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메일] 안전한 공동체로 가는 길

  • 권칠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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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6  |  수정 2023-03-06 07:00  |  발행일 2023-03-06 제25면

[여의도 메일] 안전한 공동체로 가는 길
권칠승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지난달 18일은 대구 지하철 참사 20주기였다. 사망자 192명, 부상자 151명, 세계적으로도 최악의 지하철 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참사 직후 사고 원인으로 주로 정신질환자의 방화와 기관사의 과실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모든 참사가 그렇듯 구조화된 문제였다. 시민이 애용하는 대중교통인데도 시트, 바닥재 등 전철 내부가 화재에 취약한 가연성 재질로 돼 있었다. 1993년 대구지하철공사가 매입한 전동차량의 단가는 1량당 약 5억원. 서울·부산·인천의 도시철도 단가 약 8억원의 60% 수준이었다. 이마저도 예산 부족을 이유로 대금을 더 삭감하면서 부실한 재질로 제작하는 원인이 됐다.

거듭된 인력감축으로 안전요원 또한 태부족했다. 안전조치를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봤고, 결국 돈 몇 푼 아끼려 시민의 생명을 담보한 것이다. 또한 중앙로역은 대구 도심에 위치해 하루 5만명이 넘는 이용객이 찾았으나 규모는 협소했고, 지하상가가 역 중앙을 관통해 구조가 복잡했다. 이는 화재 대피에 어려움을 가져왔다. 하지만 안전에 취약한 역사 구축과 지하철 운영 주체인 시와 대구지하철공사는 책임에서 비켜갔다.

참사를 계기로 2008년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가 조성됐다. 희생자의 이름이 적힌 위령탑은 '안전 조형물'이라 불리고 있다. 희생자의 수목장 묘역은 이름도 없다. 유가족들은 테마파크에 '2·18 추모공원'이라는 명칭을 병행해서 쓰고, 위령탑과 묘역에 참사의 기억을 담은 이름을 붙여주길 원하고 있다. 이곳에서 추모식을 열게 된 것은 2019년부터인데, 이마저도 주변 상인들의 반대 집회 때문에 힘들다. 여태껏 문제를 풀지 못한 이유는 시의 적극적인 해결 의지 부재에 있다.

필자는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20년 전 고향에서 벌어진 비통한 참사 이후에도 안전 분야만큼은 우리 사회가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경찰 특수본 수사는 '꼬리 자르기'로 종결됐고, 국정조사는 위증과 불성실한 자료 제출로 얼룩졌다. 추모공간 마련은커녕 서울광장의 분향소조차 강제 철거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스스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정부 인사는 단 한 명도 없고,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다. 물론 제대로 된 사과도 없었다. 유가족을 향한 극우단체의 2차 가해에도 손을 쓰지 않고 있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대구 지하철, 세월호, 이태원 등 대형참사가 반복되는 것은 단순히 불운이나 실수에 따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참사의 기억을 잊을 때 비극은 되풀이된다. 참사의 아픔과 과정을 공동체가 끊임없이 공유하고,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자는 다짐과 지혜가 모일 때 보다 안전한 미래로 전진할 수 있다.

정부는 철저하고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통해 사고의 원인을 밝혀야 한다. 그 출발은 최고 통치자의 사과에서 비롯된다. '재난안전 컨트롤타워'의 사과는 '무엇을 잘못했다'는 책임의 인정, 법적 책임 이전에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묻는 사태 해결 의지, '어떻게 고치겠다'는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 등을 포함해 안전한 미래에 대한 대국민 약속의 의미를 지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윤석열 정부의 대응은 무책임했다. 사정(司正)에만 몰두하기에는 159명의 무고한 희생이 우리 공동체에 남긴 과제가 엄중하고 시급하다.
권칠승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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