빛은 절반의 어둠을 증명하기에 잔혹하다. 그 빛과 어둠의 벽을 '통곡의 벽'이라 부른다.

'통곡의 벽'에는 공주 우금치 전적지의 사진과 안내글, 보은취회 문서와 백범 김구 선생이 동학혁명군을 이끌고 격전을 벌였던 해주성 사진, 동학 농민군이 싸우는 모습, 무명의 동학 농민군이 쓴 편지글, 동학정신을 이어받은 항일운동 전적지에 대한 기록, 보은 장내리와 북실 전적지의 사진 등이 걸려 있다. 북실마을은 자그마한 야산을 가운데 두고 그보다 큰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 안에 위치해 있다. 옛날의 지형지세를 흐린 흑백사진으로 본다. 1894년 12월17일, 18일 양일간 저 넉넉한 들의 어딘가에서 동학농민군 2천600여 명이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북실마을 야산 기슭에는 집단 매장지가 흩어져 있다.

'통곡의 벽'을 빠져나오면 빛으로 가득한 광장에 위령탑이 서 있다. '빛의 계단'은 '빛으로 가는 계단'인 듯하다. 위령탑 양옆으로 봄이면 진달래로 붉게 물드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붉게 물든 진달래는 북실마을에서 숨져간 최후의 동학농민혁명군을 상징한다. 위령탑 뒤편에 낮게 둘러선 벽에는 동학농민운동의 진행 과정과 보은에서 있었던 일들 그리고 그들이 꿈꿨던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그들은 사람다운 삶과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꿨다. 탑 아래에는 죽창을 든 동학군이 쓰러진 동료를 안고 있는 조각상이 있다. 피에타다. 어떤 시대, 어떤 종류의 피에타든, 그것은 모두 슬픔이고 비탄이다. 다만 여기에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결기가 있다. 긴 직사각의 탑은 조각상 뒤에서 역전되면서 청공을 만든다. 광막한 밤이면 저들의 머리와 얼굴과 가슴 위로 별들이 쏟아질 것이다.

위령탑 아래에는 푸른 솔숲이 있다. 그 사이를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데크 길은 '하늘길'이다. '하늘길'은 민중광장의 가운데로 이어진다. 북실마을의 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탑은 들이 보일 것이다. 새처럼 높으니까. 머지않아 꽃들이 피어나겠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Tip

경부고속도로 대전 방향으로 가다 김천분기점에서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 방향, 낙동분기점에서 30번 당진영덕고속도로 당진 방향으로 간다. 보은IC로 나가 보은IC교차로에서 좌회전해 보은읍 보은군청 방향으로 간다. 군청 앞 보은교차로에서 우회전해 25번 국도를 타고 가다 누청 삼거리에서 직진해 37번 국도를 타고 속리산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 길옆으로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표석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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