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은둔형 폐인을 일컫는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가 필자 주변에도 있다. 얼마 전에 만난 그는 평소와 달리 상당히 들떠 있었다. 인공지능 서비스인 챗GPT 덕분이라고 한다. 먼저 참견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질문에는 친절하게 응답해주는 챗GPT가 히키코모리들에게는 사람보다 더 좋은 친구로 느껴질 수도 있다.
히키코모리가 아니더라도 독신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챗GPT는 새로운 생활양식과 문화를 만들어 갈 것이다. 벌써 학교에서는 챗GPT를 이용하여 과제를 제출하는 부정행위가 문제가 되고 있다.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처럼 조만간 챗GPT는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진화 속도를 보여줄 것이다. 전문직이라는 변호사로서 느끼는 두려움 역시 크다.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직의 특징은 높은 진입장벽과 업무의 난해함이다. 시험이라는 높은 장벽으로 소수 엘리트화를 이룬 후에는 업무의 특수성으로 철옹성을 쌓는다. 일반 국민이 난해한 용어로 가득한 판결문이나 진료 기록지를 제대로 해석하기도 어렵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해석이 가능하더라도 자격증 없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다가는 잘못하면 변호사법과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되어 전과자가 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지난달 23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에 과징금 총 20억원을 부과하는 결정을 내렸다. 법률플랫폼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들에게 서비스 이용금지 및 탈퇴를 요구한 것이 공정거래법과 표시광고법에 위반하였다는 것이다. 과징금 액수도 엄청나지만, 사업자단체가 구성사업자들에게 특정 플랫폼의 이용금지 및 탈퇴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광고를 제한한 행위를 제재한 최초의 사례로서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번 결정과 관련하여 변호사단체가 과징금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향후 변호사단체와 집행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등 끊임없을 소송전의 결과에 관심이 쏠려있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플랫폼을 이용하지만 직접 변호사에게 상담받는 구조로 되어 있는 로톡과 싸우는 동안 인공지능 챗GPT가 법률시장으로 소리소문없이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톡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국민이 변호사를 찾는 이유 중에는 소송을 할지 여부,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지, 결과는 어떻게 될지 등 필요한 정보를 얻고 싶어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해도 변호사 사무실의 문턱은 아직도 높다.
2019년 인공지능 변호사팀과 인간 변호사팀이 각종 계약서 검토 및 자문 능력을 겨루는 '알파로 경진대회'가 열렸다. 참가한 총 9팀 중 1·2위를 인공지능과 인간 변호사가 함께한 팀들이 차지한 것에 더하여, 놀랍게도 전혀 법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이 인공지능과 협업을 한 팀이 3위를 차지하였다.
순수하게 인간 변호사들로만 구성된 6팀은 단 한팀도 등수에 들지 못하고 완패하였다. 저렴하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법률서비스에 목마른 국민에게 아직도 전문가인 변호사만을 믿어야 한다는 호소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이번 과징금 부과 결정의 근거로 소비자인 국민의 접근성 제고와 선택권 확대를 들고 있다.
챗GPT를 선봉장으로 인공지능이 법률시장에 소리소문없이 진입하고 있는데 변호사단체가 인간인 변호사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 변호사가 회원으로 가입하여 직접 법률상담을 하던 로톡을 고발하였으니, 챗GPT 역시 변호사법 위반으로 전과자를 만들 수 있을까.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