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고명재의 '그런 나라에서는 오렌지가 잘 익을 것이다'

  • 송재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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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6  |  수정 2023-03-06 07:00  |  발행일 2023-03-06 제25면

어느 나라에서는 남의 말을 시라고 한다 누가 혼잣말로 추워, 라고 말해도 온갖 비평가들이 담요를 들고 곁으로 다가와 모닥불을 피우고 귀를 기울여준다고 그런 나라에서는 오렌지가 잘 익을 것이다 해질녘은 이민자들로 넘쳐날 테고 온갖 종류의 빵냄새와 인사말이 섞이는 그런 아름답고 시끌벅적한 강변을 생각해


어느 나라에서는 외국어를 시라고 믿는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면 외국인으로 간주한다 주민등록증을 수거하고 우선 재운다 소수 언어를 잊는 데는 잠이 보약이라고 가끔 치명적인 사랑에 빠진 이들은 외국어를 넘어 새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문헌에 의하면 한반도에서는 유리라는 사람이 꾀꼬리의 언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고명재의 '그런 나라에서는 오렌지가 잘 익을 것이다'

[송재학의 시와 함께] 고명재의 그런 나라에서는 오렌지가 잘 익을 것이다
시인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은 왜 그토록 가슴 저미는 걸까. 당시의 네덜란드 화가들은 물감을 두껍게 칠하여 얻은 거친 질감을 통해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실천하는 중이었다. 그것은 허망한 인생을 성찰하는 시선이었다. 고흐 역시 같은 기법으로 해바라기의 입체감을 획득하면서 죽음 너머의 맹렬한 생명력을 화폭에 담았다. 젊은 시인의 오렌지에서 나는 노란색 해바라기를 겹쳐 보는 중이다. 그 또한 왕성한 생명력이 바탕이다. 누군가의 말이 시가 되는 세계, 그 아름다움이라면, "오렌지가 잘 익을 것"이라고 믿기에 문득 즐거워진다. "해질녘은 이민자들로 넘쳐날 테고 온갖 종류의 빵냄새와 인사말이 섞이는 그런 아름답고 시끌벅적한 강변"은 온갖 세상에서 간추려낸 아름다움이다. 소수의 사람만이 사랑에 빠진다는 구절은 바꾸어 말하면 우리 일생에서 사랑은 몇 번뿐이라는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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