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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덕〈시인〉 |
봄이 왔다. 스프링에 튕겨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은 계절, 신천둔치 농구코트 위에도 농구공 하나가 봄을 맞이하고 있다. '농구' 하면 떠오르는 시 구절이 있다. 농구에 관한 시적인 내용이 극히 드물어서인지 안도현 시인의 시 '집'(1994·'외롭고 높고 쓸쓸한' 中에서)은 손꼽힌다. 장시(長詩)였던 그 시의 한 부분, "셋째와 넷째가 태어나도록 우리 여섯 식구는 이사도 안 가고/ 그 단칸방에서 살았는데 예천농고 농구선수였다는 아버지/ 주무실 때 두 다리 쭉 뻗는 걸 한 번도 못 보았으며/ 그래서 이불이 천막 같아서 잠잘 때마다 무릎이 서늘하던 집"을 읽으면서 농구 내용은 안 나오지만, 농구선수였던 시인의 아버지를 통해 왠지 고단하고 서늘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 농구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의 대척점에 바로 만화책 '슬램덩크'(1992~1996년)가 있다. 봄날만큼이나 유쾌하고 밝았으며, 에너지가 넘쳤다. 특히 '슬램덩크'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는 매우 입체적이고 개성적이었다. 올해 초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2023)는 1990년대 중·고교 학창 시절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향수를 불러일으킨 '슬램덩크'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극장판에서는 송태섭을 중심으로 농구와 인생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실제 원작 만화책에서는 강백호의 비중이 가장 컸다. 필자가 자주 갔던 읍내 만화방은 지금으로 치면 PC방, 동전노래방에 버금갈 정도로 학생들에게 인기 있던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언젠가는 내 인생의 봄날에 강력하고 극적인 덩크 슛 한 번을 성공시키지 않을까, 꿈꾸곤 했다.
'슬램덩크'는 1994년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도 연결된다.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서태웅은 윤철준과 이동민이라는 라이벌 관계로, 채소연은 정다슬을 떠올리게 했다. 서로의 갈등 속에서도 스포츠는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의 삶을 잇고, '원팀'이라는 물줄기로 솟구치는 과정을 보여줬다. 실제 한국농구 스포츠 역사에서도 90년대에 큰 전환점을 맞았다. 당시 프로가 도입되기 전 연세대의 대학 최초 농구대잔치 우승(1994)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실업팀에 맞선 대학 농구팀의 만만치 않은 활약과 도전은 슬램덩크의 캐릭터들과 자주 연결되었다. 그런 만화적인 발상과 어울림이 때론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30여 년이 지난 요즈음 '슬램덩크 애니메이션'이 성공적인 흥행을 한 걸 보면 우린 여전히 그런 것을 꿈꾸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저 봄날처럼 말이다.권기덕〈시인〉

권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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